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양을 타고 일렁거리는 군무. 바람을 눈으로 본다면 이런 기분일까. 마치 거대한 생물을 마주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어쩐지 벅차기도 했으나 점점 이들이 설자리가 없어지는, 연이은 개발 소식에 서글퍼지기도 했던 11월을 보내고.
초겨울의 문턱을 가창오리가 넘어가자 기다렸다는 듯 로켓배송된 겨울철새들에(11월 이전에도 야금야금 겨울철새를 보긴 했지만 폭탄처럼 쏟아지는 건 이때 이후였던 것 같다) 쉬는 날이면 뛰쳐나가던 겨울을 보내느라 부지런히 바빴다.
가창오리는 그렇게 성큼 다가와, 그토록 고대하던 겨울이 왔노라. 전쟁 같은 한해를 보낸 내게 수고했다 토닥이고 개막식을 펼쳐주었다.
형체를 부수고 다시 모으는 순간순간이 아름답고 덧없다. 얼마나 덧없냐면 강 위에 모습을 드러내고 먹이터로 멀리 사라질 때까지 채 3분도 되질 않는다.
라면도 못 끓일 시간 동안 후루룩 지나가다니. 다가오는 흐물흐물한 선발대를 발견하고 허겁지겁 카메라를 들어보았다만, 사진으로 담고 나면 오히려 생기를 잃어서 결과물이 조각난 느낌이다. 뭘 남기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눈으로 보는 사람이 가창오리 탐조의 승자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깨달음을 얻어 열반에 든 것도 아니고, 현자도 아닌걸. 사진으로 남기기엔 무리겠다 머리로는 생각해도 호기롭게 들이댄 카메라가 손에서 떨어지질 않았다. 그렇게 보았으나 보지 못한 것 같은 찝찝함이 남은 지금. 겨우 조각난 결과물을 붙잡고 조각보 기우듯 이리저리 맞춰보았다.
별이 남중고도에 오르듯 가장 머리 위로 높이 날아오를 때 후루루- 날갯짓 소리가 대기를 울린다. 이렇게 선발대에서 시작해 야속하게 멀어지는 후발대.
으음 너무 어려운걸? 인터넷을 찾아보니 보통 망원 렌즈보다는 50-200mm 사이의 렌즈를 사용한다더라. 시간도 날씨도 따라주어야 한단다. 역시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보아야 가장 후련하다고 볼 수 있겠다.
11월에 처음 보고 이후 삽교천에 다시 온 건 2월부터. 겨울이라면 겨울이고 봄이라고 우기면 또 봄인 달이었다. 계속 옆에 있어줄 것 같던 겨울철새들도 어느새 올라갈 준비를 마치고 등 돌려 사라지던 달.
가창오리는 작년에 열어주었던 겨울 빗장을 닫으러 돌아왔다.
강변을 배회하며 지내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다음을 기약하는 폐막식이 눈앞에서 마무리되었다.
찾아왔을 때처럼 바람을 닮은 모양으로.
별덕후 남편과 멋모르고 올라간 관측지에서 햄버거를 나눠 먹으며 봤던 이름 모를 새들. 탐조를 모르던 시절 내 마음속, 새에 대한 호기심이라는 깃털 하나 남겨주고 갔던 날. 그날도 일종의 개막식이지 않았을까. 내 마음에 탐조 폐막식도 내리는 날이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