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의 정원
이번 브런치북 시리즈의 마지막 이야기(브런치북은 30회가 한정)는 히로시마의 정원, 슛케이엔이다. 사실 히로시마를 여행할 때 제일 먼저 간 곳이 슛케이엔縮景園이다.
일본 각지를 여행하면서 수많은 정원을 보았다. 홋카이도 지역의 정원은 영국식 정원들, 그러니까 영국을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나 영화에 등장하는 정원들이 대부분이고, 나머지 혼슈나, 규슈, 시코쿠 등은 일본 고유의 정원들이다.
슛케이엔은 히로시마시 나카구에 있는 공원으로 1620년, 히로시마번 아사노가문의 초대 번주인 아사노 나가아키라(浅野 長晟 1586-1632)가 만들게 한 번주의 별저(다이묘 정원)가 기원이며, 역대 아사노 가문으로로부터 사랑을 받아 에도막부시대 내내 확대해 왔다. 1940년 아사노 가문이 히로시마현에 기증해 현재에 이르렀다.
아사노 나가아키라
최초에 나리아키라의 명에 의해 정원을 만든 것은 아사노 나리아키라의 충실한 신하였던 우에다 시게야스(上田 重安1563-1650)에 의한 것이지만, 정원의 원형은 교토 정원사 시미즈 시치로에몬(淸水七郎右門)에 의해 대대적인 개수 작업에 의해 만들어졌다. 이후 여러 개수 작업등이 이어졌고, 1900년대초, 메이지 시대 말기 무렵에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그러나 1945년 히로시마시에 원자폭탄 투하에 의해 황폐화되었고 전쟁이 끝난 이후 재건 작업은 1970년대까지 계속 되었다.
슛케이엔의 위치는 히로시마 시내 중심부 , 오타가와강 수계에 있는 교바시가와 강 하구에서 약 6.4㎞ 상류에 위치한다. 서쪽에 히로시마성, 교바시가와강을 사이에 두고 동쪽에 히로시마역이 있다. 주변은 숲이 많고 교바시가와 강 상류 동쪽에 강을 따라 녹지가 정비되어 있다. 남서쪽은 히로시마 현립 미술관이 , 남동쪽은 히로시마 시립 중학교·히로시마 시장 공관이 있다. 이곳들은 원래 슛케이엔의 영역에 포함되어 있었다.
슛케이엔이란 이름은 수많은 경승지를 모아 그 축소판을 표현한다는 데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는데 일설에 의하면 중국 항저우의 서호를 모방한 것이라고 한다.
슛케이엔은 전형적인 일본의 회유식 정원이다. 회유식 정원은 중앙에 있는 연못을 중심으로 거닐며 자연을 완성하고 감상을 하는 정원 형태이다. 9세기 중국 당나라 시인 백낙천으로 시작되어 일본에서는 무로마치 시대에 시작되었다. 최전성기는 에도시대 초기로서 여러 다이묘들의 정원 대부분이 이 방식을 취했다. 슛케이엔에는 멀리 보이는 산, 마을과 떨어진 계곡, 그리고 광대한 해안 등, 다양한 경치들이 담겨 있다.
정문으로 들어가서 직진하면 중앙 쪽에 다실 세이후칸清風館이 있다. 맑은 바람이 부는 집이라는 뜻이다. 슛케이엔에서 가장 큰 건물로 1964년에 복원되었다. 그 앞에 세이후이케 연못清風池이 있다.
1894년 청일전쟁 때 대본영이 도쿄에서 히로시마로 옮겨와서 히로시마성이 대본영이 되었지만 실은 이곳 슛케이엔이 대본영 부영이 되었으며, 이 세이후칸은 메이지 천황의 거처로 사용되었다.
이 세이후칸의 동쪽(동쪽이라고 해봤자 바로 앞)에 다쿠에이치 연못濯纓池이 보인다. 슛케이엔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다쿠에이치 연못의 뜻은 갓끈을 씻는 연못이라는 뜻이다. 연못의 면적은 약 8천 평방미터이고 가장 깊은 곳은 약 1.2m이다.
다쿠에이치 연못을 동서로 나누는 중앙부의 다리 고코쿄跨虹橋 (무지개를 넘는 다리라는 뜻)이다. 1786년에 완공된, 석제 아치교와 육교로 이루어진 원내에서도 몇 안 되는 태평양 전쟁 전부터 있었던 다리이다.. 길이 27.4 m×폭 2.1m로 주요 부분은 화강암으로 되어 있다. 7대 번주 아사노 시게아키라(浅野重晟)가 교토의 장인으로 하여금 두 번이나 다시 만들게 했다고 전해진다. 도쿄 고이시카와 고라쿠엔의 엔게쓰바시나 교토 슈가쿠인 별궁의 치토세바시와 닮았다. 이 다리를 중심으로 연못은 지상과 하늘로 나눠진다.
세키쇼안夕照庵
원폭 투하에서 살아남았다는 은행나무
슛케이엔의 역사를 돌아보면 처음 정원이 조성된 이후 대대적인 개조가 있었던 것은 모두 2번이다.
첫 번째는 1758년 히로시마 대화재로 인해 히로시마 성 주변이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해버렸다. 이후 7대 번주였던 아사노 시게아키라에 의해 성하 마을의 재건이 이루어졌을 때 1783년에 교토에서 정원사를 불러 다시 짓다시피 하는 복구가 이루어졌다. 두 번째는 1830년 8대 번주 아사노 나리카타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때는 히로시마번의 재정이 가장 안정적일 때였다. 그러나 1945년 히로시마 원폭 투하로 인해 이 정원은 거의 괴멸 상태가 되었다.
원폭 전후의 사진을 비교한 그림엽서
히로시마 현립 문서관이 소유하고 있는 원폭 투하 이전의 슛케이엔 사진들이다.
슛케이엔은 히로시마시의 유명한 정원이었지만 내가 이곳을 갔을 때 매우 조용한 분위기여서 유독 기억에 남아 있다. 슛케이엔을 여행한 직후 나는 여행 일기에 이렇게 썼다.
"처음부터 끝까지 느껴지는 나무와 풀에서 흘러나오는 향기와 시원함.. 오랜만에 괜찮은 산림욕을 하게 되었다고 친구와 이야기했다. 맑은 날씨와 숲.... 오랜만에 맛보는 즐거움이었다. 천천히 걸으며,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그 바람에 흔들리는 대나무 잎들의 미묘한 흔들림과 소리를 들으며 나는 여행의 시작부터가 이렇게 좋았으니... 끝까지 좋았으면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이 글을 쓰면서도 5월의 슛케이엔 풍경이 눈앞으로 스쳐 지나간다. 그리고 다시 히로시마를 여행하게 된다면 슛케이엔의 가을 단풍 혹은 봄 풍경을 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히로시마를 여행하게 된다면 가벼운 마음으로 꼭 돌아보기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