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고시마의 밤거리를 걷다.
사쿠라지마에서 다시 가고시마로 돌아온 관광버스는 친절하게도 내가 묵게 되는 호텔 근처에서 나를 내려줬다. 호텔에 체크인을 하고 나니, 슬슬 배가 고파졌다. 어디로 가서 저녁을 먹을까 고민하다가, 가고시마의 유명 돈가스 전문점이 가고시마 주오역에 있다고 해서 찾아가 보기로 했다.
일본 여행 초기만 해도 사실 먹는 것에 비중을 두지 않았던 터라, 배고프면 먹고 그것도 간단히 먹는 정도였다. 그때에는 뭐가 부끄러웠는지 식당에 가서 뭘 사 먹는 것조차 망설이다 돌아오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여행지를 가면 되도록 그 여행지에서 가장 유명한 음식을 맛보고 오려고 하는데 바로 이날도 돈가스를 먹어보기로 한 것이다. 사실 가고시마는 구로부타黒豚, 그러니까 흑돼지로 유명한 곳이다.
이 구로부타의 고기맛이 뛰어나기 때문에 그 고기로 만든 돈가스도 일본의 여타 지방보다는 맛있기로 소문이 나 있다. 발걸음도 가볍게 나는 가고시마 주오역의 아뮤 플라자 건물로 향했다.
가고시마 주오역, 아뮤플라자를 향해 걸었다. 사진 오른쪽에 내가 머물렀던 호텔이 보인다.
(크리스마스트리가 세워져 있어 크리스마스가 멀지 않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한국은 연일 눈보라가 몰아닥치고 있을 때 당시 가고시마의 기온은 영상 10도에서 15도 사이)
이왕 가고시마주오鹿児島中央駅역을 간 김에 가고시마주오역의 역사를 잠시 살펴보자, 가고시마주오역은 1913년 11월 13일에 센다이선이 개통됨에 따라 타케역 武駅이 설치된 것이 그 시초이다. 당시 이 역이 개설되었을 때만 해도 주변은 온통 자연 그대로의 전경이 펼쳐져 있었다. 1927년에 가고시마 본선이 개설되자 그때 이름을 니시가고시마역으로 변경이 되었다. 이 역사는 태평양전쟁 말기 미군의 공습으로 파괴되어 전후 5년 뒤인 1950년에 두 번째 역사가 만들어졌다.
2004년 3월 13일 규슈신간켄의 부분개업(신야츠시로-가고시마츄오) 시 지금의 이름으로 개명하였다. JR규슈의 역들 중에서는 하카타역, 고쿠라역에 이어 이용객 수가 3위이다. 가고시마 본선과 닛포본선의 종점은 가고시마역이지만 가고시마 본선의 열차는 거의 대부분 이 역까지만 운행하고, 닛포 본선의 열차는 모두 이 역까지 운행한다. 윗 사진의 역사 건물은 3번째 역사이고 이후 이 계단이 철거되고 새롭게 단장된 것이 아래 사진의 역사 건물이다.
자, 역사 오른편에 있는 건물이 아뮤 플라자인데 이 건물의 식당가는 지하 1층과 지상 5층에 있는데 나는 지하 1층으로 향했다. 바로 그곳에 돈가스 전문점 카쓰주 (かつ寿)가 있다.
예전 JR 규슈 블로그에 보면 이 집의 돈가스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자리에 앉으시면 조그마한 메뉴판을 보실 수 있으신데요. 주메뉴로는 로스가스 정식(ロース かつ 定食20円)과 히레가스 정식(ヒレ かつ 定食_)이 있습니다. 로스(ロース)란 우리말로는 등심으로 어깨 부분에서 허리까지의 돼지고기 부분을 뜻하는데요. 살코기와 적당한 지방을 동시에 맛볼 수 있답니다.
히레(ヒレ)는 우리말로 안심으로 허리뼈 안쪽에 있는 단백질 덩어리를 뜻하는데요. 돼지 한 마리에 1kg 밖에 생산되지 않는 분위로 지방 함유가 적고 고단백이면서 돼지고기 부위 중 가장 부드러운 부위랍니다.
돈가스 주메뉴 외에도 치킨가스 정식(チキン かつ 定食_), 에비토로스가스 정식(海老と ロース かつ 定食),
믹스가스 정식(ミックス かつ 定食) 등이 있는데요. 식탐이 좋은 저에게 가장 탐나는 메뉴는 바로 점보로스가스 정식(ジャンボロース かつ 定食_1,450円)이랍니다. 점보 사이즈가 눈앞에 아른아른거리지만 오늘은 가고시마의 쿠로부타의 진정한 맛을 느끼로 왔으므로 쿠로부타로스가스 정식(黒豚ロース かつ 定食)으로 주문하였답니다. 양이냐 질이냐, 점보냐 쿠로부타냐 많은 고민을 하였는데 여러분은 선택은 어떠신가요?"
