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번째 미츠케
도쿠가와 히데타다 시대의 에도성의 확장 공사는 에도를 둘러싼 성곽 공사와 함께 혼마루를 개조하기 시작했다. 혼마루의 규모가 좁았기 때문에 우선 기타데마루(북쪽 외성)와 사이에 있던 해자를 메꾸고 혼마루를 북쪽으로 넓혀갔다.
그리고 환립식 천수가 솟아 있었던 덴슈마루를 없애고, 확장된 북쪽으로 천수대를 옮겨 여기에 독립식 외관 5층, 내부 지하 1층과 지상 5층의 대천수를 다시 세웠다. 외관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건축한 천수와 별 차이가 없었지만 첫 번째 천수대의 규모에 비해 천수대가 1/3로 줄어들었다. 이 천수는 1622년에 완성되었으니 에도성의 천수로서는 2번째였다. 에도성의 천수에 대해서는 에도성의 공사와 발전, 천수이야기에서 언급한 바 있다.
다시 그 내용을 복기해 보면..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사망 후, 2대 쇼군 히데타다는 1622년 혼마루 어전 나카오쿠 서쪽에 위치한 게이초 천수를 파각했다. 히데타다는 위대한 아버지에게 충실한 후계자였지만 존재감이 미약했고 그래서 천수만은 자신의 의도대로 세우려고 했다. 1623년에 오오쿠의 서쪽과 인접한 기타하네바시앞에 혼마루 확장을 명목으로 새로운 천수각으로 중창하였다. 위치는 현재의 천수대가 있는 곳이다. 이 천수를 겐나도 천수元和度天守라고 하는데 게이쵸도 천수에 비해 규모는 1/3로, 높이도 7칸으로 축소되었다.
다시 원래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그 이듬해 1623년 7월에 히데타다는 쇼군자리를 장남 이에미츠에게 넘기고 니시노마루로 옮겨갔다. 이에미츠는 막 신축한 혼마루로 들어가면서 혼마루의 별채로 사용하기 위해 니노마루에 다실이 있는 건물과 정원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것은 1630년에 완공되었는데 고보리 엔슈의 설계에 의한 것으로 가쓰라리큐보다는 훌륭한 별장이 되었다.
1632년 1월에 히데타다는 병사했지만 에도성을 둘러싼 성곽공사는 계속 이어졌다. 그리하여 마침내 1635년부터 마지막으로 에도성의 서북부에 바깥 해자를 파기 시작했다. 아카사카 다메이케 연못으로 흘러가는 작은 하천과 반대편의 고지마치 대지 북쪽으로 흐르는 히라카와 지류를 연결해 앞서 공사한 간다가와 강으로 연장하는 공사였다.
다메이케- 아카사카- 요쓰야- 이치가야- 우시고메에 이르는 이 공사로 에도성을 중심으로 한 달팽이 모양의 해자가 오른쪽 소용돌이 모양이 되어 스미다가와 강에서 에도 항구로 연결되었다.
이것이 달팽이 모양으로 뻗어나간 에도성 해자의 모습이다. 달팽이 모양으로 회전하면서 뻗어나간 해자의 마디 마디 부분이 미츠케見付라고 불리는 성의 외곽문이다. 흔히 36 미츠케라고 불렀다. 미츠케라는 것은 파수꾼이 상주하는 성문의 감시 시설을 말하는 것으로 보통 문 안에 초소가 있고 밤낮으로 감시했다. 에도성의 미츠케는 보통 36개소라고 말하지만 실제의 감시 초소는 더 많았을 것으로 추정되며, 이 주요 미츠케는 해자의 다리와 일체화된 시설이었다
에도성의 바깥 해자와 안쪽 해자, 오늘날의 지도에 겹처본 것이다. 사선으로 표시된 부분이 예전에는 해자였으나, 지금은 매립된 부분들이다. 현재까지 사진이 남아 있는 에도성의 미츠케는 다음과 같다. (한 번에 36개의 미츠케를 다 소개할 수 없기에 부분으로 나눠 설명할 예정이다)
1. 아사쿠사미츠케 浅草見附
JR소부선의 아사쿠사바시역 주변은, 인형의 거리라든지 섬유·의류품의 도매상거리로 알려져 있다. 이 역에서 남쪽으로 조금 걸으면, 간다가와 강을 가로지르는 아사쿠사 다리가 있다. 이 다리를 건넌 곳에 아사쿠사바시 문이 있었다. 현재는 전혀 그 모습은 없고, 다리의 앞에 아사쿠사 미츠케터를 알리는 비석이 서 있을 뿐이다.
