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 번째 이야기
3년 만에 전해진 사유리의 편지, 그 여름날 이후 도쿄로 도망치다시피 온 히로키에게는 충격이었다.
이때 사유리는 여전히 꿈속에서 텅 빈 시가지를 달려간다. 그리고 하늘 위로 날아가는 벨라실러를 뒤쫓고 있었다. 이 꿈은 뒤에 나오겠지만 본격적인 수면 상태로 들어가기 전에 반복해서 꾸었던 것이었다.
벨라실러 뒤쫓다가 한 순간 다시 그녀의 주변 풍경이 그녀가 입원해 있는 병실로 바뀐다. 그리고 그녀는 처음으로 병실에서 깊은 잠에 빠져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조심스럽게 다가가서 살펴봐도 그것은 자기 자신이었다.
이어서 그녀가 여름날에 보냈던 편지의 내용이 흘러나온다.
"히로키 그리고 타쿠야. 너희에게 아무 말 없이 사라진 거 미안해. 같이 여름 방학 보내고 싶었는데 아쉬워."
"깨어나보니 여긴 도쿄의 어느 병원이었고 그 이후로 계속 입원해 있어"
"병원 사람들은 지금까지의 관계를 일체 끊어야 한다고 했지만 간절히 부탁해서 지금 이걸 쓰고 있어"
"너희가 읽기를 바라며 오카베 아저씨에게 보낼게"
그녀의 편지 내용이 이어진 뒤 병실 문이 열리고 앞편에서 언급되었던 그녀를 이송하기 위해 사람들이 들어온다. 츠네오 또한 인솔의 책임자로 함께 들어오는데...
마치 유령처럼 잠들어 있는 자신이 옮겨지는 것을 지켜본 사유리의 모습과 함께 편지가 이어진다.
"그렇지만 뭘 써야 할지 잘 모르겠어. 매번 똑같은 꿈을 꿔"
"아무도 없는 텅 빈 우주에 나만 혼자 있는 꿈. 그 꿈속에선 내 전부가..."
"손가락이랑, 뺨, 손톱, 발꿈치, 머리카락 끝 등 모든 것이 외로움으로 깊은 아픔을 느껴"
"우리 셋이서 보낸 그 온기 넘치는 세상. 그 시절이 마치 꿈처럼 느껴져."
어쩌면 이리도 감성적인 표현을 쓸수 있을까? 온기 넘치는 세상이라니...
사유리의 편지가 이어지는 가운데 몇 가지 장면이 스쳐 지나가는데 텅빈 교실이 나온다.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에 여러 번 등장하는 아무도 없는 텅 빈 교실, 이것은 몇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텅 빈 교실은 아무도 없는 공간이며 시간이 멈춘 장소이다. 그리고 전해지지 않은 감정이 남아 있는 곳이다. 다시 말해 이 교실에는 사유리, 히로키, 타쿠야가 더 이상 존재하지 핞고, 시간이 그대로 멈춰있는 장소이며, 서로에게 전하지 못한 감정과 추억 그리고 약속이 남아 있다. 하지만 사유리가 깊이 잠들어 있고, 히로키와 타쿠야가 각자의 삶으로 흩어진 뒤, 저 교실은 더 이상의 약속의 장소가 아니게 된다
"그렇지만 그때의 추억만 잊지 않으면 어쩌면 난 앞으로 아주 조금이라도 현실과 이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이송됐나요?
사유리가 입원해 있는 병원으로 찾아갔지만 이미 그녀는 이송된 후였다.
-네 일주일 전에요. 자세한 건 이송된 병원 쪽에 알아보세요
-네에 저기 사와타리가 있던 병실이...
이미 이송되어 버린 사유리의 흔적이라도 느껴보기 위해 사유리의 병실을 찾아간 히로키, 그 병실 안에는 다른 세계에 있는 사유리가 있었다. 서로 같은 공간에 있지만 히로키는 사유리를 보지 못한다. 다시 사유리의 편지 내용이 흘러나온다.
"히로키 타쿠야. 그 하얗고 예쁜 비행기는 바다 건너 그 탑까지 무사히 날아갔니?"
히로키 - 이게 뭘까? 꿈이랑 똑같은 공기야. 사와타리. 거기 있니?
뭔가 알 수 없는 존재를 느낀 히로키가 손을 뻗는다.
그리고 사유리의 손과 마주 잡은 순간 두 사람의 전혀 다른 세계에서 만나게 된다.
