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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 담담하게 Dec 13. 2024

고미나토, 이스미선 여행기

2.봄날, 고미나토선을 여행하다. 

 보소반도에 유채꽃이 가득 핀 4월, 그 아름다운 봄에 나는 도쿄를 떠나 치바현 보소반도를 가로지르는 기차 여행을 시작했다. 도쿄역에서 출발해서 고미나토 철도가 시작되는 고이역五井駅까지 서둘러 갔다.

고이역
고미나토선 승강장

 

고이역에서 출발하는 열차가 플랫폼에 도착하자 나는 열차에 올랐다. 열차 하단부에 보면 기하 203이라는 열차의 차종 번호가 보인다. 마침 주말이었기에 제법 많은 사람들이 열차에 탑승했다. 대부분이 현지 주민이라기보다는 고미나토선과 이스미선을 여행하는 사람들이었다. 

고미나토 철도의  출발역인 고이역에서 출발한 열차는 봄 풍경 속을 달려가기 시작했다. 속도가 빠른 특급열차도, 쾌속 열차도 아닌 보통 열차는, 덜컹거리며 달리다가 멈춰 섰다. 고미나토선의 첫 번째 역,  카즈사무라카미역上総村上駅이다.

카즈사무라카미역

대개의 일본 시골역이 그렇듯이 이 역은 1927년에 개업했다. 2024년 현재 기준으로 거의 100년에 가까운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역 건물은 2017년에 국가의 유형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고미나토 철도의 역사 대부분이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카즈사무라카미역 다음 역은 아마아리키역海士有木駅이다. 1925년에 개업했고, 역 건물 역시 국가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사진에서 보듯 고미나토 철도의 역들은 대부분이 무인역이다. 상주하는 직원이 없이 그저 드문드문 사람들이 역에 와서 열차를 타고 내린다. 이 역들도 처음 개업했을 때는 역무원이 있었을 텐데.


1950년대 후반, 이 역과 혼치바역을 잇는 노선이 계획되었으나 여러 이유로 인해 이 역까지는 건설되지 못하였다. 아마아리키역 다음은 카즈사미츠마타역上総三又駅이다. 

카즈사미츠마타역

단출한 목조역사 하나만 있는 역으로 2001년에 화재로 인해 전소되었다가 다시 복구했다.  1932년 개업.

카즈사야마다역上総山田駅, 1925년 개업한 역으로 역 건물은 역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우마타테역 馬立駅 1925년 개업했다. 이 역의 건물 또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이렇게 오래된 역사들을 지나쳐 덜컹 거리며 달리는 보통 열차 바깥으로 보이는 익숙한 논밭 풍경, 드문 드문 보이는 주택가들, 그렇게 나른한 봄 풍경 속을 달리던 열차는 몇 개의 역을 더 지나고 카즈사츠루마이역에 도착했다. 

카즈사츠루마이역上総鶴舞駅, 이 역이 개업한 것은 1925년 3월 7일, 당시 역 이름은 츠루마이역이었다. 현재의 역 이름으로 바뀐 것은 1958년이다. 일본의 근대화 시기에 건축되어 그 시대의 모습을 간직한 이 역은 관동지구 역 100선에도 선정되었으며, 아라시의 뮤직비디오나, 니노미야 카즈나리의 CM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관동지구 역 100선에 선정된 이유는 다이쇼 시대 초기의 기와지붕의 역사와 벚꽃의 명소이기 때문이다. 

아라시와 카즈사츠루마이역

완만하게 꺾어지는 지점에 있는 이 역은 아련한 향수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에 수많은 CF, 뮤직비디오, 드라마의 촬영 장소가 되었다. 

2017년에 국가등록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이 역의 구내에는 과거 츠루마이 발전소가 있었다.

츠루마이 발전소

이 역에서 다시 출발한 열차가 도착한 역이 카즈사쿠보역上総久保駅이다.


1933년에 개업한 이 역이 무인역으로 바뀐 것은 1956년이다. 60년이 넘도록, 직원도 없이 오직 가끔씩 정차하는 열차에서 타고 내리는 사람들만이 찾아오는 역.. 그것도 하루 평균 14명뿐이다. 무심한 바람만이 찾아오는 것 같은 이 쓸쓸한 무인역, 그렇지만 가을이 되면 이 작은 역에 카메라를 들고 수많은 사람들이 열차에서 내린다. 바로 사진 속에 보이는 은행나무 때문이다.