아사쿠사바시문은 오슈 가도나 닛코 가도에 연결되는 문으로 에도의 북방방위의 중요 거점이었다. 또한 이곳을 이용하는 것은 무사나 서민이며, 쇼군이 우에노 간에이지로 향할 때에는 옆에 위치한 스지카이바시 문을 이용했다. 1657년 메이레키 대화재 당시, 덴마초 감옥에서 풀려난 죄수들이 화재를 피해 이 문으로 도망치려 했으나, 미츠케의 경비병이 탈주하는 것으로 착각해서 문을 잠가 버리는 바람에 이곳에서만 일반 서민들을 포함하여 2만 명에 가까운 사망자를 냈다.
사진으로 남아 있는 아사쿠사바시문, 그 옆에 망루가 보인다. (앞으로 계속 서술하겠지만 저 문 옆에 있는 망루가 경비병들이 상주하는 곳이며, 유사시에 방어 시설이 된다)
2. 스지카이 미츠케 筋違橋門
스지카이바시 문 사진 역시 오른쪽에 망루가 보인다. 사진을 보면 저 문을 들어서면 바로 에도성내로 들어갈 것 같지만 일본성에 대해서 여러 번 설명했던 대로 저 성문으로 들어가면 오른쪽에 보이는 망루 아래의 문을 통과해야 했다. 그러니까, 오른쪽으로 꺾어 망루 밑의 문을 통과해야 성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스지카이바시 문으로 향하는 야나기하라 대로변에는 의류·섬유 관련 회사가 많다. 이 야나기하라라는 곳은 에도 시대부터 '구제라고 하면 야나기하라'라고 불릴 정도로 잘 알려져 있었다고 하며, 예부터 의류·섬유의 거리였다. 에도시대 아사쿠사바시문에서 스지카이바시 문까지는 약 1.1km 정도였는데 이 해자를 따라 버드나무를 심었고 그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다.
에도시대의 그림을 보면 왼쪽에 아사쿠사바시문이 있고 해자를 따라 이어지는 거리가 야나기하라 거리이고 해자 주변에 버드나무가 그려져 있다. 그리고 위에 郡代屋敷 군다이야시키라고 표기되어 있다. 이곳은 주로 칸토 막부 직할령의 공물 징수, 치수, 주민 분쟁을 처리하는 곳으로 바쿠로초에는 소송을 위해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숙박하는 숙소가 많았다. 추가 설명을 하자면 이 스지카이바시문이 있던 곳이 앞서 편에서 설명했던 만세이바시 부근이고 스지카이바시문을 나서면 나카센도로 가는 길이었다.
3. 고이시카와 미츠케 小石川見附
이 문과 미츠케는 간다 강과 니혼바시 강의 분기점 바로 서쪽에 있는, 소부선과 주오선의 가드 근처에 있었다고 하는데 현재는 그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고이시카와 문이 있었다고 추정되는 지점의 오늘날의 모습
안내판의 맨 위 붉은 원이 표기되어 있는 부분이 에도시대 고이시카와 문이 있었던 곳이다.
4. 우시고메 미츠케 牛込見附
JR주오·소부선의 이다바시역 서쪽 개찰구는 우시고메다리의 중간쯤에 있다. 개찰구를 나와 왼쪽을 보면, 큰 돌담이 도로를 사이에 두고 좌우로 둥글게 솟아 있다. 우시고메문의 마스가타 흔적이다. 이 우시고메 문은 아와 번이 건축한 것으로, 무려 40일이라고 하는 단기간에 공사를 끝냈다고 한다.(이미 설명했지만 에도성의 건축은 지역 다이묘들이 한 부분씩 맡았다.)
치요다구가 설치한 안내판을 보면 우시고메 미츠케는 가구라자카 방면에서 우시고메다리로 가는 길을 막아선 것이다. 우시고메문을 나서면 죠슈도로 연결되었다.
5. 이치가야 미츠케 市谷見附
이치가야 문은 현재의 이치가야역 바로 앞에 있었다.
구글지도를 캡처한 것이다. 푸른색으로 보이는 것이 지금까지 남아 있는 이도성 바깥 해자의 흔적이다. 그리고 왼쪽 아래 부분 이치가야역이 표시된 곳이 옛 이치가야문이 있었던 곳이고, 중간쯤에 신미츠케다리 新見附橋 가 있는데 이 다리는 에도시대에는 없었고 메이지 시대에 해자를 메꾸고 다리를 만든 것이다.
