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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R소야본선 여행기(6) -타로와 지로 이야기

남극이야기, 타로와 지로

by 늘 담담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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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카나이 공원에는 또 다른 이야기가 전해져 오는 기념비가 있다. 이것은 가라후토견 훈련 기념비라는 것인데 처음 이곳을 방문했을 때 어떻게 개에 관한 기념비가 세워졌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이제 그 의문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자.


지금으로부터 14년 전인 2011년 12월 18일 일본 TBS에서 개국 60주년을 기념하여 남극대륙이라는 드라마가 방영되었다. 이 드라마의 최종편의 시청률 22%, 평균 시청률 18%로 끝이 났는데 일본의 국민 배우라고 할 수 있는 기무라 타쿠야와 비중은 적었지만 유명 여배우 아야세 하루카가 열연을 했고 조연급도 만만치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 기대치에 못 미친 시청률을 기록했다.


기타무라 다이이치의 2007년도 신개정판 남극월동대 타로, 지로의 진실을 초안으로 해서 제작된 남극대륙은 1983년에 개봉된 영화 남극이야기와 같은 역사를 소재로 했기 때문에 다소 혼동할 수 있으나, 리메이크가 아닌 순수 오리지널 작품이다.


드라마의 줄거리는 2차 대전 이후, 일본이 남극대륙에 진출하게 된 과정과, 그 탐험과정에서 활약했던 썰매견들의 이야기이다. 이 드라마에 등장한 썰매개들 중의 2마리의 이름이 바로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인 타로와 지로이다. 타로와 지로는 가라후토견으로 그들의 고향이 바로 왓카나이이다.


드라마를 먼저 살펴보자..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최초의 남극탐사선의 이름은 소야(宗谷). 이 소야라는 이름은 두말할 것도 없이 왓카나이의 소야미사키와 사할린 사이의 소야 해협에서 따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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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에 등장하는 관측선 소야의 모습이다. 이 배는 좀 기구한 운명을 가지고 있는데 이 배는 원래 소비에트 연방(이하 소련)의 발주를 받아 1936년에 건조를 시작했다. 당시 북만주 철도의 매수 계약에 의해, 그 대가로 일본은 총 3척의 배를 만들어 소련에 제공하기로 한 것이다. 그리하여 2년 뒤인 1938년 2월 16일에 진수되었다.


당시 부여받은 이름은 보로챠에벳츠였다. 그러나 이 배가 만들어진 시기는 제2차 세계대전 직전의 상황이었던지라 배는 소련에 양도되지 않고 상선으로 활용되었다.


이때, 이 배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곳이 바로 구 일본 제국 해군이었다. 소련의 주문에 의해 쇄빙 능력을 갖추었고 당시로서는 드물게 최신 영국제 소나를 장착하고 있었기에 일본 제국 해군은 이 배를 군함으로 사용할 계획을 세웠고 1938년 12월에 227만 5천 원을 지불하고 이 배를 구입했다. 그 결과 배의 이름도 그전 地領丸 (치료마루)에서 소야로 바뀌었다.


이 배는 1945년까지 태평양 전쟁 기간 동안 주로 운송함의 역할로 참전했는데 여러 차례 침몰의 위기를 넘겼고 전쟁이 끝나는 시기에는 홋카이도의 무로란항에 정박해 있었다. 전쟁이 끝난 후에 해상 보안청 소속의 순시선으로 활용되었다. 그 뒤 이 배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은 1956년 남극 탐사선의 역할을 부여받은 때부터이다.


이후 이 배는 통산 6차례에 걸쳐 남극 탐사선의 역할을 했고, 1962년 제2대 탐사선 후지에 임무를 넘기고 다시 홋카이도로 배치되어 1978년 10월 퇴역할 때까지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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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도쿄 오다이바에 정박해서 과학관으로 전시되어 있는 실제 소야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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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에 발행된 기념 우편에 소야의 실루엣이 보인다.

딤채_南極大陸_第_第10話(終)(704x396_XviD).avi_002904000.jpg 드라마에서 타로와 지로
126343590274516325067.jpg 실제 타로와 지로

이 개들의 간단한 약력은 타로(1955년 10월- 1970년 8월 11일), 지로(1955년 10월- 1960년 7월 9일)는 일본의 초기 남극 관측대에 동행한 가라후토견 형제로 남극에 남겨져 있다가 함께 생존해서 1년 후에 구출된 것으로 유명해짐이라고 나와 있다.


이 두 형제는 1955년 왓카나이시에서 후렌노쿠마라는 부견에 의해 태어났다. 원래 타로, 지로, 사브로 3형제였다. 1956년 남극 관측대에 썰매견 투입이 결정되고 그 견종으로 가라후토견이 선정되었다. 당시 홋카이도에는 가라후토견이 약 1,000마리 정도 있었으나 실제 썰매견으로 쓸만한 개는 약 40-50마리 정도에 불과했다.(드라마 남극대륙의 서두 부분에 기무라 타쿠야가 썰매개들을 찾아 홋카이도를 헤매는 과정이 나온다.)

당시 타로 3형제와 그들의 부견이었던 쿠마가 썰매견으로 선정되어 훈련을 받기 시작했는데 이때 사브로는 훈련 중에 병사한다.


1956년 11월 총 53명의 제1차 남극 관측대가 타로와 지로를 포함한 22마리의 가라후토견과 함께 도쿄만에서 남극 관측선 소야를 타고 출발한다. 대원중 11명이 제1차 월동대로 선발되는데 썰매견의 담당은 키쿠치 토오루(드라마에서 기무라 타쿠야가 열연한 구라모치 다케시)와 막내 기타무라 다이이치(드라마에서 야마모토 유스케가 열연한 이누츠카 나츠오, 기타무라 다이이치는 훗날 타로와 지로에 관한 책, 남극 월동대 타로 지로의 진실을 썼다.)였다.