높이 20M에 이르는 거대한 단풍나무가 노란색으로 바뀌는 풍경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로 인해 잠시 소란스러워진다. 왠지 이 사진을 보면 가을날에 다시 고미나토선 열차를 타야 할 것 같다. 


이 카즈사쿠보역 다음 역이 타카타키역高滝駅이다. 

1925년에 개업한 타카타키역은 2017년에 국가등록 유형문화재에 지정되었다. 주변에 있는 타카타키호수와 벚꽃의 풍경으로 유명한 역이다. 이 역도 평상시에는 하루 평균 24명 정도가 이용하는 조용한 역인데 8월에 인근지역에서 열리는 불꽃놀이 때문에 일시적으로 사람들이 몰려든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한결같이 봄이었다. 다시 한번 나가사키현 시마바라 반도에서 보통 열차를 탔던 기억이 떠올랐다. 4월의 시마바라 반도를 여행하고 돌아올 때 오-미사키역에 잠깐 정차를 했을 때 나는 거의 울뻔했다.


따뜻한 봄, 일요일이었던 그날에 벚꽃이 만발한 시마바라성을 보고 돌아오던 길이었는데 그때 열차 안에 타고 있던 승객은 여학생 한 명과 나 단 두 사람뿐이었다. 왜 그렇게 처량하게 느껴지던지 4월의 따뜻한 햇살아래, 한국에서도 기분 좋은 휴일을 보낼 수 있을 터인데, 어쩌다가 낯선 나라의 시골풍경을 보면서 낯선 곳을 향해 가고 있을까? 하는 생각에 갑자기 서글픈 생각들이 물밀듯이 밀려온 것이다.


그때 잠시 떠올렸던 일본 노래의 한 부분이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주제가인 언제나 몇 번이라도의 さよならのときの 靜かな胸 , 일본어 발음으로 사요나라 노토키노시즈카나무네, 우리말로 번역하면 헤어질 때의 고요한 마음, 헤어질 때의 고요한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그즈음에 누군가와 헤어졌고, 그 쓰라림이 아직 남아 있었기에, 내 마음에 평화로움이 찾아오기를 애타게 바랬던 것일까?


타카타키역의 다음역인 사토미역里見駅이다. 1925년에 개업한 이 역은 다른 역과는 약간 다른데, 2002년에 무인역이 되었다가 2013년에 다시 직원이 배치되어 유인역으로 바뀌었다. 그 이유는 역 부근에, 4개의 초등학교가 통합되어, 카모중학교안에 병설 초등학교가 설치되었고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함께 다닐 수 있는 카모학원이 생겨, 이 학원으로 통학하는 학생들 때문이다.


2017년에 국가 등록 유형 문화재로 지정된 이 사토미역은 코미나토선에 유일하게 2개의 홈이 있어 이 역에서 상하행 열차가 정차할 수 있다.

2개의 홈이 있고, 그 홈에서 각각 상하행 열차가 정차해 있는 모습이다.

이 역에서는 매월 첫째와 세 번째 토일요일에 야채와 토산품을 판매하고 있다. 가던 날이 장날인지라 아침 일찍 도쿄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시장기를 느꼈고 이것저것 살펴보다 신문지로 감싼 군고구마를 구입해서 먹었다. 일본을 여행하면서 여러 음식을 먹었지만 일본에서 군고구마를 먹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이 역은 2010년 인텔의 CM에 등장하기도 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1JJDjQ0IkQw

앞부분에 남자 주인공이 내린 역이 바로 사토미역이다. 사토미역의 다음 역은 유채꽃과 벚꽃 풍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이타부역飯給駅이다. 고미나토선의 많은 역들 중 그 풍경이 가장 마음에 드는 역이다.

