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이야기
"사랑이 끝난 것이 아니라 서로의 시간이 어긋난 것이다.
초속 5센티미터에 대해 지극히 개인적인 한 줄 정의이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초기 3부작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초속 5센티미터는 2007년 개봉 이후 작품에 대한 찬사도 많았지만 한편으로 비평도 많이 받은 다소 씁쓸한 느낌의 작품이기도 하다. 많은 이들이 가장 아쉬워하는 것이 결말에 대한 것인데, 이 결말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진행하면서 꼼꼼하게 다시 한번 살펴보도록 할 것이다.
초속 5센티미터의 주제와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영화판 이외에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직접 쓴 소설판과 키노 아키라 쓴 또 다른 소설판, 그리고 코믹스판을 반드시 함께 봐야 한다. 이것은 소설판과 코믹스판이 영화 본편을 좀 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보완재적인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 이것이 국내 상영 시의 메인 포스터이다. "어느 정도의 속도로 살아가야 너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라는 카피가 인상적이다. 이 작품에 대한 제작은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 국내 개봉 시부터 예고되어 있었다. 당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국내 매체들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을 먼저 확인해 보자
질문 - 차기작은 어떤 작품인가?
대답 - 예산이 큰 영화는 흥미가 없다.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 만큼의 수입을 얻었기 때문에 지금 스타일로 계속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현재는 20분이 넘지 않는 단편들을 모아서 옴니버스 스타일로 작품을 만들고 있다. 일반적인 10대에서 30대 일본 사람들의 일상을 그린 내용이다.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질문- 다음 작품은?
대답- 20분 안팎의 단편을 여러 개 붙인 옴니버스 식의 영화를 생각하고 있다. 별의 목소리 같은 SF는 아니고 10대부터 30대까지 일본인들의 일상을 그린 작품이 될 것이다. 이렇게 그의 과거 인터뷰내용을 잠깐 살펴보았는데, 내친김에 이 작품을 제작한 이유, 혹은 구성에 대한 그의 이야기도 그의 인터뷰 내용에서 찾아보자.
질문 - 초속 5센티미터가 꽃이 떨어지는 속도에서 착안했다는 것이 참신하다. 이야기 구성을 3부로 나눈 옴니버스 형식을 택한 이유가 있나?
대답- 3부로 나뉜 이번 작품은 각각 속도를 테마로 옴니버스 형식을 가져봤다. 벚꽃이 떨어지는 초속 5센티미터의 속도를 각각 편지를 전하는 속도와 여주인공을 만나러 가는 전철의 속도등과 비교했다. 옴니버스로 구성한 것은 일단 단편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10편의 단편을 만들어서 어떻게 이야기를 엮을까 생각하다가 극장용 애니메이션을 위해 3편을 엮었다.
질문 - 단편을 만들려는 이유는?
대답- 짧은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학교에 가기 전이나 출근하면서 잠깐 볼 수 있는 생활에 스며들 수 있는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맥스 뮤비와의 인터뷰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질문- 초속 5센티미터를 세 편의 이야기로 구성한 이유와 세 번째 이야기인 초속 5센티미터를 제목으로 정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대답- 단편으로 만들어보고 싶다 고 생각한 것이 가장 큰 이유입니다. 처음에는 영화로 만들 생각이 없었는데 결국 세 개의 작품으로 극장에서 개봉하게 되어서 기쁩니다. 하지만 단지 극장에서 보는 것만이 아니라 휴대용 플레이어에 넣어서 전차를 기다릴 때나 학교를 마친 뒤, 잠자리에 들기 전 같이 생활하면서 생기는 짧은 시간 동안 볼 수 있게 만들고 싶었습니다. 또한 극장 개봉 때문에 세 편의 단편이 모두 연결되게 했지만 각각 따로 봐도 혹은 함께 봐도 되는 이야기를 만들기로 생각했습니다.
초속 5센티미터를 제목으로 정한 이유는 역시 세 번째 이야기가 세 편 모두를 아우르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언뜻 보기에 멈춰 있는 감정일지라도 계절이 바뀌고 벚꽃이 피었다가 지는 것처럼 느린 속도이지만 흘러가고 있음을 말하고 싶었기 때문에 초속 5센티미터라는 제목을 붙였습니다.
