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살아있지만 죽어있는

by 오분레터

그날을 잊을 수 없다. 아내가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던 그날 아침, 나는 급한 대로 집안일을 챙겨놓고 회사로 향했다. 몸은 회사에 있었지만 마음은 온통 아내와 아이 걱정뿐이었다. 하루 종일 가슴 한편이 무거웠다. 그날 평소보다 일찍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현관문을 여는 순간부터 가슴이 두근거렸다.

거실로 들어서자 예감이 현실이 되었다. 집 안은 아침에 나갈 때 그 모습 그대로였다. 식탁 위의 빈 그릇, 소파에 놓인 빨래, 그 무엇 하나 사람의 손길이 닿은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안방으로 향하는 복도를 걸으며 심장이 터질 듯 뛰었다. 안방에는 아이가 얼마나 오래 울었는지 지쳐 헥헥거리고 있었다. 기저귀는 터질 듯 부풀어 올라 있었고, 얼굴은 울음으로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아내는 침대에서 이불을 뒤집어쓴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떨리는 손으로 아이를 안아 올렸다. 아이의 작은 몸이 경련하듯 흔들렸다. 서둘러 기저귀를 갈아주고 분유를 탔다. 아이는 분유를 받아먹으며 안정을 찾아갔다. 나는 그제야 한숨 돌릴 수 있었다.

"여보, 괜찮아?"

아내는 아무런 움직임도,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돌아누운 아내의 얼굴을 보는 순간,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아내의 얼굴에는 더 이상 생기가 없었다. 눈은 퀭하니 들어가 있었고, 얼굴은 핼쑥하게 여위어 있었다. 마치 살아있지만 죽어있는 사람 같았다. 내가 알던 아내의 모습이 점점 지워지고 있었다. 불과 몇 주 전만 해도 웃으며 아이 이름을 부르던 그 사람이 어디로 간 걸까.

"오빠, 나 왜 이러지?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아내의 목소리는 울먹거리고 있었다.

"나 좀 살려줘. 정말 모르겠어. 아무것도 하기 싫고, 아무것도 할 수 없어."

그 말을 들으며 아내에게 무언가 심각한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깨달았다. 단순한 육아 피로가 아니었다. 아내의 눈빛에는 자신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막을 수 없다는 공포가 서려 있었다.


자신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것을 막을 수 없다는 무력감. 그게 바로 우울증이었다.


다음 날, 나는 휴가를 내고 아내와 함께 동네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았다. 아침부터 아내를 설득하는 데만 한 시간이 걸렸다. "병원 가기 싫어, 소용없을 거야"라며 거부했다. 하지만 이대로 둘 수는 없었다. 결국 아내는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나를 따라나섰다.

찾아간 정신건강의학과 대기실에 앉아 있는 동안 아내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옆에서 보니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다른 환자들의 시선이 신경 쓰이는지 몸을 더욱 움츠렸다. 나는 아내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아내의 몸이 얼마나 긴장하고 있는지 느껴졌다.

진료실에 들어가자 의사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아내에게 물었다.

"언제부터 이런 증상이 있으셨어요?"

아내는 대답하지 못했다. 입술만 떨릴 뿐이었다. 옆에서 지켜본 아내의 증상을 내가 대신 설명해야 했다. 출산 후 점점 무기력해지더니 이제는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못한다고, 아이를 돌볼 수조차 없다고, 내가 보고 느낀 그대로를 설명했다.

"아기를 볼 때 어떤 기분이 드세요?" 의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한참을 침묵하던 아내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아무 느낌이... 없어요. 내 아이인데... 아무 감정도 안 들어요."

그 말을 하며 아내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감정이 없다고 말하면서도, 그런 자신에 대한 죄책감으로 울고 있었다. 의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몇 가지 질문을 더 했다. 수면 패턴, 식욕, 일상생활 능력, 자해 충동 여부까지. 아내는 고개를 끄덕이거나 작게 대답할 뿐이었다. 나는 옆에서 아내의 손을 꽉 잡고 있었다.

"산후우울증입니다. 출산 후 호르몬 변화와 육아 스트레스로 인해 발생하는 우울증이에요. 혼자만 겪는 게 아닙니다. 치료하면 충분히 나아질 수 있어요."

병명이 있고, 치료법이 있다는 의사의 말에 조금은 안도감이 들었다. 하지만 아내의 표정은 여전히 무겁기만 했다.

의사는 항우울제를 처방하며 설명을 이어갔다.

"약 효과가 나타나기까지 2주에서 4주 정도 걸립니다. 처음에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어요. 하지만 꾸준히 복용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남편분의 지지가 무엇보다 중요해요."

병원을 나서는 아내의 발걸음은 여전히 무거웠다. 처방약을 들고 병원을 나서며 나는 생각했다. 이 작은 알약이 정말 아내를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의사의 말처럼 약의 효과는 즉각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초기에는 부작용으로 더 힘들어하는 것 같았다. 식욕은 더 떨어졌고, 잠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속이 메스껍다며 화장실을 들락거리기도 했다.

"약 먹으니까 더 안 좋아진 것 같아"라는 아내의 말에 나도 흔들렸다. 이게 맞는 건가? 계속 이렇게 해도 되는 건가?

일주일, 2주일이 지나도 변화는 보이지 않았다. 의사는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라고 했지만, 매일매일이 전쟁 같았다. 아이를 돌보고, 집안일을 하고, 아내를 케어하는 일. 회사에서는 점점 눈치를 주기 시작했다.

몇 주가 지나도 아내의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악화되었다. 아내는 하루 종일 침대에서 나오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이가 아무리 울어도 반응하지 않았다. 가끔은 "아이가 없어졌으면 좋겠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아이를 그토록 기다렸던 아내였다. 아이가 생겼을 때 누구보다 기뻐했고, 배를 쓰다듬으며 아이와 많은 교감을 나눈 아내였다. "우리 아기, 건강하게만 태어나줘"라며 매일 밤 기도하던 그 사람, 그런 아내가 지금은 자신의 아이를 볼 수조차 없는 상황이었다.

그것이 우울증이었다.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뇌의 화학작용이 무너져버린 상태. 아내는 자신이 자격 없는 엄마라고 자책했고, 그 자책은 다시 우울증을 더 깊게 만들었다. 악순환이었다.

밤마다 아내는 작은 소리로 울었다. 나는 그저 등을 쓰다듬어줄 수밖에 없었다. "괜찮아질 거야"라는 말도 점점 공허하게 느껴졌다. 정말 괜찮아질까? 언제쯤 괜찮아질까? 나도 확신할 수 없었다.

새벽 3시, 아이 울음소리에 깨어 분유를 타고 기저귀를 갈면서 생각했다. 이 어둠이 언제 끝날까. 터널의 끝은 정말 있는 걸까. 지쳐가는 내 모습이 느껴졌다. 하지만 무너질 수는 없었다. 내가 무너지면 내 가족을 누구도 지켜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keyword
이전 08화우리에게 찾아온 새 생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