 

벚꽃이 바람에 흩날리는 간이역... 더없이 쓸쓸하게 느껴지지만 그 쓸쓸함이 아름답다. 이 역은 1926년에 개업한 오랜 역사의 역이지만 지금은 하루 4명만이 이용하는 아주 작은 간이역이다. 이렇게 쓸쓸한 역이지만 이타부역에는 매우 재미있는 곳이 있다. 바로 세상에서 가장 큰 화장실이다. 건축가 후지모토 소스케(藤本壮介)가 디자인한 것으로, 200평방 m이라는 넓이에 커튼 달린 투명한 화장실을 설치했다.

세상에서 가장 큰 화장실답게 문을 열고 들어가면 저 멀리 투명 화장실이 보인다. 신기하기도 하고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워낙 유명한 역이라 벚꽃 시즌이 되면 역전에 있는 조명을 켜, 밤 벚꽃 풍경을 즐길 수 있게 만들었다.


이타부역을 떠난 열차는 여전히 느릿느릿 달려가고, 차창밖의 풍경은 여전히 봄이 한가득이었다.


도쿄나 인근의 도시에서 온 사람들도 일정한 주기로 흔들리며 달려가는 열차에 꾸벅꾸벅 조는 사람도 있고, 옆자리의 사람과 조곤조곤 이야기를 나누거나, 창밖으로 카메라를 내밀어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렇게 한가롭게 달려가던 고미나토선의 열차가 도착한 역은 카즈사오쿠보역上総大久保駅이다.


1928년에 개업한 이 역이 무인역으로 바뀐 것은 1956년이다. 그때부터 이 역은 쓸쓸한 간이역으로 남아 있게 되었다. 이 역에는 인근의 초등학교 학생이 그린 이웃집 토토로의 그림이 있다. 다음에 들려야 하는 역은 요로케이코쿠역養老渓谷駅이다.

이 역 또한 1928년에 개업한 오래된 역이다. 역 앞에 족탕이 있어, 쌀쌀한 봄과 가을에 이용하기에 좋다. 물론 이 족탕을 이용하려면, 열차 승차권이 있어야 한다. 또한 이 역에는 고양이 몇 마리가 터를 잡고 살고 있다. 저 고양이들은 이 작은 간이역에 어떻게 살고 있는 걸까?


일본을 여행하면서 작은 무인역에는 많은 고양이들과 마주치곤 하는데, 그나마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역사가 집이어서 다행이라고 할 수 있을까? 여기서 질문, 역에 족탕이 저렇게 있다면 주변에 온천이 있을까?


답은 있다이다. 이 역 주변에 보소반도의 비경이라고 하는 요로계곡이 있고 온천이 있다. 요로계곡은 가을 단풍의 명소로 가을 단풍철이 되면 수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여행지이다.

이제 고미나토 철도 여행의 마지막, 카즈사나카노역이다. 이 역은 고미나토선의 종점이자, 이스미선의 시작역이다. 고미나토 철도 여행은 노선 주변에 펼쳐진 고즈넉한 전원 풍경, 시계가 멈춘 듯한 오래된 역 건물들, 그리고 유채꽃과 벚꽃의 풍경을 보는 여행이다. 


일본 여행을 시작한 지,  20여 년이 지나면서 그동안 수많은 일본 철도를 이용했었다. 신칸센, 특급열차, 보통 열차, 토롯코 열차등, 그중에서도 가장 편안한 철도 여행이 바로 고미나토, 이스미선여행이었다. 복잡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서 흔들리는 보통열차를 타고 가다 보면 여행의 피로나 마음의 시름들을 조금은 덜어낼 수 있는.. 


사실 고미나토선 여행은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가야 한다. 일단 열차의 운행 시간이 한 시간에 한대 꼴로 안되어서, 모든 역을 다 돌아보고 오기란 시간상 쉽지 않다. 그래서 일본의 철도 덕후들은 때론 자동차로 이동하면서 역을 방문하기도 한다.


지금도 덜컹거리는 보통 열차를 타고 가며 보았던 풍경들이 눈앞을 스쳐 지나간다. 산과 밭, 그리고 숲을 지나 달리다가 목조 역사에 도착하고, 그 역 안에는 벚꽃들이 흩날리는....

열차에서 내린 나는 역 구내를 잠시 돌아본 뒤, 이스미선의 열차를 타기 위해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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