본격적인 이야기를 진행하기 전 그가 어떤 이유로 이 작품들을 구상하고 만들었는지에 대해서 살짝 알아보고 가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어 과거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한국 언론매체와 한 인터뷰를 찾아보았다.
이제 이 작품의 기초적인 내용들을 알아보자.
일본어제목은 秒速5 センチメートル, 한국어 제목은 초속 5 센티미터, 이 작품의 부제는 a chain of short stories about their distance(그들의 거리에 대한 짧은 이야기)이다. 영어권의 제목은 5 Centimeters Per Second'이다. 일본에서는 2007년 3월 3일에 개봉되었다. 그해 아시아 태평양 영화상에서 "Best Animated Feature Film"을 수상했다. 한국에서는 2007년 6월 21일에 개봉되었다. 전체 작품시간은 63분이며 일본에서 흥행수입은 1억 엔이었다.
이 작품은 기존 작품들과는 달리 2007년 2월 16일부터 3일간 야후 프리미엄 회원들에게 회원전용 서비스로 제1화(벚꽃초)가 무료 상영서비스를 했다. (당시 한국에서도 일본 야후에 제1화가 공개된 뒤, 이 작품을 퍼 날라와서 보느라 난리였다.)
*소설판
카도카와문고판
이 작품의 소설판은 다빈치에 연재되었는데 각각의 이야기를 전편과 후편으로 나주어 전 6화 구성으로 2007년 11월 16일에 단행본으로 발매되었다. 신카이 마코토가 직접 쓴 소설이 미디어팩토리의 '다빈치'에서 연재되어 출판되었으며, 한국어판도 대원씨아이에서 출판되었다. 이후 KADOKAWA 문고에서 문고판으로 다시 출판했으며, 한국에서도 2017년 1월에 신카이 마코토 열풍 덕에 대원씨아이에서 카도가 와 문고의 문고판을 새로이 번역해 재출간했다.
소설판은 다소 연결성이 떨어지는 본편 애니의 내용을 보강하는 역할을 한다. 앞서 그가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서로 간에 연관성이 없는 10여 개의 짤막한 단편 기획들 가운데서 추려 재구성한 것이 극장판이기 때문에 작품을 본 사람 대부분이 느끼듯, 뭔가 연결성이 떨어진다. 한편으로는 너무 많은 이야기를 생략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신카이 마코토가 쓴 소설판은 본편 애니에서 생략되었거나 연결성이 부족한 부분을 보충했다고 할 수 있다.
*코믹스판
코믹스판은 2010년 5월에 발매된 월간 애프터 눈에 2010년 7월호에서 시작해서 2011년 5월호까지 세이케 유키코( 清家雪子) 작화로 연재되었다. 이후 전 2권으로 나누어 발매되었다. 1권과 2권의 겉표지의 모습이다.
이 코믹스판은 2011년 초에 전 2권으로 완결되었고 한국어판은 대원씨아이에서 2012년 2월에 2권이 한꺼번에 발매되었다. 아래 장면은 본편 애니에서 가장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마지막 부분이다. 성인이 된 토노 타카키와 아카리가 어린 시절 함께 했던 건널목에서 스쳐 지나가는 장면이다.
코믹스판은 전체적으로 영화판과 비슷하게 진행하며 생략이 많았던 영화판의 내용을 보충했고, 신카이 마코토 감독도 코믹스판에 대해서 호의적이었다. 다만 영화판과 다른 차이점도 존재한다.
*또 다른 소설판 초속 5센티미터 one more side
2011년 5월에 일본에서 발매되었다. 코믹스 완결 이후 발매된 것으로 초속 5센티미터 관련 미디어믹스 중에는 가장 나중에 나온 작품이다. 한국에서는 2011년 12월 15일 대원에서 발매되었다.
줄거리는 신카이의 소설과 같으나, 여주인공 아카리의 시점과 남주인공 타카키의 시점이 번갈아가며 진행된다. 그래서 제목이 one more side이다. 이 작품은 영화판과 신카이 마코토의 소설에서 드러나지 않은 아카리와 타카키의 삶, 그리고 그들의 마음이 어땠는지를 알 수 있다.