그곳은 바로 그들이 3년 전 함께 했던 여름날의 그 폐역이었다.
히로키-계속
사유리-계속
히로키 - 찾아다녔어
사유리 - 찾아다녔어
히로키 -사와타리. 나, 이번에야말로 약속을 지키고 싶어. 사와타리를 벨라실러에 태우고 탑까지 날아가겠어
그렇게 하면 우린 다시 만날 수 있을 것 같아
히로키 -사와타리 널 다신 혼자 두지 않아. 더 이상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겠어. 앞으로 내가 널 지킬게. 약속해
사유리 - 응 꼭이야..
히로키 - 우리 함께 탑까지 날아가자
꿈인지 환상인지 알 수 없는 세계에서 다시 만난 히로키와 사유리, 다시는 혼자 있게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전해 받은 사유리, 놀랍게도 그 순간 현실의 사유리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린다. 이를 지켜보던 츠네오는 놀라게 된다.
그리고 그 직후 그를 찾는 다급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그녀가 꿈속에서 히로키를 만난 직후 탑의 가동레벨이 갑자기 상승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상 범위가 급속히 확대되었고 그와 동시에 사유리의 의식활동 레벨도 높아지기 시작했다. 그녀가 서서히 의식을 회복하는 것 같은 상황이었다. 그러다가 의식활동레벨이 낮아지면서 탑의 가동레벨도 다시 낮아진다.
토미사와 츠네오-역시 대상자의 잠이 탑의 활동을 억제하던 열쇠였어. 탑이 얻는 평행우주의 정보는 주위공간을 침식하는 대신 지금은 대상자의 꿈속을 흐르고 있어. 사와타리 사유리는 영원히 꿈에서 깨어나면 안 돼"
자, 뭔 말인가 싶겠지만 이를 해석하면 사유리와 탑은 한 몸이나 다름없는 것이고 사유리가 잠들어 있는 상태에서는 탑은 이상 변환을 하지 않지만 사유리가 깨어나면 주변을 침식하면 세계를 파괴하게 되므로 결국 사유리는 영원히 깨어나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 탑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 지에 대해서는 4편에서 이미 설명한 바 있다.
https://brunch.co.kr/@aff5e40f41924ef/115
자 여기서 탑이 왜 에조에 있는가 라는 의문이 있다. 이 작품에서 에조는 단순히 “적국”이 아니라,
갈 수 없는 곳, 쉽게 왕래할 수 없는 세계, 현실적으로 단절된 공간이다. 즉, 탑이 에조에 있다는 건 약속이 이미 현실 세계에서는 도달 불가능해졌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에조의 탑은 물리적, 정치적, 감정적으로 넘을 수 없는 경계 너머에 위치에 있다.
자, 사유리가 영원히 깨어나서는 안된다는 츠네오의 독백 뒤로, 히로키의 내레이션이 흘러나온다.
"꿈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내 피부에 와닿은 사유리의 온기는 아직도 날 따스하게 감싸고 있다. 지금은 이미 지나간 먼 옛날. 우린 지키지 못할 약속을 했다"
지나간 먼 옛날, 그러니까 3년 전에 했던 그 약속은 지키지 못할 약속이 되어버렸지만 이제 히로키는 그 약속을 지키려 하고 있다.
https://brunch.co.kr/@aff5e40f41924ef/158
이 뒤로 이어지는 일곱 번째 이야기에서 언급한 바 있는 전철에서 타쿠야와 사유리가 나눈 대화가 자세하게 나온다.
사유리 - 있지 타쿠야
사유리 - 좀 이상한 이야기인데 웃지 마
타쿠야 - 뭔데? 안 웃을게
사유리 - 그럼 말할 게 있잖아. 요즘 자주 꾸는 꿈 말인데
타쿠야 - 높은 탑? 유니온의 탑 같은?
사유리 - 아니.. 좀 삐뚤고 이상한 모양이야. 내가 있던 탑 말고도 주변에 그런 탑이 한가득 서 있었어
왠지 모르지만 그 하나하나가 각기 다른 세상이고 이 우주가 꾸고 있는 꿈이란 걸 난 알 수 있었어
사유리 - 난 거기서 나오지 못하고 계속 혼자서 무척 외로웠어. 그래서 말이야. 이젠 분명 이대로 마음도 사라지겠지 하고 있었는데 하늘에 하얀 비행기가 보였어
타쿠야 - 하얀 비행기?
