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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슈 횡단 철도 여행 -다테노역의 고양이

여행의 끝

by 늘 담담하게


다테노에 도착한 뒤로 구마모토로 돌아가는 규슈 횡단 특급열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한번 탑승해 본 열차이지만 규슈 횡단 철도 여행의 공식적인 마무리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다음날 아침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규슈 신칸센을 타야 했고, 후쿠오카의 하카타역에서 다시 후쿠오카 공항으로 가는 지하철이 남아 있었지만 그것은 제외했다.)


4일간 숨 가쁘게 달려온 열차여행이었다. 후쿠오카 공항에서 하카타역까지 지하철로 이동해서 패스를 교환한 뒤 규슈 신칸센을 타고 구마모토로, 구마모토성을 돌아보고 다시 열차를 타고 히토요시로, 히토요시여관에서 하룻밤을 머물며 히토요시를 여행한 뒤, 규슈 철도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히사츠선을 여행했고, 가고시마에서는 가고시마의 주요 여행지를 관광버스로 돌아보고, 다음날에 다시 이부스키와 최남단역 니시오오야마역을 다녀왔다.


그리고 A트레인 열차로 미스미를 다녀왔고 아소보이를 타고 다테노로 간 다음 미나미아소철도의 다카모리선을 여행했다. 이제 오직 구마모토로 가는 열차가 사실상의 마지막 열차 여행인 셈인데.., 이 다테노역에서 나는 고양이 한 마리를 만났다. 아마 길고양이인 듯싶은데 그날 오후부터 점차 차가워지는 날씨에 고양이는 텅 빈 다테노역으로 숨어 들어온 것 같았다. 고양이는 사람들을 전혀 무서워하지 않았다. (일본에서는 철도역 주변에 길고양이들이 많이 있고 간혹 역무원이나 주변 지역민들이 그 고양이를 보살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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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 녀석이었다. 이 녀석은 놀랍게도 사람들에게 다가와 무릎 위에 올라가 앉았다. 따뜻한 품이 그리웠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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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는 더 추워지고 바람이 강해지면서 눈발마저 언뜻 날리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열차가 도착할 테고, 나는 녀석에게 줄 게 없을까 가방을 뒤져봤지만 쓸쓸한 남자 여행자에게는 그 흔한 과자 부스러기조차 없었다.


그래서 혹시 주변에 가게라도 있을까 싶어 다테노역사 옆의 계단을 통해 주차장으로 나가봤지만 편의점조차 없었다. 이 산속의 외진 곳에 그런 곳이 있을 리 없었다.


결국 나는 텅 빈 손으로 돌아오고야 말았다. 그리고 내 옆으로 다가온 고양이에게 말했다.


"네가 한국어를 알아듣지 못할 테지만 미안하구나. 아무것도 줄게 없어.. 많이 춥지? 이 아저씨는 잠시 후에 열차를 타고 구마모토로 되돌아가야 해.. 이렇게 스치듯이 짧게 만나서 안타깝구나.. 사람들이 가고 혼자서 외롭겠지만 잘 버텨주렴. 날씨가 추워져서 걱정인데.. 어쩌면 좋니?"


정말 그런 말을 했냐고? 물론 했다. 나 자신도 길냥이의 힘든 삶을 잘 알고 있기에... 녀석에게 뭔가 그런 말을 남겨줘야 할 듯싶었다. 안타까웠다. 어쩌면 이런 짧은 만남이 있을 줄 생각이나 했을까?


