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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 노 타임 투 다이

영원한 안녕, 007

by 늘 담담하게

2021년도 작품 007 노 타임 투 다이, 007, 아니 다니엘 크레이그를 떠나보내게 되다니 뭔가 좀 애잔하다.


작품의 완성도는 호불호가 엇갈리는 것이라, 아쉬움은 있지만 딱히 어떻다고 말하지는 않겠다. 이번 작품은 다니엘 크레이그의 마지막 007 영화이기에 지난 시대의 007 영화에 대한 헌사 혹은 오마쥬가 가득했다.


노타임투 다이.jpg

거대한 기지와 그곳에 침투하기 위해 거대한 최신식 비행체를 타고 잠수하는 씬, 자메이카에서 흑인 요원과 접선하는 씬 등등 로저 무어 시리즈의 오마쥬들도 곳곳에 배치되어 있으며, 007 리빙 데이라이트의 팬이라면 펠릭스가 사망한 후 화가 치밀어 오른 본드가 차고에서 30년 전의 티모시 달튼의 본드카였던 V8 밴티지의 천을 걷어내고 타고 나가는 순간 007의 메인테마의 달튼시절 기타 리프가 터져 나오는 씬에서 상당한 전율을 느낄 수 있다. 60년 가까이 시리즈를 같이 지탱해 오며 아이콘이 된 애스턴 마틴 DB5와 시그니처 건배럴, 그리고 제임스 본드 본인에게도 여러모로 헌사하는 씬들이 많다.


또한 007과 여왕폐하 대작전에서 실질적 주제가로 사용된 루이 암스트롱의 We Have All The Time in The World가 마지막 장면의 삽입곡으로 등장한다. 조지 라젠비의 007 시리즈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또한 오마주라 할 수 있다.


1. 여왕폐하 대작전과 조지 라젠비, 존 베리의 음악


1962년에 처음 시작된 007 시리즈의 주인공은 숀 코네리였다. 67년 두 번 산다까지 출연하고 나서 다음 편 출연을 거부해서 제작진은 결국 다른 주인공을 되는데 그가 바로 조지 라젠비였다.


1969년작 여왕폐하의 대작전의 영문 제목은 On her Majesty's secert service , 그런데 소유격+Majesty는 영국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her Majesty는 여왕폐하를 가리키고 여왕폐하라는 말은 곧 영국이니까 결론적으로 영국의 첩보원으로 서라는 뜻이다. 이 6편은 당시 역대 007 시리즈물 중에서 가장 완성도가 높다는 평을 받았다. 박찬욱감독도 아주 좋아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이 수많은 007 영화 중에서 지금도 회자되고 있는 것은 007 영화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제임스 본드가 결혼을 하기 때문이다. 물론 노 타임 투 다이에서는 딸까지 낳았지만..


영화에서 제임스 본드는 트레이시라는 여자와 결혼을 하는데 결혼식을 마치고 허니문을 떠났을 때 뒤쫓아온 악당의 총에 맞아 트레이시가 죽고 만다. 이때 제임스 본드가 그녀를 안으며 말한다.


It's quite all right, really. She's having a rest. We'II be going on soon. There's no hurry, you see? We have all the time in the world."


해석을 하자면 이런 뜻이다. "정말 괜찮아요. 그녀는 휴식을 취하고 있어요. 곧 다시 시작할 거예요 서두를 거 없어, 알겠어? 우리에겐 시간이 많이 있어."


https://www.youtube.com/watch?v=hgndOK2zuY0

여왕폐하 대작전의 엔딩 부분이다. 이 노래의 가사는 Hal David가 썼고 007 영화음악의 선구자인 John Barry가 작곡했다.



존베리.jpg 존 베리

1967년 존 베리 1933년에 태어나 2011년에 사망한 작곡가로 1962년 007 살인면허를 시작으로 1987년 리빙 데이라이트까지 007 시리즈의 음악을 맡았다. 그 유명한 아웃 오브 아프리카로 1985년 아카데미상을 수상했고 늑대와 춤을으로 1990년 아카데미상, 골든 글로브상을 수상했다.

노래 제목은 영화 마지막 엔딩 부분에서 트레이시가 죽은 뒤 제임스 본드가 말한 대사에서 가져왔다. 루이 암스트롱은 이 노래를 녹음한 뒤 2년 뒤에 죽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RMxRDTfzgpU

루이 암스토롱의 노래

이 곡은 그 뒤 여러 가수들이 다시 리메이크해서 불렀고, 존 베리도 생전에 연주곡으로 녹음하기도 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P8HoqRp0vdQ

연주음악

루이 암스트롱이 부른 원곡도 좋지만 연주 음악도 서정적이고 편안해서 오케스트라 곡으로 연주되기도 한다.