6. 요츠야미츠케 四谷見附
요츠야 문은 고슈가도가 시작되는 지점으로 고신지방과의 왕래와 근교 농촌에서 석탄과 채소 등의 생활 물자를 운반하는 간선도로가 이어졌다. 또한 고슈 가도 서쪽에서 오는 적을 막는 방어 거점이었다. 요츠야문과 요츠야 미츠케는 현재의 요츠야역 뒤편에 있었다.
*고신 지방
고신 지방( 甲信地方)은 혼슈 중부의 내륙 지역의 야마나시현과 나가노현의 총칭이다.
요츠야 역 부근을 캡처 한 것이다. 자세히 보면 예전에 있던 요츠야 역 주변의 해자는 대부분 매립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에도시대 요츠야문을 그린 그림이다.
에도시대의 지도에 표기된 요츠야문, 앞서 캡처 한 현재의 구글 지도와 비교해 보면 예전에는 요츠야 부근에 해자가 이어졌음을 알 수 있다.
7. 쿠이치가이미츠케 喰違見附
요츠야 문과 아카사카문 사이에 있던 쿠이치카이문에 있던 미츠케로 쿠이치가이문이 있던 자리를 표시한 지도이다. 쿠이치가이문을 넘어가면 아카사카 영빈관이 있다.
쿠이치가이문을 그린 에도시대 그림을 보면 이 문은 스미가타 형식이 아닌 나무 각재를 짜 맞춘 문과 굴절 형식으로만 이루어져 있다.
에도시대의 지도를 봐도 직선이 아닌 약간 굴절된 형태이다.
안내판을 보면 길이 상당히 꺾여 있음을 알 수 있다. 붉은색이 에도시대의 지형이다.
쿠이치가이미츠케가 있었던 자리의 현재의 모습, 자동차 통행을 위해 완만하게 바꿨다.
8. 아카사카 미츠케 赤坂見附
쿠이치가이문을 커브길을 빠져나가면, 호텔 뉴오타니와 기오이 홀 사이의 교차점이 나온다. 여기서 아카사카문을 향해서 급경사의 기오이언덕을 내려가면 멀리 벤케이바시 다리가 보인다.
구글 지도를 보면 왼쪽 붉은색 표기가 쿠이치가이문이 있던 자리이고 곡선 길을 따라 내려오면 벤케이 다리, 그리고 그 옆 해자가 끝나는 지점에 아카사카 미츠케가 있던 자리이다. 에도 시대 이 부근 일대에는, 기이 도쿠가와가紀伊徳川家, 오와리 도쿠가와가尾張徳川家, 히코네번 이이가彦根藩井伊家의 나가야시키 (中屋敷 에도시대 에도에 거주하는 다이묘의 본 저택이 아닌 보조 저택) 있었기에 기오이초 (紀尾井町 기이, 오와리, 이이 가의 앞 이름을 따서)라고 불렀다. 세 가문의 저택 중에서 가장 큰 면적을 차지한 것이 기이 도쿠가와 가문의 저택이었다.
에도시대의 지도를 보면 쿠이치가이문을 통과하면 기오이자카 언덕이고 왼쪽이 오와리가, 오른쪽이 이이가, 그 위쪽이 기이 가문의 저택이 있었다. 지금은 오와리 저택에는 기오이 홀, 소피아 대학등이 있고 오른쪽에는 뉴오타니 호텔등이 자리 잡고 있다. 현재 아카사카 문은 없어지고 그 돌담의 흔적은 남아 있다.
에도시대의 아카사카문과 미츠케 부근의 지도, 지금은 그 앞에 큰길이 있는데 아오야마 거리이다.
9. 토라노문虎ノ門
아카사카문이 있는 곳에서 끊긴 바깥 해자는 상당한 구간이 매립되었다. 아카사카에서 토라노문으로 이어지는 소토보리도오리는 타메이케溜池라는 큰 저수지를 매립하여 만들어졌으며, 현재는 아카사카와 토라노문 사이에 '타메이케'라는 교차로명이 남아 있다. 타메이케는 1606년경에 만들어진 인공 저수지로, 해자 겸 상수원의 기능을 했다.
에도시대 에도성과 해자를 표시한 그림을 보면 왼쪽 아래 타메이케溜池가 보인다. 중앙 하단부에 붉은 점선으로 표시된 부분이 오늘날의 히비야 공원이고, 그 오른쪽 위에 지금의 유라쿠초와 도쿄역, 그리고 건너편에 니혼바시와 긴자가 표시되어 있다.
에도시대 토라노문을 그린 그림을 보면 오른쪽에 댐처럼 물이 흐르는 것을 볼 수 있다. 일종의 댐을 만들어서 물을 가둔 것이다. 이곳이 매립되기 시작한 것은 1874-8년 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