녀석은 더 내 곁에 가까이 다가왔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녀석을 따뜻하게 쓰다듬어 주는 것뿐.. 마침내 역사 안에서 플랫폼으로 나가야 할 때가 되었다. 녀석은 이런 이별이 익숙해졌는지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손을 흔들었다. 텅 빈 역사에 홀로 남겨진 고양이에게 이런 작별의 인사를 하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함께 있던 일본인들은 나와는 반대로 오이타현쪽으로 가는 열차를 타고 이미 사라진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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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R다테노역바로 옆에 있는 미나미아소철도 다테노역의 열차, 내가 타고 온 열차인데 이 열차는 구마모토로 가는 특급열차와 시간이 맞춰져 거기서 내린 손님들을 태우고 떠나게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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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 희미하게 불빛을 내뿜으며 달려오는 열차, 바로 내가 타야 할 구마모토행 규슈 횡단 특급이다. 나는 다시 한번 역사 안으로 들어가서 그 고양이를 봤다. 추위에 움츠리고 있던 녀석은 나를 보고 야옹하며 울었다. 잘 가라는 인사인지, 다시 와요 라는 인사인지 알 수 없었으나, 나는 녀석에게 다가가서 그렇게 말했다.


"이 겨울 잘 견뎌주렴... 힘내라.." 그게 내가 고양이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생각해 보면 그날 다테노역에서의 고양이와의 만남은 오랫동안 잊지 못할 기억이 되었다. 일본을 여행하면서 그곳도 사람 사는 곳인지라 수많은 길고양이들을 마주쳤지만 그렇게 천연덕스럽게 사람품에 안긴 고양이는 처음이었고 그것도 여행의 끝 지점에서 마주친 고양이라니...


그것은 내 여행에 있어서 따뜻한 응원이었을까? 그 겨울이 끝나고 봄이 올 무렵에 아버지와 영원한 이별을 하게 될 남자에게 잘 견뎌보라는 그런 의미였던 걸까? 다테노역의 저 고양이는 지금쯤 잘 살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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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탕을 열차 내의 승무원에게 받은 것인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고양이와 헤어진 뒤 특급열차에 올라탄 나는 곧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이제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아도 되었기에 여행의 피로감이 한꺼번에 몰려왔던 것이다. 나름 치밀하게 세운 계획으로 온 여행이지만 항상 그렇듯 100점의 여행은 없는 법. 이 여행 또한 많은 아쉬움이 있었다.


구마모토에서 3일 밤을 잤지만 막상 구마모토를 다 돌아보지도 못했고, 가고시마도 그러했다. 히토요시도 아쉬움이 남아 있고 여행이 늦춰지는 바람에 SL히토요시호를 결국 타보지 못하고 말았다. 그렇지만 오랜 숙원이었던 히토요시여관과 히토요시 여행 그리고 히사츠선과 JR 최남단역 니시오오야마역을 다녀온 것만으로 내 철도 여행의 버킷 리스트는 상당히 지워졌다.


그래도 아쉬움은 남아 있었다. 하지만 여행길에서 마주친 풍경들, 바다 위의 무지개, 미스미서항등이 나에게 많은 위로를 주었다. 그 위로 때문에 다시 또 여행길에 나서게 되겠지만..


항상 열심히 쓴다고 하지만 중간중간의 역사 이야기들이 어떤 이들에게는 흥미롭지만 어떤 이들에게 지루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여행기는 단순히 어떤 열차를 타고 어떤 노선을 여행했다는 것에 머물기보다는 그 노선의 역사와 지난 이야기들을 되도록 많이 담아두려 하기에 앞으로의 여행기도 이런 의도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다음 철도 여행기는 어떤 노선을 할까 고민중입니다. 규슈 횡단 여행기를 썼으니 다시 홋카이도로 옮겨가서, 홋카이도철도 노선 여행기를 써볼까 합니다. 일단 하코다테본선이 우선 순위인데 하코다테 본선은 하코다테-아사히카와까지 이어지므로 홋카이도 주요 여행지인 하코다테, 오타루, 삿포로, 아사히카와를 포함합니다.

그래서 하코다테를 시작점으로 하고, 하코다테 주변 노선인 마츠마에선을 먼저 이야기한 뒤, 하코다테 시 전차 여행기에 이어 삿포로, 오타루, 아사히카와까지 이어질 예정입니다. 단순한 철도 노선뿐만 아니라, 주요 도시의 역사 및 여행 스팟에 대한 이야기까지 해야 하므로 매주 한편씩 쓰다보면 내년까지 이어질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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