사유리 -응
타쿠야 - 그래서?
사유리 -그러곤 항상 잠에서 깨
자, 이미 3년 전에 사유리는 계속 꿈을 꾸어왔고 깊은 잠에 빠진 뒤로 결국 그 꿈의 내용대로 아무도 없는 꿈의 세상을 떠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하늘을 날아가는 하얀 비행기, 즉 벨라실러를 보았다. 이것은 그녀를 구하는 것은 결국 하얀 비행기 벨라실러를 만든 히로키와 타쿠야 두 사람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다시 아오모리현 츠가루군 민간 병원...
총상을 입었던 타쿠야가 의식을 되찾았다. 바로 앞 장면이 타쿠야와 사유리가 기차 안에서 나누는 장면이 나오기 때문에 소설판에서는 타쿠야가 꿈을 꾼 것으로 나온다. 어찌 되었건 타쿠야도 사유리와의 대화를 다시 떠올리게 된다. 잊고 있었던 아니 잊고 싶었던, 3년 전의 기억들이 다시 되살아난 것이다.
문이 열리고 마키가 들어온다. 정신을 차린 타쿠야를 보고 마키가 말한다.
마키 - 다행이야. 시라카와 깨어났구나
타쿠야 - 마키
마키 -걱정했다고
타쿠야 - 저어 어떻게
마키 - 어깨 아직 아파?
타쿠야 - 아뇨
마키 -잠시 실례, 열도 내린 것 같네
이 내용을 듣고 있는 오카베.. 그는 조심스럽게 일어나서 돌아간다. 이 장면을 보면 오카베는 히로키와 타쿠야에 있어서는 거의 아버지 같은 존재이다. 툭툭 던지는 말투로 무심한 척 하지만 히로키와 타쿠야가 처음 비행기를 제작해서 탑으로 날아가겠다고 했을 때도 어려운 일이라고 하면서도 부품을 구해주는 등 도움을 주었고 사유리의 실종으로 인해 타쿠야와 히로키가 방황할 때도 타쿠야를 탑을 연구하는 친구 츠네오에게 소개하고, 도쿄로 도망치다시피 한 히로키에게도 계속 편지를 보냈다. 그리고 마침내, 사유리의 편지를 히로키에게 전달해서 히로키가 3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오게 만든다.
하지만 그는 한편으로 에조와의 통일을 위해 테러조직의 수장으로서 냉철하게 정세를 판단하고 활동하면서 탑에 대해서 동경도, 약속도 아닌 냉정한 현실의 시선, 혹은 히로키와 타쿠야와 대비되는 어른의 시각으로 바라본다. 즉 오카베는 현실적 논리와 국가의 시선을 대표한다.
퇴원 후 타쿠야는 아미칼리지 내 특수 병동에 있는 사유리를 보기 위해 가지만 그의 카드로는 문이 열리지 않는다.
츠네오 - 자네 아디로 못 들어가네. 다친덴 다 나았나?
타쿠야- 아.. 네 걱정 끼쳐 드려서 죄송합니다.
츠네오 - 마키 양에게 들었다지? 만나보겠나?
츠네오의 도움으로 들어간 병실, 거기서 타쿠야는 3년 만에 사유리를 보게 된다.
츠네오- 계속 잠만 자는 이유는 탑에서 흘러 들어오는 평행 세계의 정보에 그녀의 뇌가 견디지 못해서 그런 게 아닌가 추측 중이네. 만약 그녀가 잠에서 깨어나면 탑을 중심으로 세계는 눈 깜짝할 사이에 평행 우주에 먹혀버릴 테지, 뭐 우리로선 그녀를 깨울 방법조차 알지 못하지만 말이네. 전쟁 개시를 기다려 수일 내로 본국에 있는 NSA 본부로 이송하기로 결정됐네. 이 분야에서 상당히 뒤처진 연합에 있어서 그녀는 귀중한 샘플이지
타쿠야- 왜 사와타리일까요?
츠네오 - 모르는 게 더 많지만 난 아마도 우연은 아니라고 보네 탑의 설계자인 엑스 츠키노에는 그녀의 조부라네
3년 만에 만나게 되는 타쿠야와 사유리, 여기서 츠네오는 통해 사유리는 깨어나서는 안된다고 강조하는데... 사유리가 깨어나면 이 지구는 멸망하게 된다는 것이다. 착잡한 시선으로 사유리를 지켜본 타쿠야... 그리고 히로키는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다음 편에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