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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든, 여름 나기

사계절의 어린이 中 여름의 어린이

by 미미 greenmeme

여름이라는 계절이 점점 길어지고 뜨거워진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나의 출근길도 힘겨워진다. 조금 걸었을 뿐인데 높은 습도 탓에 온몸이 끈적인다. 아스팔트 위를 벗어나 서늘한 공기가 감도는 동굴 같은 곳에 놀러 가고 싶은 마음이 든다. 한여름이 되면 아이들과 함께 있는 교실이라는 공간이 답답해진다. 어린이가 꽉 찬 교실 은 에어컨을 틀지 않을 수 없다. 자연 바람을 더 좋아하는 나는, 오전에는 창문을 열어 어떻게든 에어컨을 안 키고 버텨보려 한다. 습도가 높은 날에는 이마저도 쉽지 않다. 등원하는 아이들의 옷은 이미 땀으로 젖어있다. 정리하는 아이들의 행동이 늘어진다. 더운 날씨 탓에 움직이는 것조차 큰 에너지 소모가 된다.

“선생님, 너무 더워요.”

계속되는 아이들의 민원에 창문을 닫고 에어컨을 켠다. 십 분 뒤 교실 내 공기는 금방 시원해진다. 그럼에도 무언가 답답한 느낌이 든다.

“선생님, 유라가 내 장난감 가져갔어요!”
“아니에요, 네가 내 꺼 가져간 거잖아!”
“아니야! 네가 가져간 거야!”

감정이 격양되는 유라와 서율이에게 얼른 다가간다.

“얘들아, 흥분 좀 가라앉히자. 두 친구 이야기를 다 들어볼까? 유라 먼저 이야기해 줄래?”
“아니에요, 선생님 ㅡ유라가 거짓말하는 거예요!”
“그런데 서로 생각이 다를 수 있으니 친구 얘기를 우선 들어보는 건 어때?”
“싫어요!”
“나도 싫어요!”

난감하다. 유라와 서율이 둘 다 잔뜩 성이 나 있다.

“서로 친구 얘기 안 듣고 내 말만 하려고 하면 둘 다 재미있는 놀이를 할 수 없을 것 같은데.”
“아니에요, 유라가 거짓말하는 거예요.”
“아니야, 너가 거짓말하잖아!”
“아니야, 너야!”

어지간하면 이쯤에서 서로 이야기를 들어주는 아이들이 오늘은 양보하지 않는다. 감정을 가라앉힐 시간을 주려는데ㅡ 복도에서 지율이가 소리친다.

“선생님! 미소가 제 손 밟았는데 ‘미안해’ 안 하고 가요!”
“잠깐만 지율아ㅡ, 그럼 유라와 소율이 여기 앉아서 잠시 흥분 가라앉히고 있어. 누가 먼저 친구 이야기 들어주는 마음을 낼지, 선생님 기다릴 거야.”

나는 재빨리 복도 쪽으로 나가본다.

지율이는 얼굴이 빨개져 씩씩거리고 있다. 미소는 지율이의 얼굴을 보고 재밌다는 듯 히죽히죽 웃으며 돌아다닌다. 미소의 모습에 지율이는 더 약이 오르는 듯하다.

“미소, 이리로 와보세요ㅡ”

나의 부름에도 미소는 오지 않는다.

“선생님, 쟤가 나 보면서 웃어요! 난 아픈데! 사과도 안 하고!”
“미소야, 선생님이 미소한테 갈까?”

미소한테 가는 걸음마다 미소는 뒤로 도망간다. 얼굴 가득 개구쟁이 웃음을 지으면서.

그때 교실에서 유라와 서율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나 안 해!”
“나도 안 해!”
“너랑 이제 안 놀 거야!”
“나도 안 놀 거야!”

아아, 어지럽다. 에어컨의 찬바람으로 덥고 습한 본래의 공기를 덮어버린 이 느낌이 답답하다. 어쩌면 감각에 더 예민한 아이들이 이 계절을 타는지도 모르겠다. 시원한 실내에 있어도 그것은 가짜 공기니까. 아이들도 가짜 공기를 느껴서, 그래서 오늘 유독 흥분을 잘하는 지도 모르겠다.


나는 결심한다. 정오가 가까워지기 전에 아이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야겠다고. 덥지만 땀을 뻘뻘 흘리며 여름의 방식대로 시원하게 놀아야겠다. 교실에 있으면 어쩐지 계속 싸움이 일어날 것 같은 날이다.

모자를 쓴 아이들은 각자의 물통을 들고 나를 따라온다. 바깥 놀이터로 나오자마자 내리쬐는 햇빛에 눈을 뜨기가 힘들다. 더운 날씨지만 우리는 학교 안의 텃밭까지 걸어간다.

“선생님, 너무 더워요.”
“덥지, 중간중간 물 잘 마셔 얘들아. 가서 우리 매미 소리가 들리는 나무도 찾아보자.”

텃밭에 도착하자 널찍한 공터에 아이들이 뛰어논다. 땀을 뻘뻘 흘리며 뛰어논다. 이곳에선 다행히 다툼이 일어나지 않는다. 아이들의 얼굴엔 땀과 웃음이 가득하다.

“텃밭에 물 줄 친구는 수돗가로 오면 선생님이 물 넣는 거 도와줄게.”

아이들은 한쪽에 모인 물조리개를 한 개씩 들고

온다. 수돗가의 물을 틀자 차가운 물이 튀어 오른다. 더위와 끈적한 습기에 찌든 아이들은 차디찬 물을 맞기 위해 세게 튼다. 아이들은 최대한 오른쪽으로 수도꼭지를 돌린다.

“와아ㅡ 시원해, 선생님 얘네들도 목마른가 봐요.”

준수는 텃밭에 심어진 상추에 물을 주면서 자신의 발가락에도 물을 붓는다. 물조리개에 물을 가득 담고 뒤뚱뒤뚱 걸어가던 유라의 옷은 넘치는 물에 다 젖어버렸다. 그럼에도 시원한 느낌이 좋은 유라는 방긋 웃는다.

도시 속 유치원에서 아이들과 여름 나기는 쉽지 않다. 교실이라는 공간 안에서 인위적인 방법으로 더위를 이겨내야 한다. 하지만 가끔은 여름을 여름답게 보내는 게 우리에게 더 좋은 방법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여름의 계절에 맞게 땀을 뻘뻘 흘리고, 그늘에서 더위를 식히며 차가운 물을 맛보는 것 말이다. 아이들의 콧잔등에 송골송골 땀이 맺힌다. 덥고 습한 이 공기 안에서 여름의 지루함과 꼬여있는 마음들을 풀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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