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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빚은 위스키- 요이치 닛카 위스키 마지막 회

by 늘 담담하게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다 해도 삶은 계속 이어지는 것인가? 리타가 세상을 떠나고 난 뒤, 마사타카는 끝없는 슬픔을 견디면서 살았다. 누군가는 떠난다고 해도 무심한 삶은 흘러가듯, 위스키 생산은 순조로웠고, 닛카 위스키는 더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갔다. 그 무렵에 야마모토 다메사부로는 마사타카에게 큰 제안을 하게 된다.


image.JPEG?type=w966 (1920년경에 촬영된 것으로 스코틀랜드에서 위스키 공장장과 함께 한 사진)


그것은 마사타카의 오랜 꿈이었던 글렌 위스키의 제조였다. 스카치위스키가 전 세계적으로 퍼진 것은 몰트와 글렌(그레인) 위스키의 원액을 혼합한 블렌디드 위스키가 되면서부터이다.


간단하게 위스키를 구분해 보자.


몰트 위스키는 맥아 곡물에서 주로 생산되는 발효 매쉬로 만든 위스키이며, 글렌 위스키는 맥아를 사용하여, 옥수수나 호밀, 이름 그대로 곡물(grain)을 당화 시켜 알코올발효로 생성된 알코올을 연속식 증류기를 이용해 증류시켜 만든다. 숙성을 거치기 전에는 맛과 향이 거의 없고, 단품 자체로는 제품화되는 경우가 거의 없으며 대부분 혼합 위스키(블렌디드 위스키)를 만드는 데 사용된다. 그래서 글렌 위스키의 맛은 전체적으로 대부분 가볍고 부드러운 편이다.


몰트위스키는 단식 증류기로 만들지만 글렌 위스키는 연속식 증류기가 필요했다. 그런데 이 연속식 증류장치에는 막대한 자금이 들어가게 된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몰트 위스키에 원료 알코올을 혼합하고 있었기 때문에 글렌 위스키 생산은 일본에서는 어려울 것이라고 마사타카는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 야마모토 다메사부로는 마사타카에게 말했다.


"몰트에 글렌을 섞어, 스카치위스키에 뒤지지 않는 닛카 위스키를 만들어요, 천국에 있는 리타를 위해서라도, 자금은 어떻게든 마련해 볼게요.."


놀라운 제안이었다. 쉽게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정말 세상을 떠난 리타가 도움을 준 것일까? 마사타카는 자신과 리타가 못다 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세상을 떠난 리타가 도움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후 마사타카는 스코틀랜드로 건너가 연속식 증류 장치의 도입을 위해 현지 업체들을 돌아보게 되었다. 그 일정에서 에든버러의 프린세스 공원에 잠시 들르게 된다.

image.JPEG?type=w966 (에든버러에 있는 프린세스 공원)

프린세스 공원은 40여 년 전 그대로의 모습이 남아 있었다. 그곳에서 마사타카는 리타를 떠올렸다. 그 공원은 신혼 초에 리타와 자주 들렀던 곳이기도 하지만 처음 리타가 그에게 연정을 드러낸 곳이기도 했다. 그때 리타는 1차 세계대전에서 전사한 자신의 약혼자 이야기를 꺼냈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아름다웠던 시절의 추억들이 되살아났다.


image.JPEG?type=w966 유학 당시 촬영한 사진
image.JPEG?type=w966 리타의 생가가 있던 장소


image.JPEG?type=w966 (두 사람이 결혼식을 올렸던 등기소, 현재는 밀레니엄홀 에든버러로 바뀌었다)

이 여정에서 마사타카는 연속식 증류 장치를 도입을 결정했고 마침내 1964년 효고현 니시노미야에 글렌 위스키 생산을 위한 아사히 주조가 만들어졌다. 리타가 죽은 지 3년 후였다. 하지만 뜻밖에도 이 모든 일을 함께 했던 야마모토 다메사부로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고 만다. 사랑하는 아내와 오랜 친구를 연이어 잃었지만 마사타카는 글렌 위스키 제조에 매달렸고 마침내 니시노미야에서 생산된 글렌위스키와 요이치에서 생산된 몰트 위스키를 혼합한 블렌디드 위스키가 탄생했다.


그는 새로이 생산된 블렌디드 위스키 한잔을 마시며 자신과 함께 했던 리타, 그리고 야마모토를 위해 떠올렸다. 모두 그들이 함께 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그들이 없었다면 일본에서 위스키의 탄생은 있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돌아보면 리타와 야마모토, 두 사람은 마사타카의 삶에 있어 가장 큰 지지자였으며 동반자였다. 특히 야마모토는 더욱 그랬다. 스코틀랜드로 떠날 때도 나와 배웅해 주었고, 리타와 함께 귀국했을 때에도 그 자리에 마중 나와 준 사람이 야마모토였다. 그것뿐 아니라 귀국 후의 어려운 시기에도 마사타카와 리타 두 사람은 야마모토의 지원 때문에 견뎌낼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는 글렌위스키 공장의 설립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천국에서도 야마모토는 리타를 보살펴 주고 있을 거야"


마사타카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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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시간이 흘러가면서 마사타카는 일본 위스키의 아버지라 불렸고 리타는 일본 위스키의 어머니라 불리게 되었다. 1979년 1월 마사타카에게 병이 찾아와 도쿄의 병원에 입원했다. 서서히 그는 리타에게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1979년 8월 29일 입원해 있던 도쿄의 쥰텐도다이카쿠 대학병원에서 폐렴에 의해 마사타카는 평화롭게 눈을 감았다. 천국에 있는 리타의 곁으로 돌아간 것이다. 그때 그의 나이 85세, 리타가 세상을 떠난 지 18년이 흐른 뒤였다.


그의 유해는 홋카이도 요이치로 옮겨져 그가 그토록 사랑했던 리타의 곁에 묻혔다. 나는 삿포로를 여행할 때마다 , 그리고 요이치의 닛카 위스키 공장을 들를 때마다 리타와 마사타카 그 두 사람의 사랑과 인생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을 따라 그 머나먼 길을 함께 떠났고 낯선 타국에서 꿈을 향해 나아갔던 두 사람.. 전쟁의 혼란스러움, 다른 문화의 차이로 인해 갈등등, 말로는 쉽게 표현하기 힘든 그 모든 어려움을 극복해 낸 리타와 마사타카. 그들의 아름다운 사랑은 어떤 것일까?


그들이 이룬 사랑과 꿈은 지금도 여전히 생생하게 남아 있다. 요이치시에는 리타를 기리는 리타 로드가 있으며 삿포로의 중심부 스스키노에는 닛카 위스키의 광고가 여행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image.JPEG?type=w966 (스스키노 사거리의 닛카 위스키 광고판)

그리고 두 사람은 아름다운 사랑은 지금도 홋카이도 요이치에 영원히 남아 있다.

image.JPEG?type=w966 ( 리타와 마사타카의 묘가 있는 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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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마사타카는 손자에게 유언을 남겼다.


"너는 국제결혼은 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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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에 발매된 닛카 위스키, 정식 명칭은 닛카 애플 블렌디드 리타 30년, 닛카 위스키 80주년을 기념하여 한정 발매된 상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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