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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찾아 온 그림자 세상

by 주주쌤

4-1. 더 가까워진 우리


세나와 나는 점점 더 가까워졌다.

쉬는 시간마다 붙어 다녔고, 서로 많은 쪽지도 주고받았다.

"서연아, 이거 봐. 어제 우리 집 고양이."

세나가 핸드폰을 보여줬다.

"우와, 귀엽다!"

우리는 킥킥거리며 웃었다.

점심시간엔 지우네 무리랑 조금 떨어진 곳에서 세나랑 둘이 놀았다.

"서연아, 넌 진짜 좋은 친구야."

세나가 말했다.

"너도 그래."

"너는 내 말을 다 들어줘. 다른 애들은 내가 무슨 얘기만 해도 그냥 다 무시했는데."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세나는 자기 이야기를 정말 많이 했다.

엄마랑 싸운 이야기, 짜증 나는 일들, 힘든 일들.

"그치? 내 말이 맞지?"

"응... 그래."


4-2. 지우의 한마디


복도에서 지우를 만났다.

"안녕!"

나는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지우도 환하게 웃었다.

"어, 안녕! 요즘 세나랑 맨날 붙어 다니더라?"

"응, 우리 많이 친해졌어."

"그렇구나. 좋겠다, 진짜."

지우의 목소리는 밝았다.

"근데 서연아, 우리랑은 요즘 잘 안 노는 것 같아. 뭐 화난 건 아니지?"

"아, 아니……."

"그럼, 괜찮아. 세나랑 노는 게 더 재밌으면 그럴 수도 있는 거지, 뭐."

지우는 웃으며 지나갔다.

민지가 지나가면서 나를 힐끗 봤다.

다은이는 미안한 듯 살짝 웃었다.

나는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잘못된 말은 하나도 없는데, 왜 이렇게 기분이 이상할까.

벽에 비친 지우의 그림자가 뒤돌아서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4-3. 체육 시간


체육 시간에 피구를 했다.

지우가 편을 짜주고 있었다.

"민지, 다은이, 혜진이, 현주……."

지우가 친구들 이름을 하나씩 불렀다.

나는 계속 서 있었다.

세나도 옆에 서 있었다.

우리만 끝까지 남았다.

"아, 서연이랑 세나도 이쪽."

지우가 마지못해 말하는 것 같았다.

경기를 하는데, 민지가 공을 잡고 나를 봤다.

던지려다가 멈칫했다.

그러더니 다른 애한테 공을 던졌다.

다은이가 내 옆으로 와서 작게 말했다.

"서연아, 너 지우 화나게 한 거 없어?"

"응? 내가?"

"모르겠어. 그냥 지우가 요즘 속상한 것 같아서."

"내가 뭘 잘못했는데……?"

"나도 모르지."

다은이는 그렇게 말하고 뛰어갔다.

바닥에 비친 민지 그림자는 지우 그림자 바로 옆에 붙어 있었다.

다은이 그림자는 나랑 지우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불안하게 흔들렸다.


4-4. 전화 한 통


저녁.

세나한테 전화가 왔다.

울먹이는 목소리였다.

"서연아, 나 너무 힘들어. 얘기 들어줄 수 있지?"

"응, 그래. 무슨 일인데?"

세나는 한참 동안 자기 얘기를 했다.

엄마한테 혼난 일, 학원 시험 때문에 짜증난 일, 오늘 기분 나빴던 일.

"그치? 내가 억울하지 않겠어?"

"응……."

"진짜 화나. 너는 어떻게 생각해?"

"음……."

세나는 계속 말했다.

나는 가끔 "응", "그래", "힘들겠다." 하고 맞장구를 쳤다.

전화를 끊고 나니 머리가 아팠다.

한 시간 넘게 얘기했는데, 세나는 한 번도 나한테 "너는 오늘 어땠어?"라고 묻지 않았다.

핸드폰을 내려놓고 창문을 봤다.

어두워진 창문에 비친 내 그림자가 축 늘어져 있었다.


4-5. 그림자들의 교실

다음 날 아침, 나는 교실에 있었다.

근데 갑자기 이상했다.

교실이 온통 회색이었다.

빛과 그림자만 있었다.

나는 내 자리에 앉아 있었다.

아니, 내 그림자가 내 자리에 앉아 있다.

"여기가 어디지……."

주변을 둘러봤다.

교실 곳곳에 그림자들이 있었다.

지우의 그림자.

머리 위에 뾰족한 왕관 같은 게 있었다.

그 그림자는 손짓으로 다른 그림자들을 움직이고 있었다.

민지 그림자는 지우 그림자 바로 옆에 딱 붙어서, 인형처럼 고개만 끄덕끄덕했다.

다은이 그림자는 구석에서 몸을 작게 만들고, 계속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두려움에 불안한 아기 여우 같아 보였다.

그리고 세나의 그림자.

세나 그림자는 울고 있었다.

아니, 우는 척하고 있었다.

손으로 얼굴을 가렸는데, 손가락 틈 사이로 다른 그림자들을 힐끔힐끔 보고 있었다.

내 그림자가 세나 그림자 옆에 앉았다.

세나 그림자가 내 그림자에게 몸을 기댔다.

그리고 계속, 계속 무언가를 쏟아냈다.

내 그림자는 점점 작아졌다.

허리가 굽어지고, 어깨가 처졌다.

지우 그림자가 만족한다는 듯이 팔짱을 끼고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그만해!"

내가 소리쳤다.

그 순간, 교실 불이 환하게 켜졌다.

나는 벌떡 일어났다.

손이 떨리고 있었다.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그림자들의 세계.

그곳에서는 모든 게 진짜였다.

아무도 거짓말하지 않았다.

‘이제 나는 어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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