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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산후우울증

by 오분레터

예정일보다 하루 일찍 찾아온 진통은 새벽의 적막을 깨고 시작됐다. 시계는 새벽 2시 4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아내가 내 어깨를 흔들었다.
“오빠… 아기가 나오려나 봐.”

잠결에 들은 말이었지만, 그 한마디가 머릿속을 순식간에 깨웠다. 순간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마치 사전 연습이라도 한 듯 본능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미리 준비해 둔 산모용품 가방을 메고, 신발을 제대로 신지도 못한 채 아내를 부축하여 차로 달려 나갔다. 병원으로 향하는 새벽 도로는 적막했다. 가로등 불빛만 길게 늘어져 있었고, 차 안에는 아내의 짧고 거친 숨소리만 가득했다.

“아, 너무 아프다…”
그 말 사이마다 숨을 고르며, 아내는 손을 내 쪽으로 내밀었다. 나는 한 손으로 아내의 손을 감쌌다. 아내의 손끝은 차가웠다. 한 번씩 손톱이 내 손등을 파고들었지만, 나는 오히려 그 통증이 고마웠다. 아내의 고통을 나눌 수 있는 방법이라고는 그것뿐이었다.

“괜찮아. 곧 끝날 거야. 조금만 더 참자.”
하지만 그 말은 아내보다 오히려 나 자신을 달래기 위한 위로에 가까웠다. 병원에 도착하자 간호사들은 재빠르게 아내를 분만 대기실로 안내했다. 나는 침대 옆 작은 의자에 앉아 아내의 손을 잡고 옆을 지켰다. 형광등 불빛은 새하얗게 환했지만, 이상하게도 그 안에서 나는 깊은 어둠 속에 홀로 있는 기분이었다.

“아직 아기가 나올 준비가 안 됐네요.”
간호사의 말투는 차분했고, 내 귀에는 유난히 차갑게 들렸다. 나는 대기실 의자에 앉았다가 일어났다가, 다시 앉기를 끝없이 반복했다. 시계를 몇 번이나 확인했는지 모른다. 한 시간, 두 시간, 세 시간… 시간은 끝없이 늘어지는 고무줄 같았다.

아내는 무통주사를 맞고서야 잠시 눈을 감았다. 그러나 그마저도 오래가지 않았다. 진통의 간격이 점점 좁아질수록 아내의 손은 내 팔을 꽉 잡았다가 놓기를 반복했다. 매번 그 손끝이 내 피부를 파고들 때마다, 나는 그 고통을 대신해 줄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아내의 통증이 극에 달했을 무렵, 간호사가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산모님, 분만실로 이동하실게요.”
그 말과 동시에 간호사는 아내를 서둘로 분만실로 안내했다. 분만실에서 의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남편분, 함께 들어오세요.”

분만실의 공기는 차갑고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새 생명이 태어나는 경이로운 순간이라기보다는, 냉철한 절차가 진행되는 공간 같았다. 기계음이 일정한 박자로 울렸고, 의사는 슬리퍼 차림으로 수술대 앞에 앉아 있었다. 두 명의 간호사는 말없이 분주히 움직였고, 나는 아내의 머리맡에서 손을 꼭 잡은 채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산모, 조금만 더 힘주세요. 좋아요, 조금만 더요. 하나, 둘, 셋!”
그 소리 사이로 아내의 숨이 터져 나왔다. 나는 속으로 수백 번 “괜찮아”를 되뇌었다.

“으아앙—!”

아기의 첫 울음소리가 분만실 안에 울려 퍼졌다. 그 소리가 공기를 가르며 내 귀와 내 가슴에 잊지 못할 감동으로 다가왔다.
“축하합니다. 건강한 아들입니다.”
눈물이 핑 돌았다. 작고 빨갛고 주름진 얼굴, 미세하게 떨리는 손가락, 움찔거리는 입술. 나는 아이를 품에 안았다. 따뜻했다. 믿기지 않았다. 세상이 내 품 안에서 숨 쉬고 있었다. 아내는 탈진해 있었지만, 힘겹게 눈을 뜨고 미소를 지었다.