네 저의 선택은 구로부타로스가스 정식도 먹을 볼까 했지만 그것만 먹기는 부담스러워서 에비토로스 가스 정식을 선택할게요!!! (어떠신가요?라고 귀엽게 물어보았으니 나도 귀엽게 대답..)
마침내 주문되어 내 앞에 놓인 에비토로스 가스 정식, 새우 2마리와 로스 가스 정식이 합쳐져 나오는 것인데 우선 갓 튀겨진 새우를 한입 베어 물면 아삭한 식감과 고소한 맛이 입안으로 파고든다. 갓 지어낸 윤기 잘잘한 하얀 밥에 얹어 먹는 그 맛이란... 로스 가스를 입안에 넣고 한입 베어 물었다. 그러자 돼지 육즙과 바삭바삭한 맛이 정말 행복하게 만들었다.
이것은 히레가스 정식이다.
이 사진은 구로부타로스가스 정식.
정말 제대로 된 돈가스의 맛이었다.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는 꼭 혼자이다. 누군가에게 이 맛을 전할 수도 없고... 정말 너무 배가 부를 정도로 많이 먹었다. (사실 식사 전 메뉴를 주문할 때 주문을 받는 여성점원과 약간의 의사소통이 잘못되어 사진에 나오는 일반적인 크기의 밥을 준 게 아니라, 두 배정도의 양을 갖다 줘서.. 정말 다 먹는데 힘들었다. 그녀는 생글생글 웃으며 보고 있어서 남길 수도 없고...)
저녁식사 후 나는 가고시마의 번화가 덴몬칸天文館 (てんもんかん)을 둘러보기로 했다. 덴몬칸은 가고시마시의 번화가, 환락가를 총칭하는 말인데, 젊은이들은 텐마치 天街 라는 애칭으로 부르는 곳이다.
덴몬칸의 중심부에는 덴몬칸 혼도리 아케이드, 덴몬칸 G3 아케이드, 덴몬칸 전차 거리 (いづろ거리)가 종횡으로 가로지르며 그 주변을 아케이드와 컬러 포장된 거리가 그물코 모양으로 늘어서. 이 거리에서는 오래전부터 개인 상점 외에 카페등 세련된 가게가 즐비하고 또한 놀이시설과 수많은 음식점들이 늘어서 있어, 밤낮 연중를 불문하고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덴몬칸은 아케이드가 아치형 한쪽 지붕 형식을 합해 약 2km에 달하며 이것은 사쿠라지마의 화산재와 여름의 강한 햇볕을 피하기 위해서이다.
이곳은 에도시대 제25대 사쓰마번주 시마즈 시계히데가 천체 관측과 역법의 연구시설로 명시관 明時館을 건설한 것에서 유래되었다. 메이지 시대까지는 덴몬칸 일대는 공터가 많은 외진 곳이었지만 다이쇼 시대 전기에 南林寺묘지가 이전하고 다이쇼시대 후기부터 쇼와 시대 초기까지 노면전차가 개통됨에 따라 가고시마 좌(1918 년 화재로 소실)을 비롯한 다수의 영화관과 극장이 개관했다. 이 때문에 가고시마 각지에서 밤낮 구별이 없이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이들 위한 술집과 식당등이 자연 발생적으로 나타났다. 이 시기에 환락가도 원형이 형성이 되었다. 그 후 이곳에 대형 백화점이 들어서면서 그 주변의 상점과 상가가 점차 쇼핑 지역으로 변모하고 전쟁 이후 현재의 거리가 완성되었다.
(덴몬칸의 지도와 덴몬칸의 변천 모습 오른쪽 사진에 보이는 것이 오늘날의 덴몬칸이 형성되기 시작했던 백화점 야마가타야山形屋의 모습이다.)
