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야토노가제를 타고 가고시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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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R 요시마츠역吉松駅에서 내려서 바꿔 타야 할 열차는 하야토노가제(はやとの風 하야토의 바람)이었다.
먼저 외관을 보자. 이 열차는 요시마츠를 출발, 하야토를 거쳐, 가고시마 주오역鹿児島中央駅까지 이어지는 히사츠선 여행의 마지막 대미를 장식하게 된다.
JR규슈에서 이 열차를 이렇게 소개했다.
"푸르름 가득한 키리시마(霧島)를 바라보며 달리는 검은빛의 외관과 금색 앰블럼이 빛나는 우아하고 중후한 분위기의 열차로, 원목으로 제작된 시트좌석은 옛 추억 속의 따뜻한 분위기가 넘칩니다. 때 묻지 않은 자연과 온천을 간직한 신화의 고장이라고 불리는 키리시마(霧島)까지 운행됩니다. "
하야토노가제는 요시마츠역에서 가고시마주오역 사이를 운행하고 있는데, 요시마츠역에서 하야토역 사이는 히사츠선 구간을, 그리고 하야토역에서 가고시마주오역까지는 JR닛포본선(日豊本線 고쿠라- 가고시마)을 이용한다.
이 열차는 2004년 3월 13일 규슈 신칸센 가고시마 루트가 부분 개업했을 때 규슈신칸센에 연결, 기리시마 방면으로의 관광열차로 운행을 시작했다. 당시에는 전용차의 준비가 안되어 있었기 때문에 임시열차로 운행하고 있었지만 예비차량이 확보된 2006년 3월부터 정기 열차가 되었고 오늘날 JR규슈 관할의 남규슈 지역에 많은 관광열차가 달리게 된 계기를 만들었다. 여행용 차량으로는 드물게 로열 블랙으로 도장되어 있다. 창문개폐가 가능하고 인테리어도 난연 목재를 사용하고 있고 전체적으로 내부는 화사한 느낌이 들었다.
*주- 2025년 6월 현재 이 열차는 폐지된 상태이다. 앞서 여러 번 언급한 히사츠선이 2020년 일본 서남부 폭우 사태로 인해 큰 피해를 입고, 코로나 바이러스로 이용객수도 격감하면서, 2020년 9월부터는 아예 운휴 중이었다. 결국 니시규슈 신칸센이 개통되기 직전인 2022년 3월 21일에 영업을 종료하고, 그쪽 재래선 구간인 나가사키 본선과 오무라선에서 운행되게 되는 새로운 D&S 특급인 '후타츠보시 4047'로 리뉴얼되었다. 후타츠보시 4047은 니시규슈 신칸센 개통에 맞춰 2022년 9월 23일에 개통했다.
이 열차는 키하 40계 2량 편성으로, 1호차는 전석 지정석이며, 2호차는 자유석도 있다.
*주-일본 철도 여행 덕후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열차의 종류를 설명하면서 키하 40계를 자주 언급하게 되는데 키하 40계는 일본 철도가 민영화되기 이전에 일본 국유 철도가 적자로 시달리던 마지막 시기에 지방 로컬 노선들의 비용 절감을 위해 1977년부터 1982년까지 무려 888량을 생산한 열차들 이었다. 초기에는 40톤 가까운 중량에 250마력밖에 안 나오는 엔진으로 혹평을 받았으나 민영화 후 대부분 엔진을 교체한 덕에 마지막 생산 후 40년이 넘어간 2025년 현재에도 여전히 현역이다. 통칭 욘마루(よんまる).
일본 곳곳에 널린 비전철화 지방교통선에 이 계열이 보통열차로 등장했고, 그 결과 전철화가 되지 않은 곳에서는 자주 볼 수 있다. 현재에도 일본의 시골 지방 비전철 노선에서는 여전히 이 차종이 다니고 있다. 특히 JR 홋카이도 주고쿠도 흔하다 단, JR 도카이에서는 2016년 3월 25일을 마지막으로 현역에서 완전히 은퇴하였다.
