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챠 마을의 역사, 그리고 푸른 초원
구시로에서 아바시리로 가는 센모본선의 여행에서 구시로 습원 안에 있는 JR역으로는 마지막 역인 가야누마역茅沼駅(구시로 습원의 동북쪽 끝 부분)은 1927년에 개업한 역으로 역 입구 위를 보면 일본어로 두루미가 오는 역이라고 쓰여 있다.(사진 왼쪽 출구 위의 글)
1964년에 자연재해로 인해 두루미의 서식지가 위험해지자 이를 걱정하던 당시의 역장이 자기 부담으로 먹이를 주었고, 이후 역장이 교체되더라도 사무 인계사항으로 두루미의 먹이를 주는 업무를 계속 이어지게 했다. 무인역이 된 지금도 현지 주민과 역전 민박에서 먹이를 제공하고 있다. 역명은 주변에 카야 カヤ (한국어로는 비자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어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밖에 역 근처에 카야누마 온천, 시라루토로 호(シラルトロ湖) 등이 있다.
이 역 다음에는 2017년까지 고짓코쿠역五十石駅이 있었다. 그러나 2025년 현재 이 역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폐역이 되어버렸다.
2006년 처음 센모본선을 여행할 때만 해도 있었던 역이었는데 시대의 흐름은 어쩔수가 없다,.
다음 역은 시베챠역 標茶駅이다.
역시 1927년에 개업한 역이다. 대부분이 무인역인 센모본선의 역들 중에서 그나마 역무원이 근무하는 역이다. 역 이름은 아이누어 シペッ・チャ 시펫챠에서 유래되었다. 그 뜻은 큰 강의 유역이라는 것인데 여기서 큰 강은 구시로강을 말한다. 겨울 시즌 구시로에서 출발하는 노롯코 열차의 종착역이 바로 시베챠역이다. 역 주변에는 시베차 정사무소, 시베챠 우편국, 호쿠요은행 시베챠지점, 후지공원 등이 있다.
*시베챠는 어떤 곳일까?
이 시베챠의 지명에 대해 아이누어 연구자인 야마다 슈조는, 아이누 시대에는 시베챠가 현재의 구시로와 시베쓰·샤리를 잇는 교통의 요지이며, 시베쓰나 샤리에서 산을 넘어 처음으로 만나는 구시로강의 유역 때문에 이런 명칭이 붙여진 것은 아닐까 라고 해석하고 있다. 시베챠는 구시로 종합 진흥국의 거의 중앙에 위치한다. 거리는 구시로시 중심부에서 북동쪽으로 약 40km. 정의 면적은 1,099.56km 2이다. 일본 전국의 정촌 중에서는 6번째로 넓다. 시베챠 정의 남북으로 구시로 강이 흐르고 강을 따라서 센모본선, 국도 391호선 등의 교통망이 이어진다. 시베챠의 남부 지역은 구시로 습원이다. 구시로 습원의 총면적 18,290ha 중 시베챠 정이 차지하는 면적은 11,993ha로 전체의 약 65%에 해당해 구시로 습원을 포함하는 4개의 시정촌 중 가장 넓다.
시베챠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에도시대까지는 아이누인들이 주로 거주했었고 근대적인 첫 기록은 1885년이다. 1885년에 아바시리 형무소의 전신인 구시로 집치감集治監(메이지 시대 죄인들을 수용했던 감옥의 일종)이 개설되었다. 그리고 군사무소와 , 고쵸야쿠바(戸長役場 지금의 동사무소), 일본 은행의 출장소도 설치되어 한때는 구시로에 필적하는 규모의 마을이 되었다. 당시 이 구시로 집치감에 복역하는 죄수는 최대 2,000명 가까이에 이르러, 구시로-아바시리 간의 도로의 건설, 구시로 철도의 건설, 가와유의 아토사누프리(이오산)에서의 유황의 채굴등의 역을 맡았다. 이때의 죄수들은 주로 1877년 세이난 전쟁( 구마모토성 이야기 참조) 때 체포되었던 사무라이등, 사상범들이 많았다. 이들은 도로, 철도 건설, 유황 채굴등의 강제 동원되었고 그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이것이 결국 사회 문제화 되어, 강제 노동은 폐지되었다.
