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롱다롱 오피스텔링_회사생활 추억한다.
어느 해인가, 대표님의 학교 후배라는 대학교 4학년 학생이 회사에 6개월 수습사원으로 온 적이 있다.
대표님 친구인 교수님의 부탁으로, 해당 학과에 한 학생이 사정이 매우 어려우니, 6개월 정도 수습 사원으로 아르바이트 자리를 만들어 달라는 요청이었다. 그렇게 해서 마지막 학기 등록금을 해결할 수 있으니.
그 학생은 아주 여리여리 말랐고, 도수 높은 안경을 쓴 짧은 머리였는데, 처음 출근하던 날 나는 빨강머리 앤을 연상했다. 대표님은 모두에게 그 학생을 잘 '돌봐 주며 일종의 현장학습(On the job training)' 삼아 업무를 잘 가르쳐주라고 하셨다. 여자직원이 제일 많은 우리 팀 옆 자리에 앉게 되었고, 우리는 서먹하게 인사를 나눴다. 명문대 출신들이 흔히 그렇듯이, 그녀도 나름 자부심이 있는 듯 보였지만, 20대 아가씨가 아무런 치장도 하지 않고 섬머슴처럼 너무나 털털한 모습이어서 의아하면서도, 한편 귀여웠던 기억이 난다.
사람은 겪어봐야 아는 법이다. 한두어 달 지났을 무렵부터, 그녀는 많은 사람들과 트러블을 일으켰다.
너무 명명백백 시비를 가리는 성격이었고, 본인은 어떤 면에서도 손톱만큼의 손해는 보지 않겠다는 스타일이었다. 그녀가 배치된 업무는 정부과제 제출용 Paper work를 작성하는 일들이었는데, 양도 많고 때때로 팀원들은 야근도 하는 그런 상황이었는데, 그녀는 늘 칼같이 정시 퇴근을 하고, 팀원 간 Co-work도 매끄럽지 않으니 약간씩 컴플레인이 나오기 시작했다. 6개월 한 시직도 엄연한 직장생활이니 말이다.
특히, 그녀는 그 프로젝트의 PM급인 차장님과 사이가 안 좋았고, 중요한 자료를 마무리하지 않은 채 칼퇴근해버린 그녀에게 너무 화가 난 그가, 다른 직원을 통해 다시 오라고 지시했고, 에상대로 그녀는 그 오더를 완전히 무시한 채 다음날 출근했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40대 중반의 차장님은 22살의 4학년 학생을 질책하는 모양새가 아닌, 서로 싸우는 모양새가 되어 우스꽝스러운 장면이 연출되었다.
제가 뭘 잘못했죠? 제출 기한이 2일밖에 안 남아 촉박한 게 제 잘못입니까?
함께 하는 팀워크이라고는 하지만, 저는 제 시간을 야근에 할애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야근수당을 1.5배 수로 정산해 주신다고 해도요. 저는 6개월이라는 시간에 OJT를 하러 왔을 뿐, 정식 직원도 아닐뿐더러 그 프로젝트에 책임이 없는 서포터에 불과하니까요.
그녀의 말에는 논리적으로는 별반 틀린 말이 없었지만, 그날 이후 그녀는 노골적으로 해당 팀원들의 편을 가르며 험담을 일삼았고, 그녀의 편에 선 일부 직원들마저 태업을 하는 바람에, 결국 그 프로젝트는 기한 내 완결을 못해서 실패하고 말았다. 나중에 들으니, 그녀는 자기 의견에 동조하는 직원들을 데리고 부모님이 하시는 식당에 초대해 밥까지 먹였다고 했다. 어린 직원이 자기보다 나이 많은 선배 정직원들을 어떻게 그렇게 자기편으로 만들었는지도 신기한 일이다.
저희 집은 부모님이 변두리에서 작은 식당을 하셔서, 너무 힘드세요.
6개월간 회사까지 버스를 3번이나 타면서 출근해야 하는데, 차비가 많이 들어 몇 정거장은 마지막 버스를 안 타고 그냥 걸어와요. 동생도 또 이제 고3이라 부모님이 힘겨워하시고요.
그런데, 저는 유학 가고 싶어요. 공대니까 외국 정부장학금 자세히 알아보고 있어요, 저는 꼭 유학 갈 거예요. 저만 생각하는 거라고 친척들은 욕하는데요, 그래도 저는 유학 갈려고요. 그래서, 지금 마음에 여유가 한치도 없어요.... 그냥 고단하기만 해요.....
그렇게 그녀는 6개월을 잘 마무리하고 떠났다. 그 차장님과는 6개월 내내 사이가 나빴고, 그 팀은 두 편으로 갈라져, 일부는 그녀와 절친처럼 늘 붙어 다녔고, 나머지는 마지못해 대면대면하게 지냈다.
그녀가 떠나는 날, 나는 그 소원을 이루길 바랐다. 유학을 갈망하는 그 얼굴에서 진심을 느꼈고, 동시에 그걸 해내리라는 집념도 느껴졌다.
그다음 날, 차장님은 커피를 마시며 얘기하셨다.
그 학교 출신은 두 번 다시 뽑지 마!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