1917년에 건립된 이 야마가타야는 원래 야마가타현 지역에서 온 포목상이 그 기원이었다. 시마즈가의 번주에게서 허가를 받아 가고시마성 아래에서 포목점을 열었고 메이지 유신 이후에는 이 부근에 메이지야라고 하는 르네상스풍의 3층 건물을 지어 가고시마 제일의 상점이 되었다. 이후 현재 사진에 나와 있는 야마가타야를 건축할 무렵에 가고시마 시영 전차를 계획노선이 현재보다 더 남쪽으로 치우쳐 논의되었다. 당시 전차가 통과하는 노선에 있던 그 지역의 상인들의 반대로 난항에 부딪치게 되었을 때 이 야마가타야의 사장이 나서 철거비용을 대고 시영전차 노선을 변경 현재의 노선으로 유치했다. 미래를 내다본 그의 선견지명덕에 이곳은 번화가가 되었고 그 후 야마가타야는 엄청난 발전을 이루게 된다.
이후 야마가타야는 향토 백화점으로 가고시마의 대표 기업이 되었고 가고시마 사람들의 애향심에 의해 외지에서 온 백화점을 다시 철수케 할 정도로 번영을 구가했지만 현재는 점차 매출이 줄어들고 있다.
옛날 가고시마 시내 전경의 사진이다. 정확한 촬영연대를 확인할 수 없는데 사진 상단이 바다이고 왼쪽 부분에 사쿠라지마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바로 위의 사진부터 이어지는 사진들은 야마타가야와 그 주변 거리가 어떻게 발전되어 왔는지를 보여주는 것들이다.
덴몬칸의 옛 모습도 살펴보자
1935년 무렵의 덴몬칸 거리의 모습이다.
이런 모습의 거리가 오늘날은 이렇게 변해 있다.(아래 사진)
덴몬칸 거리는 일루미네이션이 한창이었다.
거리를 이리저리, 일루미네이션을 보기 위해 계속 걸었더니 다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정말 빠듯한 하루였다. 아침에 히토요시를 출발해서 열차를 두 번 갈아타고 가고시마주오역에 도착해서 바로 관광버스를 타고, 센간엔과 사쿠라지마를 돌아보고, 다시 덴몬칸 일대를 쏘다녔으니 피곤할 만도 하다. 호텔로 돌아오기 전에 한 가지 더 먹어봐야 할 곳이 생각나서 그곳으로 갔다. 덴몬칸의 가카시요코초의 도넛을 먹기 위해서였다.
이곳이 바로 향토과자 전문점 가카시요코초 かかしよこちょう이다. 이곳에는 가고시마의 향토과자들이 모두 모여 있는 곳이다.
규슈 레일 짱의 블로그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가카시요코초에서는 가고시마를 대표하는 향토 과자인 카루칸(かるかん)도 맛보실 수 있는데요. 330년이 넘는 전통을 지닌 카루칸은 참마와 쌀가루, 설탕을 이용해 만든 가고시마의 대표 향토 과자입니다. 참마의 향기와 적당한 단맛을 지닌 카루칸은 에도시대 때에도 고가의 향토 과자여서 지방의 영주를 비롯한 일부 사람만이 먹을 수 있었다고 하는데요. 이곳 가카시요코초에서는 둥그랗게 빚은 모제카루칸(もぜかるかん)과 팥 앙금을 넣은 카루칸 만주(かるかん饅頭)등 다양한 종류의 카루칸을 맛보실 수 있답니다. 사진으로만 보아도 벌써부터 군침이 돌지 않으신가요"
네 군침이 도네요.. 아무리 저녁을 많이 먹었어도...
역시 규슈레일 짱의 블로그의 설명은..
"도넛을 기름에 튀기지 않고 증기에 구워서 느끼하지 않고 부드러운 맛을 내는 텐몬칸 야키도넛은 감히 다른 도넛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맛을 낸답니다. 굳이 가카시요코초에서 향토 과자를 사고 싶지 않다고 하셔도 텐몬칸 야키도넛을 먹으러 꼭 가보시라고 말하고 싶네요. 가카시요코초 2층에는 커피 한 잔을 하면서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곳도 마련되어 있으니 텐몬칸 야키도넛과 커피 한잔을 주문하고 잠시 여유를 즐기는 것도 좋답니다."
그러고 싶지만 이미 시간이 늦어서 2층은 올라갈 수 없었다. 맛있는 도넛을 순식간에 먹어치우고 나는 다시 호텔로 발걸음을 옮겼다. 쓸쓸한 1인 여행자, 늦가을의 가고시마 밤거리는 정말 쓸쓸했다. 다음날의 일정 또한 만만치 않았기에 그만 쉬어야 했다.
다음날의 일정은 이부스키마쿠라자키선을 타고 이부스키 온천으로 가서 검은 모래찜질을 하고 다시 JR 최남단역 니시오야마역을 갔다가 히사츠선을 타고 한밤중에 산악지대를 통과해서 구마모토로 돌아가야 하는 고된 일정이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