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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아이는 안 잃어버리고 잘 키웁니다

아롱다롱 오피스텔링_회사생활 추억한다.

by 은수자

그녀는 신입사원이었다. 유아교육과를 전공했는데 일반 사무직으로 입사를 한 것이었다. 대구 근처인 영천이 고향이었는데 서울로 대학 때부터 유학 와서 정착한 친구였다. 영천이 대구와 가까운 곳이라는 것도, 물이 부족한 내륙의 도시라는 것도 그때 그녀에게 들어서 처음 알았다.

키가 매우 커서 무척 어른스러워 보였던 걸로 기억난다. 환하고 상냥한 인상의 그녀가 좋았었다.


그녀에 대한 한 가지 특징이 회사에 퍼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정리하지 않는 엉망진창의 책상"이었다.

정리하지 않는 습관이야 누구에게나 약간씩 있겠지만, 그녀의 책상은 많이 심각해서 같이 일하는 상사, 동료들에게서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뭐 하나 찾으려면 시간도 많이 걸리고 늘 정신없어한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해외 바이어에게서 받은 비싼 샘플을 그녀가 아무 데나 놓는 바람에, 새벽에 회사 청소하시는 분께서 쓰레기인 줄 알고 그걸 버리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그 샘플은 유럽 전시회에서 바이어가 직접 보고 구매해서 우리에게 보낸 1500불 정도 상당의 샘플이었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공장에 샘플로 보내야 할 하나밖에 없는 샘플을 분실했으니 정말 큰일이었다.


팀 전체가 난리가 났고, 급기야 팀원 전체가 빌딩 쓰레기 수집소에 다 내려가 찾기 시작했지만, 결국 그 샘플을 찾지 못했고, 해당 계약건은 취소하게 되었다. 바이어에게 샘플 대금만을 변상해 주려 했지만, 그는 노발대발하며 계약이 취소된 것에 대한 연계 손해까지 운운하며 큰 문제가 되었다.

다행히 잘 수습은 되었지만, 그 일로 그녀의 책상상태는 중요한 이슈로 떠 올랐다.


그뿐이 아니었다. 전체 팀원이 다 같이 쓰는 샘플실 샘플들을, 보고 난 뒤에 제자리에 두지 않아, 샘플이 분실되거나, 다른 팀원들은 찾을 수가 없어 바이어 미팅 시 곤란한 상황이 벌어지곤 했다.

결국, 동료들은 미팅 전날에 샘플을 다 찾아놔야 안심이 된다거나, 심지어 신제품 샘플이 들어오면 다들 몰래 하나씩 미리 자기 자리에 숨겨두기 시작하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결국, 그녀에 대한 대책회의가 열렸다. 해당 팀장님과 사원 전체가 참석한 회의에 그녀가 주인공으로 들어왔고, 정리 안 하는 문제에 대한 원인 질문, 해결 방안 등 여러 얘기가 오갔고, 그녀는 앞으로는 정리를 잘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여전히 얼굴에는 내가 뭘 그렇게 크게 어질렀나 하는 표정이 남아 있었다.

23.jpg 출처 : 판터레스트

그렇게 시간은 어찌어찌 흘러갔지만, 그녀와 한 팀에서 일하는 동료들은 늘 불안해하며 일했고, 뭐든 다 공용이 아닌, 각자의 서랍에 보관하는 버릇이 생겼다고 했다. 공용공간에 두면, 또 언제 어디로 사라져 못 찾을지 모르고, 그런 경우 중요한 미팅과 관련된 샘플의 경우는 큰 낭패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바이어 앞에서 샘플 못 찾겠다고 하면 그게 무슨 망신인가 말이다.

24.4.jpg 출처 : 핀터레스트

그러던 그녀가 어느 날, 청첩장을 돌렸다. 더욱이, 신랑이 고향친구라서 결혼 후에는 퇴사하고 남편을 따라 영천으로 가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음... 모두들 너무나 (?) 기쁜 마음으로 그녀의 결혼을 축하해 주었다. 그녀는 직원들을 위해 버스를 대절해 줬고, 다들 영천까지 매우 기꺼운 마음으로 결혼식에 참석했었다.

그 후, 그 팀에서는 이구동성으로 "꼼꼼한 성격'을 후임자의 최고 조건으로 꼽았고, 기대대로 말없고 꼼꼼한 직원이 입사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한 이 년쯤 지나서였을까? 점심 먹고 들어와 보니 사내가 웅성웅성했다.

아줌마가 된 그녀가 귀여운 아들내미를 안고 회사에 놀러 왔다. 서울 온 길에 동료들이 보고 싶어 들렸다고 했다. 다들 본인을 힘들어한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해맑은 얼굴로 빵을 잔뜩 사 갖고 아기를 안고 왔었다. 일하다가 갑자기 전업주부가 되어 아이만 키우는 일상이 때로는 매우 지루하다고 했으나, 영천에 정착한 그녀의 이 말은 사람들에게 전혀 불안이 되지 못했다 (웃음)


그러다, 그 옛날 회사 쓰레기장을 같이 뒤졌던 그녀의 상사가 빵을 먹으로 한 마디 했다.

아이고, 애는 안 잃어버리고 잘 키우니?
애는 간수 단단히 하고 키워야 된다.
잃어버리면 샘플 찾던 건 일도 아니다. 집안 망한다!

다들 빵 먹다가 박장대소를 했고, 그녀도 아이들 안고는 "애는 절대 안 잃어버려요!" 하며 활짝 웃었다.


정리는 정말 못했지만 환하고 밝았던 그녀, 지금쯤 시어머니가 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직도 정리는 안 하고 사는지 모르겠지만, 삶의 행복만은 꼭 쥐고 살아가고 있기를 빈다.

24.7.jpg 출처 : 핀터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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