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엄마는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간신히 돌아오신 적이 있었다. 낡은 주택의 2층 전셋집은 언제나 쾌쾌한 냄새로 가득했고, 바닥에 두툼한 이불을 깔고 그 자리에 누운 엄마의 얼굴은 해쓱하게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의사들은 엄마가 회복할 수 있을지 쉽사리 장담하지 못했다. 그런 엄마가 무슨 병인지조차 나는 알지 못했다. 훗날에서야 알게 되었다. 나는 어린 마음에 ‘엄마가 떠나면 이제 나는 어디에 기대야 하나’ 하는 두려움에 밤마다 베개를 눈물로 적셨다.
그때 멀리 춘천에 계시던 외할머니가 내려오셨다. 본인 몸조차 가누기 힘드신 기력으로 큰 딸을 살리러 한 달음에 달려오셨다. 그 발걸음은 무겁고도 다급해 보였다. 외할머니는 고생을 참 많이 하신 분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가난한 살림에 허리가 휘도록 일했고, 결혼 후에도 평생이 전쟁 같았다고 했다. 외할아버지는 일찍 세상을 등지셨고, 자식들을 굶기지 않으려 외할머니는 논과 밭을 오가며 몸이 부서져라 일하셨다고 이모 삼촌들이 늘 이야기하셨다.
한겨울 얼어붙은 논두렁에서 손끝이 터져 피가 날 때까지 고구마를 캐던 이야기, 봄마다 허기를 달래기 위해 들에 난 나물을 뜯어다 국을 끓이던 이야기.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텨냈는데도, 외할머니는 자식 둘을 먼저 보내는 아픔을 겪어야만 했다. 그 상처는 외할머니의 가슴속 깊은 곳에 굳은살처럼 박혀 있었다. 그런데 또다시 자식 하나가 죽음의 문턱에 서 있다는 소식을 듣고, 외할머니는 한겨울 벌판을 달려오는 심정으로 집을 나섰던 것이다.
“내가… 또 자식을 먼저 보내면 어떡하냐…”
부엌 한쪽에 앉아 떨리는 손으로 국을 젓던 외할머니의 목소리를 나는 잊을 수 없다. 그 목소리는 울음인지 기도인지 모호하게 뒤섞여 있었고, 나는 그 앞에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외할머니는 유독 나를 아껴하셨다. 아빠도 일찍 여윈 내가, 이제는 엄마마저 보내야 할지도 모를 상황이니 더 안쓰럽게 느껴지셨을 것이다.
나는 그날 이후로 외할머니가 나를 바라보던 눈빛을 오래 기억했다. 애써 웃음을 지으려 하지만 금세 눈가가 젖어버리는 그 표정, 마치 세상에서 단 하나 남은 희망을 붙잡듯 나를 꼭 껴안던 그 온기. 그 안에서 나는 두려움과 동시에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 설령 세상이 나를 버려도, 외할머니만은 끝까지 내 곁에 있어주리라는 믿음 같은 것 말이다.
어느 날 엄마는 방에 누운 채 나를 불러 내 손을 꼭 잡았다. 그 손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숨결도 희미했고, 가느다란 목소리가 나왔다.
“너한테… 이야기해 줄 게 있어.”
“뭔데, 엄마?”
“너… 형이 둘 있었다는 건 알고 있니?”
나는 멍하니 눈만 깜빡였다. 어릴 적 어른들이 나누는 대화를 우연히 엿들은 기억이 났다.
“형?”
“그래… 네 위로 두 형이 있었는데, 큰 형은 사고로 죽었고, 작은 형은 잃어버렸어.”
그 순간 귀가 멍해졌다. 믿기지 않았다. 내게 형이 있었다니.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이야기였다. 엄마는 숨을 고르더니 내 얼굴을 똑바로 바라봤다.
“네 아빠도… 네가 세 살 때 돌아가셨잖아. 그때 엄마가 너만 데리고 집을 나왔어. 저기 옷장 세 번째 서랍 열어서 안쪽 바닥에 손 넣어봐, 거기에 사진이 있을 거야"
엄마 말대로 그곳엔 사진과 주소와 이름이 적힌 쪽지가 함께 들어있었다. 마치 소중한 보물이라도 되듯이 서랍 깊은 곳에 숨겨져 있었다. 나는 숨조차 막혔다. 내 혈육에 관련된 이야기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왔다. 내가 알지 못했던 가족의 그림자, 잃어버린 이름들, 사라진 얼굴들. 엄마는 마치 마지막 유언처럼 이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마치 죽기 전 이 사실을 알려주고 떠나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라도 든 것처럼. 그 표정은 이 세상 어느 슬픔보다 깊었고, 나는 그날 이후 한동안 잠들지 못했다.
엄마의 병은 1년 가까이 이어졌다. 엄마의 병상이 길어질수록 우리 집은 늘 한계 끝에서 아슬아슬하게 흔들렸다. 그러나 기적처럼, 엄마는 조금씩 회복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로 그 무렵부터 엄마는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셨다. 처음에는 일요일만 교회에 나가셨다. 언젠가부턴 집으로도 신도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좁은 거실에는 낯선 사람들이 모여 앉았고, 찬송가가 울려 퍼졌다. 손을 들고 기도하며 울부짖는 소리, 서로의 등을 두드리며 “아멘”을 외치는 소리.
“할렐루야! 주님이 살리셨습니다!”
“아멘! 아멘!”
엄마는 그 한가운데에서 눈물을 쏟으며 외쳤다. 마치 하나님이 엄마를 살리기라도 한 듯이, 그들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었다. 엄마는 그의 살아계심을 증명하는 산 증인이라도 된 듯했다.
“주님, 저를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내 방에서 이 소리를 들을 때마다 두 손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혹시라도 옆집에서 들으면 어떡하나, 그 생각에 노심초사했다.
‘대체 이게 뭐 하는 짓들이지… 왜 저렇게들 소리치는 거야.’
엄마는 길에서도 입을 쉬지 않았다. 버스 안에서도, 시장을 걸으면서도 입술은 끊임없이 움직였다.
“주여… 주여…”
나는 언제나 얼굴이 화끈거렸다.
“엄마, 제발 좀 그만해! 사람들이 다 쳐다보잖아!”
“왜? 부끄러워할 게 뭐 있니. 주님이 지켜주시는데.”
나는 대답할 말을 잃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
교회에 가면 목사님이 내 머리에 손을 얹었다.
“주님의 영이 함께하길…”
그러고는 알 수 없는 주문 같은 말을 빠르게 내뱉었다. 그 모습은 내 눈에 기이하고 섬뜩하게만 비쳤다.
‘이건… 종교가 아니야. 사이비야.’
그때부터 내 마음속에는 교회에 대한 뿌리 깊은 반감이 자라났다. 교회가 싫었다. 엄마를 집어삼키는 그 세계가 싫었고, 그 세계에 끌려 들어가는 내 모습은 더더욱 싫었다. 그래서 나는 어느 순간 더 이상 엄마를 따라 교회를 나가지 않았다. 그리고 마음속 깊은 곳에, 설명하기 어려운 반감 같은 감정 하나를 단단히 묻어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