1887년에는 유황산의 유황 수송을 위해 시베챠-이오산 간에 홋카이도에서 두 번째 철도가 건설되었다. 유황은 시베챠에서 환적해, 구시로까지는 수운으로 운반되었지만, 결국 자원이 고갈되어, 채굴은 9년도 안 되어 폐지되었다.
1901년 구시로 집치감은 폐지되고 기능은 아바시리 분감으로 옮겨진다. 1903년 데시카가정과 마을의 분리도 겹쳐 인구가 격감하지만 1908년 군마 보충부(태평양 전쟁 이전, 군마를 사육하던 곳)가 집치감 터에 설치됨에 따라 다시 마을은 활기가 넘쳤다. 군마보충부는 1945년 폐지, 부지 일부와 건물은 전후 얼마 지나지 않아 개교한 시베챠 고등학교로, 나머지 부지는 농지 등으로 전용됐다. 시베챠 고등학교 부지가 넓은 것은 이러한 역사적 배경 때문이다. (부지 면적만 255ha, 고등학교 부지로는 일본 최대이며, 부지 내에 미니 습원까지 존재할 정도로 넓다)
태평양 전쟁 후에는 도야마현, 나가노현에서 만만 개척단이라는 이름으로 만주와 내몽고, 중국 화북 지방으로 이주했던 사람들이 귀국한 뒤, 이곳에 정착했다. 처음 동부 홋카이도를 여행할 때는 그냥 무심코 지나친 마을이지만, 그 후 여러 번의 여행을 거치면서 동부 홋카이도에서 나름의 역사를 간직한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시베챠역은 센모본선에서 분기된 옛 시베츠 선標津線(1925-1989)의 기점이기도 한 역이다.
지금은 사라진 시베챠선과 시베챠 지선의 노선도이다.
시베츠선은 센모본선의 시베챠 역에서 갈라진다. 네무로시베츠역에 이르는 본선과 나카시베츠역에서 분기되어 앗토코역에서 네무로 본선에 접속하는 지선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국철 재건법의 시행으로 1985년 8월에 제2차 특정 지방 교통선으로 지정되었다. 그 후 JR홋카이도에 승계되었으나 1989년 4월 30일에 전선 폐지되었다.
당시는 앗코토와 시베츠간에 마차로 끄는 궤도 열차가 부설되어 있었지만, 수송력의 한계와 말의 유지에 드는 경비가 문제가 되면서 수송력 증강이 요구되고 있었다. 교통이 불편함에서 개척지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것도 나타나고 심화되고 있었다. 연선 주민 사이에서도 해안을 달리는"해안선"과 내륙을 달리는"내륙선"의 두 파로 나뉜 격론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내륙선이 건설 루트로 선택됐다.
건설은 앗코토역 측에서 진행되며 1933년에 나카시베츠까지의 제1공구가 완공, 1934년 제2공구인 나카시베츠에 도달한 뒤 1936년 시베챠부터 시베챠선이 개업하고 1937년에 연장됐다. 동시에 나카시베츠부터 네무로시베츠까지 제4공구가 완성되어 전구간 개통되었고. 시베츠선과 시베차선을 연결하여 시베츠선을 시베챠선에 편입해 전체를 시베츠선이라고 했다. 이 노선은 구시로항을 포함하고 있어서 구시로까지의 운송 여객 수요가 있고, 시베츠부터 구시로에 가려면 시베차를 경유하는 것이 더 가까웠다.
네무로시베츠 이후 구간도 열심히 공사가 진행되어 있었다, 1957년에 샤리(현재의 시레토코샤리역)-코시카와역 사이가 콘포쿠선으로 개업했지만 이미 연선은 인구감소화가 진행되고 있었으며 노선 개업 13년 만인 1970년에 폐지됐다.