화장실의 유무 여부, 운전대가 어느 쪽에 있는지, 혹한 날씨 및 폭설에 대응할 수 있는지, 어떤 방식의 개조를 받았는지 등의 여부에 따라 번대가 가지치기로 나눠지며, 일부 차량은 관광열차로 개조되었다.
키하 40계 차량 중 764호는 영화 『철도원』 촬영을 위해 개조되기도 했는데, 아사다 지로의 원작 소설에서는 키가 12계 열차라고 명시되어 있지만 영화화가 이루어지는 시점에서 이미 해당 차량은 현역에 존재하지 않아서 키하 40-764호를 키가 12계와 유사하게 보이도록 개조하여 영화촬영에 사용되었고, 영화 작중에서는 키아 12-23호라는 차량번호를 부여받았다. 영화 촬영 종료 후에는 원래 차호인 키아 40-764호로 복귀되고, 외형도 개조된 모습을 그대로 남긴 채 운행하다 퇴역 후 폐차되어 차량 일부가 작중 호로마이역의 배경이 되는 이쿠토라역에 보존되어 있다(이 열차에 대한 이야기는 후라노 선 여행기에서 다룰 것이다)
1호차와 2호차 중앙에는 모두 전망좌석이 있어서 열차로 이동하면서 바깥 풍경을 볼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이 열차에는 2004년 특급 하야토노 가제의 운전 개시 후 토일 공휴일에 한해 기리시마시에 있는 森の弁当やまだ屋에서 만든 백 년의 여행이야기, 가레이카와百年の旅物語かれい川라는 도시락이 판매되었다.
이 도시락은 그냥 살 수는 없고 반드시 사전예약이 필요했는데 내용물은 죽순과 표고버섯, 완두콩이 넣어진 죽순밥과 스프링롤, 무 당근, 고로케, 가지 호박, 튀김등을 구성되었다. 이 도시락은 규슈 도시락 랭킹에서 2008년부터 3년 연속으로 1위를 차지했다.
바로 이 에키밴이 백 년의 여행 이야기 가레이카와百年の旅物語かれい川이다.
자, 이제 하야토노가제를 타고 여행했던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 보자. 요시마츠에서 하야토까지는 비교적 높은 산이 아닌 평지를 이어 달리게 되는데, 한가로운 일본 시골의 풍경이 펼쳐진다. 요시마츠역을 떠나서 쿠리노역을 지나, 오스미 요코카와역大隅横川駅에 도착하게 된다.
1903년에 개업한 이 역은 가고시마현에서 가레이카와역과 더불어 가장 오래된 역이다. 본래 요코가와(横川)역으로 개업했으나, 1920년에 오스미(大隅)를 붙였다. 역사 건물은 개업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그 때문에 국가 유형 등록 문화재로 2006년에 선정되었다. 1945년 7월 30일 미군 공습 시, 이 역에 정차되어 있던 열차와 역사가 초토화되는데 그때 전투기의 기총소사 흔적이 아직도 역사기둥에 남아 있다. 지금은 무인역이 되어 버렸지만 한때는 옛 요코가와 마을의 중심지에 있던 역이었다.
사진의 기둥에서 보이는 구멍들이 당시 미군 전투기의 기총소사 흔적이다.
다시 열차를 탔다. 나를 태운 하야토노가제는 우에무라역植村駅을 지나게 된다.
전형적인 일본의 시골역이다. 철도 여행을 거듭하다 보면 매우 세련된 신칸센역보다는 이런 작은, 시골 무인역에 더 시선이 가게 된다. 다음 정차역은 기리시마온천역이고 그다음이 가레이카와 역嘉例川駅이다.
