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지이 이즈키의 집
1995년에 제작된 영화 러브레터, 같은 이름을 가진 여자와 남자의 아련한 사랑의 추억을 거슬러 올라가는 이 감성적인 영화는 이와이 슌지의 대표작품의 하나로, 일본을 제외한 한국과 대만에서 유독 인기가 높았던 영화이며 겨울 멜로의 대표작으로 지금도 기억되는 영화이다.
이 영화의 주 촬영지는 홋카이도의 오타루시 주변으로 영화 속에 등장하는 겨울의 모습을 찾아 많은 한국인들이 이곳을 찾아갔고 그 사람들 중에 나도 포함되었다. 영화의 촬영지는 오타루시내와 주변부 지역에 흩어져있는데 여자 주인공 후지이 이즈키집이 오타루시 가기 직전에 있는 제니바코에 있어서 겨울 여행 때 이곳을 찾아갔었다.
이곳이 바로 제니바코역이다. 이 역에서 도보로 약 20분 정도 가야 후지이 이즈키의 집이 나오는데.. 가다가 건널목이 하나 나온다. 그 건널목은 조성모의 뮤직비디오 가시나무의 서두 부분에서, 이영애가 자동차를 몰고 가다가 신호를 무시하고 철길로 뛰어들려고 하는 김석훈을 발견하고, 그를 잡아 끌어내는 장면에 나오는 곳이다. 이곳을 방문한 그날은 폭설이 내린 다음날이었는데... 도로가 온통 눈으로 가득해서 걸어서 이동하기가 정말 힘들었다.
이 집이 바로 그 영화 속에서 후지이 이즈키의 집이다. 오타루시 지정 역사적 건조물로 지정되어 있는 이 집은.. 유감스럽게도 이제는 볼 수 없다. 화재로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 집을 지금도 기억하는 것은 단순히 영화 러브레터에 나왔다는 것 말고 이 집을 찾아갈 때 우여곡절이 많았기 때문이다. 당시 내가 이 집을 찾아가게 되었을 때 가지고 간 것은 이 집의 번지수뿐이었다. 제니바코역 앞에 있는 관내도를 보고 갔지만 이게 번지수가 자세하게 기재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일본이란 나라가 길거리에 사람이 많이 다니는 나라도 아니고 마주치는 사람들은 대부분 눈이 어두운 노인네들뿐이라... 이분들은 내가 가지고 있는 번지를 보는 것도 힘겨운 상태였다.
결국 주택가를 헤매다가 자기 집 앞의 눈을 쓸고 있던 인상 좋은 노인분을 만나 손짓 발짓 해가면서 물었는데 번지수가 달라도 한참은 다른 상황이었다.(나중에 알았지만 그곳은 이 집이 있는 곳과는 반대편으로 한참 떨어진 곳이었다.) 그래도 이 분은 열심히 가르쳐 주려고 노력하시는데 잠시 기다려보라고 하더니 자기 집에 들어가 그 동네 지번도를 가지고 나와 내게 보여주었다.
그러다가 바로 아랫집 부부가 외출하려는 것을 보고 그들을 불러 내가 내민 번지를 보여주며 도움을 요청했다. 졸지에 네 사람이 번지를 가지고 고민하는 형국이 되어 버리고... 미안스럽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조금 이해가 안 되는 것은 그들은 러브레터라는 영화를 알지 못한다는 것.. 자신들의 동네에서 영화촬영을 했는데 도대체 그곳이 어디인지도 모르다니... 여자분이 내가 내민 전화번호에 직접 전화를 해보시겠다며 전화기를 꺼냈다.
일이 커진 셈이다. 친절한 것은 좋지만 이렇게까지 할 것은 없는데 그런데 전화를 안 받는다는 것이다. 갈수록 태산이었다. 너무 미안스러워 고맙다는 말을 하면서 몇 번이나 인사를 했다. 그리고 좀 더 다른 방향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언덕길을 내려오는데 차를 타고 가시던 그 여자분이 내 옆에 차를 세우더니 코반(파출소)이 그리 멀지 않으니 거기서 물어보라고 이야기해 주셨다.
또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코반을 찾아갔는데 배가 나온 경찰관 한 명이 정신없이 눈을 치우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주소를 보여주며 이곳을 찾아가려고 한다는 설명을 했는데... 일본 드라마 춤추는 대수사선에서 출연한 과장과 정말 비슷한 그 경찰관은 창고 같은 곳으로 뭔가를 가지고 나왔다. 그런데.. 오호라.. 이게 뭐야... 토지대장 비슷한 것을 들고 나왔다.
관내의 지도를 지번별로 분류해 놓은 것 같은데 이게 무슨 토지 대장과 같으니... 왕년에 내가 파출소(지금은 지구대)에 있었지만 이렇게 만들어 놓지 않았는데.. 한국의 경찰과 일본의 경찰은 이렇게 다른 건가?
옆에서 어이없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이 아저씨 확대경까지 들고 나와서 보고 있었다... 이럴 때 쓰는 표현이 대략 난감이라고 그에게 이야기해 주어야 할까. 보다 못해 나도 그 대장을 자세히 살펴보기 시작했는데 순간적으로 내가 찾는 번지가 나온 것을 보았다. 그런데 그는 그 페이지를 그냥 넘기는 게 아닌가?
뭐... 야?..... 당신 이곳 경찰 맞아?라는 말을 할 뻔했다. (물론 일본어는 아니고..)
계속 페이지를 넘기려는 그의 손을 잡고 찾았다고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제야 이 아저씨 환하게 웃으며 그곳을 가는 방법을 손짓 발짓으로 설명해 주었다. 어찌 되었건 그의 친절에 다시 한번 고개 숙여 인사하고... 다시 찾아 나섰는데 인도는 눈으로 뒤덮여 도저히 걸어갈 수 없고 도로로 걸어가야 했다.
파출소에서 본 지도를 머릿속으로 떠올리며 언덕길을 올라갔다. 주변의 집들의 지번을 보면서.. 여전히 내가 찾는 번지수는 안 나오고 그러다 교차로 지점에서 잠시 멈춰 섰다. 그리고 주변을 살펴보니 거의 근접한 지번이 나왔다. 마침 눈을 치우고 있는 할아버지에게 다가가서 이런 집을 찾는다고 또 한참을 설명했는데 이 양반 뭔가 알아차렸다는 듯이 바로 아래쪽의 집을 가리킨다. 그 집이라는 표시인 것 같았다. 얼마나 고맙고 반갑던지...
그 고마운 할아버지 자기를 따라오란다. 다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그분이 직접 그 집주인에게 말해줘서.. 사진을 찍게 해 주겠다는 것 같았다. 하지만 벨을 눌러도 아무도 나오지 않았고 그제야.. 앞서 동네 아주머니가 전화를 했을 때 전화를 받지 않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 집에는 나이 든 노부부만 살고 있었는데 외출을 하신 것이었다.
그 동네 할아버지가 벨을 누르실 때 내 가슴은 정말 쿵쿵 뛰었다. 마치 영화 속에서 문을 열고 여주인공이 나오던 것처럼... 결국은 그 집 내부를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영화 속의 장면을 떠올리며 찾아간.. 그날은 내 겨울 여행의 한 페이지에 소중하게 남아 있다.
지금이라면 구글 지도를 통해 찾아갈 수 있겠지만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 그 시절에는 그렇게 찾아가기 쉽지 않은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