한때는 건설과 관광 붐에 의해서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종점인 시베츠와 기점인 네무로의 구심력 저하, 구시로시 소요 시간 등의 여러 문제로 이용객과 화물 취급량이 1965년경을 정점으로 감소를 시작했다. 도로 교통을 따라 잡을 수 없게 된 것이다.
1968년에는 적자 83선에 선정되면서 폐지 논란이 제기된다(당시의 영업 계수는 219). 한때는 폐지를 면했지만 1970년에는 영업 계수가 405로 악화되는 등 해마다 적자가 늘어나게 되었다. 몇몇 역을 직영 역에서 업무 위탁 역으로 돌아서게 하고 경비의 압축을 시도했으나 영업계수를 내리지는 못했다.
1980년 국철재건법의 통과로 인해 제2차 특정지방교통선으로 지정됐지만 겨울의 대체 수송에 문제가 있다며 다른 3선(텐포쿠선, 고향은하선, 나요로 본선)과 함께 한때 폐지 승인이 보류됐다. 그러나 결국 1985년에 문제가 없어졌다며 폐지가 승인된다. 국철 민영화 후에도 2년 정도 여객 영업을 계속했지만 1989년 4월 30일에 전선 폐지됐고 버스 노선으로 전환된다.
1986년 나카시베츠역에 정차해 있는 보통 열차
이렇게 홋카이도 곳곳에 옛 철도노선이 있었던 것은 1900년대 들어 철도가 본격적으로 발달하게 되면서, 당시 홋카이도에 정착한 정착민들의 요구, 그리고 목재와 철광 산업 등에서 철도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질 좋은 목재나 철광등은 대개 오지에 있고, 대규모 원자재를 끌고 나오기 위해서는 철도 이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본선이라는 철도 노선에서 지선들이 사방팔방으로 뻗어나갔다. 그런데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철도 노선들이 태평양전쟁 이후 1960년대까지는 나름 호황을 유지했으나, 점차 주력 산업이 바뀌고, 도로의 개통과 함께 자동차로의 수송이 늘어가면서 점차 수익성이 떨어지게 되었다. 결국 하나둘씩 노선이 폐선이 되었고 국철이 가지고 있던 지방 노선들을 1989년 민영화로 국철을 분할하면서 대부분 폐선, 정리해 버렸다.
시베챠는 넓은 초원이 많아 이곳에서 낙농업이 발달해 있는데 자동차로 시베챠를 여행하게 되면 들르는 곳이 다와다이라 多和平이다. 다와다이라는 해발 195.2m의 언덕으로 언덕 정상부의 전망대에 올라서면 주변의 드넓은 경치를 한 번에 볼 수 있다.
자, 이제 다시 다음 역인 이소분나이역磯分内駅으로 가보자.
1929년에 개업한 역으로 역명은 아이누어로 이소본 운 나이イソポ・ウン・ナイ 에서 유래되었다.
그 뜻은 토끼가 있는 강이라는 것인데, 시베챠와 테시카가 사이의 골짜기에 예전에 토끼가 많이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때 닛폰텐사이 제당 이소분나이 공장으로 이어지는 전용선과 유키지루시 유업 이소분나이 공장으로 이어지는 전용선이 각각 분기했다. 닛폰텐사이 제당 전용선은 역의 북서쪽으로 뻗어나가다가 남서쪽으로 꺾는 형태였으며, 1936~1969년까지 이용되다가 1970년에 공장과 함께 호쿠렌 농업협동조합연합회(ホクレン農業協同組合連合会)에 매각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폐선되었다. 유키지루시 유업 전용선은 역의 남동쪽으로 뻗어나갔으며, 개업 일자는 불분명하나 1982년 9월 10일까지 영업했다. 역 주변에는 이소분나이 소학교, 이소분나이 낙농센터, 세이코마트, 이소분나이 우편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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