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룸에서의 신혼생활이 막 자리를 잡아가던 무렵이었다. 작은 집이었지만, 우리는 그 안에서 서로의 생활 패턴에 맞춰가며 매일을 분주하게 보냈다. 신혼부부답게 집안 구석구석에 아직은 미숙한 손길이 묻어 있었고, 냉장고는 늘 비어 있거나 넘쳐나 있기를 반복했다. 어느 날은 설거지를 서로 미루다가 밤늦게야 겨우 정리하기도 했고, 또 어느 날은 사소한 의견 차이로 얼굴을 붉혔다가도 금세 웃음으로 풀렸다. 모든 것이 서툴렀지만, 그조차 행복이었다. 매일 조금씩 ‘가족’이라는 이름에 익숙해져 가는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날 저녁, 예상치 못한 순간이 찾아왔다. 아내가 화장실에서 나온 뒤 내 쪽으로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손에는 낯설고도 작은 플라스틱 막대기가 들려 있었다. 임신 테스트기였다. 그 순간, 공기가 달라지는 듯했다. 아내의 목소리는 아주 작은 떨림을 품고 있었다.
“오빠… 나, 임신한 것 같아.”
나는 얼어붙은 듯 그 막대기를 바라보았다. 두 줄의 빨간 선이 선명하게 나타나 있었다. 한동안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놀람과 기쁨, 당황과 설렘이 뒤섞여 서로의 눈만 바라보았다. 몇 초 같았지만 사실은 몇 분이나 흘렀을지도 모른다.
나는 서른셋, 아내는 스물아홉. 결혼한 지 겨우 몇 달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내게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형제도 없고, 부모도 일찍 여읜 탓에 오랫동안 품어온 소망이 ‘가족을 꾸린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내의 얼굴에는 미묘한 아쉬움이 스쳐갔다. 연애 기간도 짧았고, 이제 막 신혼의 단꿈을 누리기 시작했을 뿐인데… 아내는 조금 더 이 시간을 즐기고 싶어 했다. 그 복잡한 감정을 나는 쉽게 읽을 수 있었다.
“우리 빨리 병원에 가보자.”
내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고, 아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날 아침, 우리는 손을 꼭 잡고 산부인과로 향했다. 낯선 대기실, 흰 가운을 입은 의사의 차분한 미소. 진료실에 들어서자 초음파 화면 속에서 아주 작은 점 하나가 깜빡이고 있었다. 의사가 말했다.
“임신 6주 정도 되셨네요.”
순간 숨이 멎는 듯했다. 그 작은 점은 아직 사람의 형태조차 갖추지 못했지만, 마치 우주 한가운데서 반짝이는 별빛처럼 느껴졌다. 미약하게 깜빡이는 심장 박동이 화면에 포착되자, 아내와 나는 동시에 숨을 삼켰다. 그 순간 우리는 이미 부모가 된 것만 같았다. 내 안에서 낯선 책임감이 밀려왔다. 저게… 우리의 아이구나.
그날 이후 아내는 하루가 다르게 변화해 갔다. 아침마다 화장실에 웅크린 채 구역질을 하다가도, 거울 앞에 서서 이를 닦고 화장을 곱게 했다. 그리고 아무 일 없다는 듯 출근길에 나섰다. 나는 늘 그 뒷모습을 보며 마음이 무거워졌다. 회사에 가지 말라고, 오늘은 푹 쉬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아내는 늘 같은 대답을 내놓았다.
“괜찮아. 할 수 있어.”
“조금만 더 일하고 싶어. 아이가 태어나면 어차피 그만둘 텐데.”
그 꿋꿋함이 내겐 대단하면서도 안쓰러웠다. 주말이면 우리의 일과는 늘 같았다. 아내가 먹고 싶어 하는 음식을 찾아다니는 것. 임신 초기에는 신맛 나는 것들만 찾았다. 김치찌개, 신김치, 새콤한 귤과 딸기. 슈퍼마켓에서 귤을 한 상자 사다 놓으면 며칠도 되지 않아 금세 바닥났다. 그러다 임신 중기에 접어들자 아내의 입맛은 달콤한 것들에 빠졌다. 겨울밤 붕어빵 가게 앞에서 줄을 서며, 손에 따뜻한 종이봉지를 들고 아내의 환한 얼굴을 보는 것이 내 행복이었다. 달달한 주전부리는 늘 아내의 가방 속에 들어 있었고, 출근길 간식처럼 챙겨 다녔다. 임신 후기로 갈수록 입맛은 또 변했다. 이번에는 짭짤한 음식이었다. 퇴근길에 국밥집에 들러 국물까지 비우고 나오는 날도 있었고, 주말 아침엔 김치볶음밥이나 매운 짜장면 같은 자극적인 음식을 원하기도 했다.
“오빠, 오늘은 뭐 먹을까?”
그 질문이 들리면 나는 곧장 차 키를 집어 들었다. 아내의 입맛은 계절처럼 매번 달라졌지만, 그 변화가 곧 우리의 작은 모험 같았다.
밤이면 아내의 배를 매만지며 속삭였다.
“아빠야.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지? 엄마 아빠가 너를 위해 열심히 살고 있어.”
태교 음악이 흐르는 방 안은 언제나 고요했지만, 그 속엔 묘한 떨림과 설렘이 가득했다. 아내는 임신 9개월이 될 때까지도 출근을 이어갔다. 배가 불러오자 책상 앞에 앉는 것조차 힘겨워 보였지만, 끝까지 버텨냈다. 나는 “제발 무리하지 말라”라고 수없이 말했지만 아내는 늘 웃으며 대답했다.
“할 수 있을 때까지는 하고 싶어.”
그 말이 고맙기도 했고, 미안하기도 했다. 나는 옆에서 도와줄 수 있는 게 많지 않다는 사실에 자주 무력감을 느꼈다. 그녀는 매일 아침 부은 발을 억지로 신발에 밀어 넣으며 출근했고, 저녁이 되면 침대 끝에 앉아 종아리를 주무르며 하루를 버텨낸 안도감을 내뱉었다. 그 모습이 내 마음에 오래 남았다.
나는 점점 깨닫게 되었다. 임신은 단순히 한 사람의 몸만 변하는 일이 아니었다. 우리의 생활, 우리의 관계, 우리의 미래가 함께 변해 가는 과정이었다. 아내의 불어난 배를 바라보며, 나는 매일 다짐했다. 더 좋은 남편, 더 좋은 아버지가 되어야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