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투룸 생활이 늘 따뜻하기만 했던 건 아니다. 한 번은 한밤중에 갑자기 천장에서 물이 뚝뚝 떨어진 적이 있었다. 화장실도 아니고, 안방 침대 위 천장에서였다.
"물 떨어진다! 물! 이불 젖는다!!"
"뭐?! 어디서?!"
"여기 침대 위!!"
새벽 2시였다. 우리는 허둥지둥 침대를 옮기고, 젖은 이불을 걷어내고, 새벽을 꼬박 새웠다. 위층에서 뭔가 터진 모양이었다.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계속해서 '똑똑똑' 울렸다. 우리는 바케스를 갖다 놓고 물을 받았다. 밤새 그 소리를 들으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다음 날 회사에 비실비실 출근하면서도 아내는 웃었다.
"이것도 추억이지 뭐."
"진짜 미안해. 이런 걸 겪게 해서."
"뭔 소리야. 우리 둘이 함께 겪는 거잖아."
정말, 이런 여자 세상에 또 있을까? 겨울이면 외풍이 심해 싸늘한 바람이 틈으로 들어왔다. 우린 창문마다 문풍지와 뽁뽁이로 도배를 해야만 했다. 안 그래도 좁은 투룸이 더 좁아진 기분이었다. 창문 틈새로 들어오는 바람은 정말 매서웠다. 아침에 일어나면 창문 쪽 벽면에 성에가 얼어있을 정도였다. 우리는 이마트에서 뽁뽁이를 사다가 창문 전체를 감쌌다.
"이거 좀 우스꽝스럽지 않아?"
"어떻게 생겼든 따뜻하면 되지."
화장실은 특히 더 추웠다. 샤워를 할 때면 입김을 불어가며 몸을 씻어야만 했다.
"으으, 여긴 냉장고야? 너무 추워!"
"조금만 참아. 나 샤워 다 하고 나면 너 들어가! 그럼 덜 추울 거야."
"그래도 물이 안 얼어서 다행이다~ 하하"
그 와중에도 아내는 늘 웃었다. 불평은 한 마디도 없었다. 오히려 내가 더 불평을 하곤 했다. 정말 정말, 이런 여자 세상에 또 있을까?
우리의 첫 보금자리에서 가장 좁은 곳은 부엌이었다. 폭이 겨우 1미터 남짓한 일자형 부엌이었다. 냉장고는 작았고, 싱크대는 한 명이 겨우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었다. 두 명이 함께 있으면 어깨를 맞대고 서야 했을 정도로 좁았다. 가스레인지는 2 구였는데, 하나는 센 불이 안 나와서 실질적으로는 1구 반 정도였다. 그나마 다행인 건 전자레인지가 하나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내는 그 좁은 공간에서 마법을 부렸다.
"오빠, 저녁 뭐 먹고 싶어?"
"뭐든 좋지. 라면도 좋고."
"라면은 안 돼. 신혼인데 라면만 먹으면 어떡해."
아내는 그 좁은 부엌에서 몸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요리를 시작했다. 냉장고에서 재료를 꺼내고, 싱크대에서 씻고, 가스레인지에서 볶는 모든 과정이 마치 무용을 보는 것 같았다.
"내가 도와줄까?"
"됐어. 여기 들어오면 더 좁아져. 거기서 TV나 봐."
그렇게 해서 그 좁은 부엌에서 나온 음식들은 정말 맛있었다. 김치찌개, 된장찌개, 불고기, 생선구이까지. 어떻게 그 작은 공간에서 이런 요리가 나오는지 신기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건 아내가 처음으로 불고기를 해준 날이었다. 마트에서 특가로 파는 불고기용 고기를 사 왔고, 그 좁은 공간에서 양파, 대파, 당근까지 썰어서 맛있는 불고기가 완성되었다.
"와, 이거 진짜 맛있다. 어떻게 이렇게 잘해?"
"이 정도는 기본이지."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아내가 처음으로 해준 미역국이다. 생일도 아닌 평범한 날이었는데, 갑자기 미역국이 먹고 싶다고 했더니 정말 끓여주었다. 미역국은 내 최애 음식일 정도로 좋아한다.
