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앞에는 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나무는 매해 조금씩 자리를 옮겼다.
그렇게 내 방 창문 앞엔 나무 한 그루가 서있다.
가상한 나무.
나무는 매일 나를 부른다. 물론 나는 그 간절한 부름에 대답을 한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나무는 매 순간을 내게 가까워지고 있었다. 아주 조금씩, 그러나 매일을 꾸준하게.
그날은 비바람이 몰아쳤다. 정도가 심해도 너무 심한 바람이 참으로 매서웠다.
나무는 여느 때처럼 나를 불렀다. 아니, 울며 불렀다.
무서운 바람과 사나운 비가 자신을 마구 때려 아프다고 울었다. 무섭다고 울었다.
그것은 간절하게 나를 찾았다.
“아, 알았어… 알았으니까, 그만 울어….”
평소처럼 외면하기엔 나무의 목소리가, 그 가녀리고 간절한 목소리가 너무도 선명하게 들려왔다.
내가 뭐라고 그렇게 열렬히도 부르는지. 괜스레 우쭐해지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나는 창문을 열었다.
“윽,”
창문을 뒤흔들던 비바람이 내 얼굴을 뒤덮는데, 느껴지는 것은 이파리의 감촉이다.
반사적으로 감았던 눈을 뜨니 코 앞에 물과 바람을 잔뜩 머금은 이파리를 떨고 있는 나뭇가지가 있었다.
저 궂은 날씨 속에서도 싱그러운 잎사귀를 잔뜩 매단 나뭇가지가 살랑살랑 흔들렸다.
인사를 하고 있었다.
반사적으로 손을 흔들었다.
나뭇가지가 조심스레 내 팔에 엉기기 시작했다. 나의 반응이 기꺼운 모양이었다. 창 밖에서 들려오는 스산한 소리가 무색하게 내 마음은 조금씩 설레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 들어올래?”
하고 물었다. 솔직히 말하면서도 말이 안 되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나무도 그렇게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것은 내 팔에 휘감긴 나뭇가지를 당겨댔다.
알 수 있었다. 나무는 나를 부르고 있었다.
제게로 오라고.
잎사귀는 축축하고 부드럽다. 나뭇가지는 거칠고 다정하다. 나는 그것이 이끄는 데로 따랐다.
그것의 도움을 받아 창문 턱을 밟고, 난간을 넘었다.
비바람이 몰아치던 어두운 시공간이 눈을 한 번 깜빡인 순간에 새하얗게 바뀌었다.
“아….”
어느새 나는 누워있었다.
나무가 만들어준 그늘 안에서 나무밑동의 뿌리를 베개 삼고 나무가 떨궈준 잎사귀를 이불 삼아서.
나무의 그늘 속에서 바라본 햇살은 찬란하고, 내 피부를 맴도는 바람은 언제 날카로웠냐는 듯 다정하고 적당히 선선하다. 그것은 언제나처럼 나를 불렀다. 나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나는 물었다.
“근데 너는 왜 늘 나를 불러?”
언제나 궁금했다. 저것이 나를 매일 부르는 이유가. 간절히 부르는 이유가.
그것도 그 누구도 알아듣지 못할, 오직 나만 들을 수 있는 말로.
“뭐라고?”
나무는 말한다. 항상 말을 한다. 항상 내게 무언가를 말한다.
“다시 한번 더… 천천히, 뭐라고?”
나무는 계속 말하고 있었다. 아까보다 더 다급하고, 시끄럽게 나를 부르고 있었다.
근데,
이상하게… 정말로 이상하게,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뭐라고 하는지….”
나무는 언제나 나를 부른다. 내게 오고 있었다. 내게 무언가를…….
[제발 일어나]
공간이, 찬란한 빛이 가득해 아름답고 따스하던 공간이 조금씩 일그러지고 무너지기 시작했다.
“어? 이, 이게 무슨…!”
[제발 일어나.]
맞아, 난 비바람 속에 있었지.
깨닫기가 무섭게 일그러진 하늘의 틈새로 아까까지 보았던 어두컴컴한 세상이 모습을 드러낸다.
번쩍거리며 휘몰아치는 비바람이 요란하다.
뭐야, 무서워.
반사적으로 두려워져 눈을 감으려는데, 내 팔을 휘감은 나뭇가지가, 나무의 간절한 팔이, 아니 나무라기엔 너무도 보드랍고, 뜨겁고 거친 손이 나를 붙잡고 있었다.
[제발, 눈 좀 떠 봐. 다현아….]
나를 부르는 목소리. 나를 끊임없이 부르는 목소리. 항상 간절하게 나를 부르는 나무, 아니 엄마….
내 앞에 서 있는 것은 엄마다. 세월을 먹어 주름 진 손이 붙잡고 있는 나는, 엄마의 손이 간절하게 붙잡고 있는 나는,
이상하다. 분명 눈을 뜨고 있는데도 눈꺼풀이 너무 무거웠다. 눈을 뜨고 있는데도 눈이 감긴 것만 같았다.
내 주변의 기괴한 풍경들이 제대로 보이지가 않았다.
[다현아, 일어나.]
엄마가 나를 부르고 있었다. 내 앞의, 나를 붙잡고 있는 엄마는 신기루처럼 내게 잡히지 않았다. 나를 잡고 있는데, 그 그리운 손을 나는 잡을 수가 없었다.
왜? 왜 내 앞에 있음에도 이렇게 멀게 느껴지는 건데.
그 순간 깨달았다. 눈을 떠야 한다는 것을. 엄마를 만나려면 그만 자야 한다는 것을.
[다현아…!]
“다현아!”
살짝 벌어진 틈 사이로 들어오는 빛은 너무도 눈을 시리게 만들었다. 무언가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시야에 고통부터 닥친다. 막혔던 숨을 찾듯 천천히 숨을 들이쉬고 내뱉었다.
“어머, 어머! 다현아, 다현아! 간호사, 얼른 간호사!”
가까이에 있었음에도 멀어서 들리지 않던 소리가 선명했다.
귀를 울리니 귀만이 아니라 머리까지 울려왔다.
시리기만 하던 눈이, 눈꺼풀의 무거운 무게에도 서서히 제게 담기는 세상을 맞이한다.
시야 한편으로 들어오는 창밖의 푸른 나무 한 그루.
저를 향해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 살랑이는 나를 부르던 나무 한 그루.
나를 반기는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