Soyapl107a.jpg 1차 텀서 출발 직전의 소야호

일본 최초의 남극 기지인 쇼와 기지에 도착한 뒤 질병등으로 그대로 다시 귀국한 3마리를 제외한 19마리의 개들은 1957년 1차 월동대에서 개썰매를 끄는 역할을 했다. 그 과정에서 2마리가 죽고 1마리는 실종되었고 유일한 암컷이었던 시로코는 지로와의 사이에 8마리의 새끼를 낳았다. (이 과정은 드라마상에서 충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1958년 2월, 일본으로 되돌아갔던 소야가 제2차 월동대를 태우고 돌아왔다. 그런데 이때 기상이 악화되기 시작했고 소야는 쇼와 기지에 도착할 수 없었다. 심지어 쇼와 기지에서 귀환하려는 1차 대원들조차 귀환하기가 어려워졌고 악전고투 끝에 소형 설상기로 귀환을 해야 했다. 하지만 15마리의 개들은 목걸이로 연결되어 기지부근에 묶여 있는 상태였다.


그들은 처음 기상이 회복되면 개들도 무사히 귀환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지만 계속적인 기상악화는 소야 자체를 조난의 위험에 빠뜨렸고 마침내 제2차 월동대의 파견은 포기되고 말았다. 그와 함께 그들을 믿고 기다렸던 15마리의 개들은 그대로 기지에 남겨진 채 귀환해야 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했지만 이 일로 인하여 제1차 관측대는 일본 전체에서 격렬한 비난을 받게 되었다. 생사를 함께 했던 개들을, 생명을 보장할 수 없는 사지에 내버려 둔 채 철수한 것은 두고두고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겨졌다..


다행히도 남극에서 태어난 강아지와 그의 어미개 시로코는 그 무게만큼 연료를 빼고 무게를 줄여 출발한 설상기 승무원에 의해 구출되어 일본으로 귀환할 수 있었다.


이 남겨진 개들을 위해 그해 7월 오사카부 사카이시에 15마리의 개를 기리는 동상이 건립되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은 남극에 남겨진 개들은 죽음을 맞이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 뒤 1년이 흘렀다.


1959년 1월 14일 제3차 월동대가 남극의 쇼와기지에 접근했고, 헬기가 쇼와 기지 위를 비행하던 중에 2마리의 개가 생존하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그것은 기적이었다. 그 소식을 듣고 1차 월동대의 대원이었던 기타무라가 기지로 날아가 그들을 확인했는데 처음 개들은 기타무라를 경계했다. 하지만 그들의 이름을 불러주자 꼬리를 흔들며 반응했고 그들은 마침내 감동적인 재회를 하게 되었다.


1959020.jpg 당시 신문사진

하지만 기지에 남겨졌던 15마리의 개들 중 살아남은 것은 타로와 지로뿐이었고 나머지 7마리의 개는 목걸이가 연결된 채 죽어 있었으며 6마리는 행방불명된 상태였다. 타로와 지로의 기적적인 생존과 귀환은 당시 일본에 커다란 충격과 감동을 전했고 이 2마리의 개를 기리는 타로 지로의 가라후토개라는 노래가 만들어지고 일본 동물 애호 협회가 당시 개업한 지 얼마 안 된 도쿄 타워에 15마리의 사할린 개 기념 동상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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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 개들의 그다음 삶은 어땠을까? 타로와 지로는 바로 귀국하지 않았다. 지로는 계속 기지에 남아 있다가 1960년 7월 9일 제4차 월동대와 함께 하던 중에 쇼와기지에서 5세의 나이로 병사한다. 타로는 제4차 월동대와 함께 하다가 1961년 5월 4일 4년 반 만에 일본으로 귀국했고 그 뒤 1961년부터 1970년 8월 11일 죽을 때까지 삿포로의 홋카이도 대학 식물원에서 살았다. 편안한 여생을 보내고 14년 7개월의 삶을 마치고 죽은 것이다.


인간의 나이로 치며 이미 80-90세의 천수를 누린 셈이었다. 사망 후에 타로는 이곳에 박제로 전시되고 있었는데 지로는 도쿄 우에노의 국립 과학박물관에 박제된 상태로 있었다. 지로의 박제는 병사상태에서 박제화된 데다가 손상이 심해 쉽게 움직일 수 없었다. 1983년에 타로와 지로의 생존을 그린 남극 이야기라는 영화가 제작되어 일반에 공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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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타로와 지로의 박제를 함께 하게 해 주자는 운동이 일어나는데 이로 인해 1998년 9월 2일부터 17일간 왓카나이시 청소년 과학관에서 개최된 타로 지로의 귀향 특별전에서 타로와 지로는 사망 후 처음으로 같은 장소에서 함께 했고 그 후 2006년 7월 15일부터 9월 3일까지 우에노 국립 과학 박물관에서 개최된 신비한 대륙 남극 2006에서도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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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버려졌지만 남극의 혹한 속에서 일 년을 버텨낸 타로와 지로.. 한낱 개에 불과하지만 이들은 살아남았고 이들을 버리고 온 인간들에게 생명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을 안겨주었다.


살아 있어 줘서 고마웠던 타로와 지로에 대한 미안함과 반성에 의해 그들의 고향 왓카나이에 그들을 기념하는 기념비와 함께 공양탑이 세워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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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후토견 기념비의 근처에 있는 공양탑이다. 참고로 이들의 이야기를 영화화한 남극이야기를 모티브로 할리우드에서 영화화한 것이 바로 에이트 빌로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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