열차가 멈춰 서고 열차에 내려서는 순간 나는 백 년 전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것은 느낌이 들었다. 이 역이 개업한 것은 1903년 1월 15일. 가고시마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간직한 역이다. 개업 당시는 역장과 출납 겸 전신 계 1 명과 역부 5명으로 운영되었고 역장의 월급은 19원 80전이었다고 한다. 1920년에는 히로히토 천황이 이곳을 방문하기도 했는데 그때 몰려나온 인파가 3-4만 명이라나..
지금은 이따금 찾아오는 여행자들뿐이지만 이 외로운 무인역에 2021년 이후 고양이 한 마리가 살고 있다. 이름은 냥타로. 고양이 역장으로 근무 중이다.
가레이카와 역은 개업 당시만 해도 묘켄 온천 (妙見温泉 가고시마현 하야토 정에 있는 온천)의 입구에 해당되는 역으로, 온천에 가려는 사람은 자기 부담으로 이불을 철도편으로 운송해서, 역에서 온천의 숙소까지 카츠 기야(식량등을 생산지에서 짊어지고 와서 파는 사람. 특히 2차 대전 이후 암시장 물자를 지방에서 도시로 몰래 운반해 판 사람) 운반하게 했다. 또한 화물도 취급해서, 역무원도 여러 명이 상주해서 크게 붐볐다. 그러니까 120여 년 전에는 온천을 가려는 사람은 자신이 덮고 잘 침구를 준비해 간 것이다.
이때의 규슈 철도여행에서 백 년이 넘은 옛날 역들을 여행한 것은 정말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있다. 히사츠선의 여행은 단순히 특색 있는 관광열차를 타는 것 이상이었다. 루프선과 스위치백, 백 년이 넘은 낡은 역들... 이런 역들을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 실시간으로 다른 이들에게 전달하는 뭐라 간단하게 설명할 수 없는 여행의 풍경이었다.
가레이카와 역을 떠난 하야토노가제는 무수한 작은 역들을 지나 하야토역을 향해 달렸다. 히사츠선의 마지막 구간을 지나 하야토역에 잠시 정차한 뒤, 가고시마역을 거쳐 가고시마 주오역에 도착하게 되는데 이 구간이 바로 닛포본선의 구간이다. 이 구간은 앞서 본 산과 강, 평온한 전원 풍경이 아니라, 바닷가를 끼고 달리면서 가고시마의 명물 사쿠라지마를 멀리서 바라보며 달리게 되는데, 이 풍경 또한 정말 아름답다.
여기서 하야토隼人가 무슨 뜻인지 알고 가야 할 것 같다. 하야토는 고대 일본의 야마토 정권에 대항하여 독자적인 문화를 가졌던 하야토 부족의 본거지였다. (이들은 서기 720년경에 야마토 정권의 지배에 반란으로 맞섰다. 이들의 용맹한 무사도 정신을 기려, 요시마츠와 가고시마 주오역 사이의 관광열차의 이름을 하야토노가제라고 정한 것이다.)
관광열차답게 류가미츠역에서 가고시마역 사이에서 속도를 줄여 천천히 운행하는데 이때 가고시마의 명물 사쿠라지마를 볼 수 있게 해 주었다.
다시 햇빛과 파란 하늘이 드러나고 있었다. 푸른 하늘과 푸른 바다, 이제 나는 동중국해를 보고 있는 것이다.
시간은 12시 49분, 하야토노가제는 마침내 가고시마 주오鹿児島中央駅역에 도착했다.
가고시마주오역 앞에는 젊은 사츠마의 군상이라는 동상들이 서 있다. (가고시마역의 역사와 이 동상들에 대한 이야기는 후속 편에서)
가고시마주오역에 도착한 나는 이날 사전에 예약해 둔 관광버스의 정류장을 향했다. 워낙 짧은 일정이었기에 가고시마에 많은 시간을 배분할 수가 없었다. 가고시마에서 하룻밤을 머물고 다음날은 이부스키를 거쳐 JR 최남단역인 니시오오야마를 다녀와야 했기 때문에 가고시마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은 오후뿐이었다. 그 짧은 시간을 효율적으로 여행할 수 있는 것은 관광버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