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너한테 말 안 한 게 있어.”
결혼을 한 달여 앞둔 어느 저녁, 나는 결국 가장 부끄러운 이야기를 꺼내야 했다. 카페 구석자리에 마주 앉아 있었지만, 한동안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내는 아메리카노를 천천히 젓다 말고 고개를 들어 내 표정을 살폈다.
“뭔데? 왜 이렇게 심각해?”
나는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사실… 내가 가진 돈이 삼천도 안 돼.”
순간, 아내의 손이 멈췄다. 유리컵을 쥔 채 잠시 정지한 듯 있더니, 천천히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나는 속으로 ‘괜히 말했나’ 싶었다. 하지만 하지 않을 수 없었다.
“… 그게 다야?”
“응. 부모님 도움도 못 받고, 학자금 대출 갚느라… 진짜 열심히 모았는데도 그게 전부야.”
내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고, 시선은 바닥만 향했다. 서른이 넘은 남자가 가진 전 재산이 삼천도 안 된다는 사실이 그토록 초라하게 느껴진 적은 없었다. 그런데 아내는 한참 나를 바라보다가 피식 웃더니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그거 다 오빠가 모은 거잖아. 괜찮아.”
“진짜 괜찮아?” 나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응. 나 돈 좀 모아둔 거 있어. 오빠의… 한 네 배쯤?”
그 순간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고마움 반, 부끄러움 반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민망함 속에서 오히려 확신이 들었다. ‘아, 이 여자와는 어디서든 살 수 있겠다. 가진 게 적어도, 가진 게 많아도, 함께라면 괜찮다.’ 가난이 부끄럽지 않다는 걸 아내는 내게 가르쳐주고 있었다. 이 얘기를 친구들에게 했더니 다들 같은 반응이었다.
“야, 너 결혼 거저했네?”
맞는 말이었다. 정말 거저 한 셈이었다. 투룸 전세 보증금도 장인어른이 일부 보태주셨다. 그 돈이 아니었다면 시작조차 어려웠을지 모른다. 지금도 가끔 속으로 외친다. ‘사랑합니다, 장인어른!’ 그래도 운이 좋았던 건, 결혼 전 직장 근처 신축 임대아파트 청약에 당첨되어 이미 계약을 해두었다는 점이었다. 임대보증금은 1억 2천만 원이었다. 내 생에 첫 34평 아파트였다. 그야말로 꿈만 같은 집이었다. 다만 입주까지 시간이 남아 있어, 우리는 당분간 그 작은 투룸에서 신혼을 시작해야만 했다.
우리는 원룸 단지 안, 4층짜리 건물의 2층 작은 투룸에서 결혼 생활을 시작했다. 참 소박한 출발이었다. 올라가는 계단부터가 예사롭지 않았다. 좁은 층계에는 오래된 페인트 냄새가 진동했고, 복도의 형광등은 수시로 깜빡거렸다. 201호. 그 작은 문패가 붙은 집이 우리의 첫 보금자리였다. 문을 열면 6평 남짓한 거실과 부엌이 한눈에 들어왔다. 양쪽 끝에는 안방과 작은방이 하나씩 붙어 있는, 전형적인 투룸 구조였다. 그래도 투룸 치고는 꽤 넓은 편이었다. 풀옵션이라 큰 가전은 이미 갖춰져 있었다. 에어컨, 세탁기, 냉장고까지. 냉장고는 작았지만, 우리는 요령껏 2년을 버텼다. 필요한 건 최소한이었고, 그래서 오히려 가볍게 시작할 수 있었다.
신혼 혼수로 준비한 건 고작 세 가지였다. 침대와 작은 옷장, 그리고 TV. 침대는 원래 퀸사이즈를 꿈꿨지만, 방이 워낙 좁아 어쩔 수 없이 더블 사이즈로 골랐다. 그런데도 방의 절반을 차지해 버렸다. 침대를 놓고 나니 옷장을 둘 자리가 마땅치 않았다. 결국 옷장은 작은방으로 밀려났다. TV는 32인치. 지금 생각하면 아담한 크기지만, 그때 우리 집에서는 충분히 거대해 보였다. 작은 공간에 놓인 새 가전이 마치 영화관 스크린처럼 느껴지던 시절이었다.
우리는 혼수를 함께 준비했다. 아니, 사실 준비라고 할 것도 없었다. 예물은 생략했고, 신혼여행도 큰 부담 없는 선에서 다녀왔다. 모든 게 아내의 배려와 이해 덕분이었다. 그 시절 나는 진심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나는 분명 전생에 나라를 구했을 거야. 아니면 최소한 장군쯤은 됐겠지…’
아내는 불평 한마디 없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겉모습과 달리 참 털털한 여자였다. 가끔은 문득 아내 얼굴에서 배우 한가인의 모습이 겹쳐 보일 때도 있었지만, 그보다 더 예쁜 건 아내의 마음이었다. 특히 아침에 일어나 부스스한 머리로 좁은 부엌에서 아침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여배우 같았다. 물론 실제 여배우가 이렇게 작은 부엌에서 라면을 끓이는 모습을 보여줄 일은 없겠지만 말이다.
한 번은 같은 부서 동료 다섯, 여섯 명을 집으로 초대한 적이 있었다. 아내는 기꺼이 집들이를 준비했고, 좁은 투룸 안에 들어서는 동료들을 환한 미소로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좁지만 편하게 계세요!"
6평 남짓한 거실에 어른 여섯이 둘러앉으니 정말 빽빽했다. 무릎이 서로 닿을 정도였다. 그런데도 아내가 정성껏 준비한 음식들이 작은 테이블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와, 제수씨 음식 솜씨가 장난 아닌데요!"
"어머, 별거 아니에요. 많이 드세요."
밤늦도록 술잔이 오가다 보니, 결국 두 명은 집에 가지 못하고 우리 집에서 묵게 됐다. 아내는 좁디좁은 거실에 이불을 펴주었고, 다음 날 아침에는 해장국까지 끓여서 먹이고 집으로 돌려보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거실 풍경이 꽤 웃겼다. 한 명은 다리가 길어 발이 벽에 딱 닿아 있었고, 다른 한 명은 뒤척이다 TV 선반 모서리에 머리를 찧은 채로 잠들어 있었다. 작은 투룸이 갑자기 합숙소라도 된 듯한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아, 죄송해요. 너무 좁았죠?"
"제수씨, 아니에요. 저희가 눈치 없이… 민폐만 끼치고 가네요."
“민폐라니요. 언제든 편하게 놀러 오세요.”
그 순간, 속으로 생각했다. 이런 여자가 세상에 또 있을까? 다음 날, 좁은 거실에서 자고 간 동료들은 아내 칭찬이 끊이지 않았다.
"야, 제수씨 진짜 착하더라. 음식 솜씨도 좋고, 낯도 안 가리고, 성격도 좋고."
같이 자고 간 두 살 어린 후배도 거들었다.
"형수님이 우리 욕 안 하셨어요?"
"아니, 오히려 너희 잘 들어갔는지 계속 물어보던데?"
그날 이후 동료들은 아내를 더욱 좋아하게 되었고, 아내 역시 그들을 진심으로 대했다. 그 덕분에 지금까지도 그 관계는 따뜻하게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