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시로 습원을 가로지르다
호소오카 전망대를 여행하고 난 뒤에 호소오카역細岡駅으로 이동하면 다시 센모본선의 여행이 시작된다.
호소오카역細岡駅이다. 1927년에 개업한 역으로, 역 이름의 유래는 구시로 강 좌측의 작은 언덕들細い岡이 이어져 있어서 그랬다는 설도 있고, 이 지역에 철도를 개설할 때의 현장 감독관 이름이 호소오카여서 그랬다는 설도 있다.
예전의 아이누족들은 이 지역을 タプコプ 다부코브라고 불렀다. 현재의 이 지역 일대의 지명도 닷코부達古武라고 부른다. 숲 속에 덩그렇게 혼자 서 있는 무인역인 호소오카역, 그 안에서 한가롭게 열차를 기다렸다.
지금의 역사는 1993년에 개축한 것으로 그 이전의 역사는 흑백 사진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 역도 이용 인원이 워낙 적다 보니, 2023년 3월부터 계절 임시역으로 바뀌었다. 점차 소멸해 가는 지방 철도의 운명을 이 역도 겪고 있는 것이다.
도로역, 로그 하우스풍으로 지어졌다.
호소오카 역 다음이 도로역塘路駅이다. 역시 1927년에 개업한 역이다. 역명은 역에서 가까운 도로호塘路湖에서 유래되었다. 습원을 가로질러 가는 보통 열차의 주변은 온통 녹색의 풍경뿐이다.
이 역은 도로호 주변에 위치하고 있어 운이 좋으면 도로호를 찾는 왜가리, 두루미, 흰꼬리수리등을 관찰할 수 있다. 관광책자에는 이곳에 가면 왜가리나, 두루미등을 금방 볼 수 있을 것처럼 설명하지만 실제로 보기는 그리 쉽지 않다. 구시로 강에서 카누 타기도 이 지역에서 출발한다. 바닷물이 빠져나가면서 생긴 도로호의 물은 구시로 강으로 흘러나간다.
역사 내에는 노롯코 & 8001이라는 작은 카페가 있다. 역명은 아이누어 토-오로 ト・オロ에서 유래되었는데 그 뜻은 늪이 있는 곳이다. 여기서의 늪은 도로호를 가리킨다.
이 도로호는 아이누 민족에게는, 귀중한 식량이었던 히시 열매 ヒシ(페칸페)의 산지였다.
*히시
한국어로는 마름이라고 부르는데 주로 연못에서 자라는 한해살이 풀이다.
진흙 속에 뿌리를 내리며 가느다란 줄기가 물속에서 길게 자라 물 위에 뜬다. 잎은 마름모꼴의 삼각형으로 빽빽하게 나와 있는데, 잎자루에는 공기가 들어 있는 주머니가 있어서 물 위에 뜰 수 있게 되어 있다. 열매는 핵과로 마름이라고 하는데, 물속에서 아래를 향해 달리며, 2~4개의 뿔이 있는 독특한 모양을 하고 있다. 주로 연못이나 늪 등에서 볼 수 있다. 마름모라는 도형도 여기에서 나왔다.
납작한 세모꼴 열매는 양쪽에 가시가 있고 매우 딱딱하다. 가을에 익은 열매는 물속에 가라앉아 이듬해 봄에 싹이 튼다. 열매의 속살은 먹을 수 있는데 밤처럼 맛이 고소하다.
현재의 호숫가에는 캠핑장과 도로호 에코뮤지엄센터 아루콧토あるこっと, 도로호수가 있는 시베차정의 역사를 전시하는 '시베차정 향토관' 등의 시설이 모여 있다. 겨울에는 호숫가에서 개썰매 경주가 열린다.
도로역에서 걸어서 15분쯤 가면 도로호가 나오고 그 호숫가에 도로호 에코뮤지엄 센터, 아루콧토가 있다.
그리고 지도의 위쪽, 그러니까 도로역의 북쪽에 사루보 전망대 サルボ展望台 와 사루룬 전망대 サルルン展望台가 있다.
도로역에서는 약 1km쯤 국도를 따라 올라가면 주차장이 있는데 사루보 전망대는 경사진 숲 길을 약 20분쯤 올라가야 한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그래도 힘이 들었다. 사루보 전망대는 구시로 습원 최대의 도로호수를 비롯해 주변 4개 늪을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 여름에는 풍부한 녹색과 호수가 만들어 내는 푸른색의 대비가 아름다운 곳으로도 유명하다. 전망대에는 무료 망원경도 준비되어 있다. 또 사루보전망대 근처에는 사루룬전망대와 콧타로 습원 전망대도 있어 다양한 풍경을 즐길 수 있다.
사루보 전망대에서 보이는 풍경을 그린 그림이다.
실제 사루보 전망대에서 보이는 풍경이다.
사루룬 전망대에서 보이는 여름날의 풍경이다.
사루룬 전망대는 이 사루보 전망대에서 걸어서 10분에서 15분쯤 가면 있다. 이 전망대에서는 도로호와 습원 주변의 풍경도 볼 수 있지만 센모본선의 열차들이 지나다니는 것을 볼 수 있어 열차 사진을 찍기에는 최적의 장소이다. 주로 여름 습원 노롯코열차나, 겨울 습원 SL 노롯코열차들이 그 대상이다.