"미역국 진짜 맛있다. 너무 맛있는데?"
"미역국 끓이기 쉽지. 맛있게 먹어주니 내가 더 좋네."
그 부엌에서 가장 웃긴 에피소드는 아내가 처음으로 생선을 구워준 날이었다. 고등어를 사 왔는데, 그 좁은 부엌에서 생선을 굽다 보니 연기가 자욱했다. 환기가 잘 안 되는 구조라 집 안 전체가 생선 냄새로 가득했다.
"여보, 이거 냄새가 너무 심한데?"
"조금만 참아. 금방 끝나."
결국 우리는 창문을 모두 열고, 선풍기까지 동원해서 환기를 시켰다. 그래도 사흘 동안은 집 안에 생선 냄새가 남아있었다.
"다음부터는 생선은 밖에서 사 먹자."
"하하 그게 좋겠지?"
우리는 그 좁은 부엌에서 무수히 많은 요리와 추억을 만들어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부엌이 우리 결혼생활의 중심이었던 것 같다. 음식을 만들고, 함께 먹고, 설거지를 하면서 우리는 진정한 부부가 되어갔다. 그 좁은 공간에서 일어난 모든 일들이 우리에게는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투룸에서의 시간이 내 인생에서 가장 따뜻하고 생생했던 시절이었다. 비록 작은 집, 얇은 벽, 좁은 공간이었지만, 우리에겐 서로가 있었기에 넉넉했다. 세상이 무겁게 느껴질 때면 문득 그 투룸의 장판 냄새, 좁은 부엌에서 끓이던 김치찌개 냄새가 그립다. 그곳엔 확실히, 사랑과 시작이 있었다.
지금은 침대와 TV는 이미 버리거나 교체되었고, 옷장만이 아직 아들 방에서 멀쩡히 쓰이고 있다. 그 옷장을 볼 때마다 나는 투룸에서의 시절을 떠올린다.
"아빠, 이 옷장 언제부터 썼어?"
"아주 오래됐지. 아빠 결혼할 때부터."
"와, 그럼 진짜 오래된 거네!"
그렇다. 10년을 훌쩍 넘긴 옷장이다. 하지만 그 옷장만큼이나 오래된 것이 또 하나 있다. 바로 그 투룸에서 시작된 우리의 사랑이다. 지금 우리는 그때와 비교해 더 넓은 집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가끔씩 그 작은 투룸이 그리울 때가 있다. 모든 것이 가까이 있어서, 두 발자국이면 부엌에서 거실로, 거실에서 안방으로 갈 수 있었던 그 시절이 때론 그립다.
그 시절 우리는 가난했다. 하지만 동시에 가장 부유했다. 사랑으로 가득한, 진짜 부자였다. 그 작은 투룸에서 내가 배운 것은 분명하다. '집의 크기는 중요하지 않다. 그 집을 채우는 마음이 전부다.'
아내는 좁은 공간에서도 따뜻함을 만들어냈다. 불평 대신 웃음을, 불편함 대신 감사함을 택했다. 그리고 그 선택이 우리의 신혼을 가장 아름다운 시절로 남게 했다.
지금 많은 신혼부부들이 집 때문에 고민한다. 더 넓은 집, 더 좋은 집을 원한다. 물론 그런 마음은 이해한다. 하지만 나는 감히 말하고 싶다. 집의 크기보다 중요한 것은 그 집에서 함께 나눌 사랑의 크기라고. 우리의 투룸은 6평이었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사랑은 60평보다도 컸다. 그 작은 투룸에서 우리는 진정한 부부가 되었다.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고,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그 교훈들은 지금까지도 우리 결혼생활의 밑바탕이 되고 있다. 때론 현실이 버거울 때가 있다. 아내의 우울증, 육아의 어려움, 경제적 부담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그 투룸을 떠올린다. 그 작은 공간에서 시작된 우리의 사랑을. 그 사랑이 있다면, 어떤 어려움도 함께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투룸에서 시작된 우리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어떤 공간도 충분히 넓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