2. 베스퍼의 테마


그리고 영화 음악을 한스 짐머가 맡았음에도 베스퍼 린드의 묘지에 찾아갔을 때 서정적인 연주곡이 흘러나오는데 이 곡은 007 카지노 로열에서 스스로 죽음을 택함으로써 007에게 영원히 지워지지 않은 상처를 남긴 베스퍼의 테마이다. 이 테마곡은 노 타임 투 다이의 영화 음악을 맡은 한스 짐머가 작곡한 곡이 아니라 카지노 로열의 음악을 담당했던 데이비드 아널드의 곡이다. 데이비드 아널드는 존 베리가 살아 있을 때 그와 교류가 있었고 그의 추천으로 007 영화 음악을 맡았다. 데이비드 아널드는 드라마 시리즈 셜록의 음악도 맡았는데 이 셜록의 테마곡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아이린 애들러의 테마가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B50hcK015Ok

아이린 애들러의 테마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데 다시 베스퍼의 테마로 돌아가서 카지노 로열이 2006년도 작품이었으니 벌써 16년 전인데, 그 곡을 다시 듣게 되다니... 아, 이리도 감동적일 수가.... 짐머 형, 정말 애틋했어~


https://www.youtube.com/watch?v=-dROq0hHg-M


베스퍼의 테마가 흐르던 그 장면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f7y7V0UX9d0


50초쯤부터 베스퍼의 테마가 흘러나온다. 본드가 당신이 그리워라고 말하고 나를 용서해 줘라고 쓰인 작은 쪽지를 불에 태운다. 아, 다른 여자를 사랑하게 되어서 용서해 달라고 한 걸까?.. 내 참... 뭐 이번 편에서 본드가 죽고, 그의 딸, 마틸드가 남아 있으니... 본드는 죽어서 베스퍼의 곁으로 간 걸까?


3. 영화 마지막 M의 인용문

그리고 노타임 투 다이의 엔딩부에 M과 동료들이 술을 따른 뒤, 제임스 본드를 추모하는 모임을 갖는 장면이 나온다. 여기서 M이 문장 한 구절을 읊는다.


"The proper function of man is to live, not to exist. I shall not waste my days in trying to prolong them. I shall use my time."


이것도 번역하자면 "인간의 존재 목적은 생존이 아닌 삶이다. 난 더 오래 살려고 애쓰기보다는 주어진 시간을 뜻깊게 쓰리라"


이 문장은 미국의 작가이자 저널리스트, 사회운동가인 잭 런던이 쓴 글이다. 전체 인용문은 1916년 12월 2일 샌프란시스코의 The Bulletin에 출판된 저널리스트 어니스트 J. 홉킨스(Ernest J. Hopkins)에게 런던이 말한 것이다. 런던은 사망하기 불과 두 달 전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홉킨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는 1916년 11월 22일에 세상을 떠나는데 그때 나이 겨우 40세였다.


전체 문장은 이렇다.

"I would rather be ashes than dust!

I would rather that my spark should burn out in a brilliant blaze than it should be stifled by dry-rot.


I would rather be a superb meteor, every atom of me in magnificent glow, than a sleepy and permanent planet.


The function of man is to live, not to exist.


I shall not waste my days in trying to prolong them.


I shall use my time."

4. 아이린 애들러

그리고 앞에서 언급한 아이린 애들러의 테마곡... 이 테마의 주인공인 아이린 애들러는 셜록 시즌 2에 나오는 치명적인 매력이 있는, 셜록 시리즈의 팬들에게는 아주 뚜렷하게 각인된 그런 여성이다.



아이린.jpg


이 여자는 무슨 말로 정의할 수 있을까?

매우 영리하고 교활하며, 섹시하고, 매력적이고, 관능적이며, 차가운 느낌. 단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는... 아니 방심할 수 없다고 해야 할까... 그러면서도 가슴속에는 뜨거운 열정이 있고, 사랑이 있는...

그래서 그녀의 주제곡 또한 애상적이기도 하고, 관능적이며, 차갑다. 이 곡을 작곡한 데이빗 아널드도, 아이린 애들러의 모든 것을 그대로 이 음악 속에 표현한 것이 아닐까 싶다. 마지막으로 극 중에서 아이린 애들러가 셜록에 묻는다.

"만약에 세상이 멸망한다고 한데도 나와 저녁을 먹겠어요?"

만일 나라면... 이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기꺼이... 당신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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