보통 도로역과 그 주변에는 눈이 녹기 시작하는 4월부터 9월, 특히 여름 시즌에 많은 이들이 찾아오지만 막상 가보면 한적하기만 할 때가 많다. 센모본선의 여행은 그런 한적함에 잘 적응해야 한다. 정적인 것을 좋아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센모본선을 통한 습원 여행은 그리 추천할만한 것이 아니고, 모기 등으로 오히려 고통스럽기만 하다. 하지만 보이는 것이라곤 하늘과 숲, 그리고 호수가 전부인 이 습원의 여행은 마음의 여러 가지 생각들을 정리하게 해 주고, 위로해 준다. 이제 구시로 습원 내에 있는 마지막 역인 가야누마역과 시베차역을 지나 카와유 온천역으로 향한다.
자, 여기서 구시로 습원에 대해 설명해야 할 것 같다.
구시로 습원은 홋카이도 구시로 평야에 위치한 일본 최대의 습지로서 면적은 18,290ha이다.
구시로 습지가 형성되는 역사를 살펴보면 빙하기에 구시로 습원 일대는 육지였다. 하지만 빙하기가 끝나가면서 얼음이 녹아내리고, 그 시기에 구시로 습원 일대는 얕은 바다가 되었다. 당시 기온은 현재보다 평균 2-3도 정도 높았고, 현재 일본 도호쿠 지방과 비슷한 기후였다. 이후 4000년 전부터 현재의 해안선이 형성되면서 구시로습원의 입구에 모래톱이 발달했고, 물이 빠지지 않으면서 구시로 습원은 늪지대가 되었다.
이 늪지대에 갈대가 번성했고, 이런 것들이 이탄화하여 점차 습지가 형성되었다. 결국 약 3000년 전에 현재와 같은 습지가 되었다.
(이탄- 진흙 모양의 숯. 보기에는 습지의 표층에 흔한 축축한 진흙이지만, 가연성이 있고 채취하여 연료로 사용된다. 낮은 기온의 습지지역에서 식물이 충분히 분해되지 않고 퇴적되어 형성된다.)
현재 구시로 습지는 습지 보호조약인 람사협약에 가입되어 있으며, 1987년 일본에서 28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광대한 습원과 해적호(海跡湖), 주변 구릉지대를 포함하는 26,861 ha가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2011년 9월에 28,788 ha로 공원 면적이 확대되었다. 구시로 습원은 홋카이도에서 개발이 이루어지기 전의 홋카이도 다운 경관을 유지하고 곳이라고 할 수 있다.
구시로 습원은 편의상 2개의 지역으로 나눠 볼 수 있다. 하나는 동부 습원지역으로 여기는 센모본선이 구시로 강을 따라 이어지는 지역으로 구시로 습원의 닷코부, 도로호등의 호수들이 있고, 반대인 서부 습원 지역은 구시로 습원 전망대와 온네나이 목도등이 있는 곳이다.
그러면 구시로 습원은 어떤 동물들이 얼마나 살고 있을까?
구시로 습원에는 약 700종류의 식물과 약 1300종류의 동물들이 서식하고 있다. 대표적인 생물은 천연기념물인 두루미. 한때 멸종위기에 빠졌던 두루미지만 보호 활동 덕분에 지금은 수 천 마리가 서식하고 있다고. 평소에는 습지 안쪽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보기 어렵지만 먹이가 적어지는 겨울이면 습지 서쪽에 있는 급이장으로 모여든다. 따라서 겨울철에는 두루미를 볼 확률이 아주 높아진다. 이 밖에도 조류로는 대형 맹금류인 흰꼬리수리, 북방 여우, 양서류로는 빙하기를 견디고 살아남았다는 희귀종 북방 도룡뇽 등이 서식하고 있다.
지금도 홋카이도와 구시로 습원의 두루미가 알려지면서 한국 사진작가들이 두루미 사진을 찍기 위해 겨울 시즌 구시로를 찾아가곤 했다.
여기서 앞서 설명했던 호소카와 전망대를 제외한 드넓은 습원을 좀 더 쉽게 볼 수 있는 전망대들을 살펴보자.
첫 번째 습원의 서쪽 지역에 있고 버스로도 갈 수 있는 구시로 습원 전망대釧路市湿原展望台.
습원 서쪽에 있는 자료관과 레스토랑을 갖춘 시설로 3층 전망대와 옥상에서는 구시로 습원과 구시로 시가지를 파노라마 뷰로 내려다볼 수 있다. 이 전망대는 습지 전망대 산책로의 거점이라 산책 전이나 후에 들르는 것이 좋다.
두 번째는 호쿠토 전망대 혹은 새틀라이트 전망대 北斗展望地. 구시로 습원 전망대에서 조금 더 동북방향 앞에 위치한 전망대로 이른 봄 아침에 안개가 자욱한 구시로 습원의 풍경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세 번째는 콧타로 습원 전망대 コッタロ湿原展望台.
구시로 습원의 동북쪽에 위치한 전망대로 구시로 습원 전체에서 가장 자연이 잘 보존되어 있는 콧타로 습원을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