1부는 영화와 신카이의 소설판 모두 타카키의 시점에서 진행되지만, 카노의 소설에서는 아카리의 시점에서의 내용이다. 아카리가 전학 온 후에 타카키에게 관심을 가지고, 가까워지게 되는 과정부터 이사가게 된 후, 이와후네역에서 타카키를 기다리면서 느끼는 감정까지 드러난다.
2부 영화판에서 스미다의 시점에서만 서술되던 이야기가 타카키의 입장에서 서술되며 스미다를 보며 느끼는 타카키의 감정 등을 알 수 있다. 더불어, 아카리와 타카키의 편지가 왜 더 이상 오가지 않는지 가장 자세히 드러난다. 영화에서 아카리가 편지를 쓰다가 포기하는 장면의 수학참고서를 보면 고2까지는 그럭저럭 편지를 주고받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가 편지가 오가지 않게 된 이유는 초반 서로의 감정이나 설렘이 오가던 편지가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단순한 정보전달로 밖에 쓰이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타카키는 이 시기에 대해서 서로 간의 관계가 끝나가고 있다는 것을 양 측이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말하지 않은 채, 편지로 의미 없는 단어의 나열만 늘어놓고 있었다고 묘사한다. 서로 간의 공감대가 상실되면서 이야깃거리가 없어지고 편지 자체에도 의미가 없어지게 되면서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자연스럽게 두 사람 모두 안 보내게 된 것이다.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장거리 연애의 한계가 그대로 반영된 셈이다.
3부는 소설과 영화에서 보듯 아카리와 타카키의 시점이 교차된다. 아카리의 시점에서는 아카리는 잘 살아가고 있는데 타카키는 왜 그렇게 힘들게 살고 있는지에 대해서 언급된다.
물론 결말은 똑같다. 그런데 묘하게 영화나 신카이 마코토의 소설과 주제에서 조금 차이가 난다. 영화나 신카이 마코토 소설의 주제는 첫사랑과 그리움이라면 아라타의 소설은 자신을 그 자체로 '이해'해주는 사람의 부재에서 오는 상실감이라는 쪽이 더 맞는 듯하다. 작중 타카키와 아카리는 모두 서로의 존재를 잊어버리지만 서로가 남겼던 존재감과 자신을 온전히 이해해 주는 그 느낌만 어렴풋이 가지고 있는다.
마지막에 아카리를 떠나보낸 후 타카키는 후련해진 마음으로, 알던 사람 누구한테든 전화를 걸어서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다. 그때까지 닫고 있던 타인에 대한 마음의 문을 열고 제대로 된 인간관계를 가꾸어 나가 갈 수 있다는 삶의 활력을 갖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날 산책 나올 때 휴대폰을 집에 두고 나왔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자 타카키는 주변에서 공중전화를 찾고자 하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그래도 비교적 영화나 신카이의 소설 이상으로 타카키가 삶의 활력을 되찾는, 나름대로의 해피엔딩인 셈이다.
*제목 초속 5 센 미터는 어떻게 정해졌는가?
이 애니의 제목 초속 5센티미터는 벚꽃의 꽃잎이 떨어지는 속도라고 작품 속에서 아카리가 말하는데, 사실 이 제목은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제작을 하고 난 뒤, 자신의 사이트에서 교류하고 있던 사람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였다. 여러모로 제목 선정에 고심을 하던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상대방의 승낙을 받아 이것을 제목으로 정했다.
그렇다면 실제 벚꽃 잎이 떨어지는 속도는 초속 5센티미터 일까? 정답은 아니다이다. 실제로는 그보다 빠른 초속 10cm 혹은 50cm 정도로 될 것으로 본다고 한다.
*이 영화로 인해 화제가 된 벚꽃 잎이 떨어지는 속도에 대해 일본의 한 공대에서 조사해 본 바, 실제로는 훨씬 빠른 초속 1.4m(약 5km/h)라고 한다. 초속 5cm가 되기 위해서는 벚꽃 잎이 초속 1.75m의 상승기류를 타야 하며 확실한 것은 벚꽃의 낙하 속도는 초속 5cm가 아니라고 한다.
자, 이렇게 초속 5센티미터에 대한 기본적인 내용을 알아봤다. 다음 편부터 본격적으로 애니의 줄거리를 따라서 나만의 해설을 이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