“우리 아들이야…”
그날 밤, 나는 신생아실 유리창 너머로 아이를 한참 바라보았다. 작은 생명이 손가락을 오므렸다 펴는 동작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그 미세한 움직임 하나하나가 기적처럼 느껴졌다. 나는 생각했다. 어떤 아빠가 되어야 할까. 어떻게 해야 이 아이가 행복할까. 그 질문은 답이 없는 숙제 같았지만, 동시에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고민이었다.

우리 부부에게 출산 후 한 달은 꿈만 같았다. 아내는 다행히 빠르게 회복했고, 아기도 건강했다. 밤중 수유도 비교적 수월했고, 우리는 번갈아가며 아이를 돌봤다. 아기의 작은 손이 내 손가락을 꼭 쥘 때마다, 세상 그 무엇도 부럽지 않았다. 아내의 얼굴에는 피곤함 속에서도 은은한 빛이 스며 있었다.

그러나 그 평화로움은 오래가지 않았다. 출산 후 두 달이 지났을 무렵, 아내의 얼굴에서 웃음이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수면 부족으로 인한 단순한 피로라고 생각했다. 밤마다 아이가 깨니, 잠을 제대로 잘 수 없는 건 당연하다고 여겼다.

“여보, 조금만 더 참자. 100일의 기적이 있다잖아. 이제 곧 아이가 밤에 통잠 자는 시기가 올 거야”

그때의 나는 그 말을 믿었다. 정말로, 그 시기가 지나면 모든 게 다시 괜찮아질 거라 믿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아내에게서 이상한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늘 깔끔하게 정돈돼 있던 거실은 조금씩 어질러졌고, 싱크대에는 설거지가 쌓여갔다. 세탁물은 마르지 않은 채로 베란다에 그대로 걸려 있었다. 처음엔 피곤해서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퇴근 후 집안을 정리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하지만 점점 아내의 무기력은 깊어졌다.

아침이면 눈을 뜨지 못했고, 겨우 일어나도 멍하니 소파에 앉아 있는 날이 많았다. 텔레비전은 늘 켜져 있었지만, 아내의 시선은 초점을 잃고 있었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거실을 울려도 반응이 없었다.

"여보, 아기가 우는데… 배고픈 거 아닐까?”
“알아… 나도 알고 있어…”

아내의 대답은 늘 같았다. 알고는 있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는 듯했다. 아내의 몸은 미동조차 없었고, 방 안의 공기에는 말할 수 없는 정적이 내려앉았다. 아내의 눈빛은 점점 초점을 잃어갔다. 그럴수록 집 안은 더욱 어두워졌다. 낮에도 커튼은 닫혀 있었고, 햇빛 대신 그늘이 머물렀다. 예전의 아내라면 절대 그대로 두지 않았을 풍경이었다. 가장 괴로웠던 건, 아내가 아이를 바라보는 눈빛이었다. 그 시선은 결코 따뜻하지 않았다. 낯설었다.

“왜 자꾸 우는 거야…”
아내에게서 그 말이 나왔을 때,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이는 여전히 울고 있었고, 아내는 그대로 눈을 감았다.

어느 순간 아내는 식사를 거르기 시작했다. “밥 먹자”라고 하면 “배고프지 않아”라고 대답했다. 며칠씩 샤워를 하지 않았고, 거울도 외면했다. 한때 거울 앞에서 머리를 곱게 매만지던 사람이, 이제는 자신의 얼굴을 마주 보는 것조차 두려워하는 듯했다.

밤마다 나는 아기를 안고 거실을 돌았다. 아이의 작은 숨결이 내 품에서 고르게 이어질 때마다, 마음 한편이 시렸다. 방 안에서 들려오는 아내의 숨소리를 들을 때면, 그 숨이 혹시 멈출까 두려워 귀를 기울였다.

그때 처음으로 ‘산후우울증’이라는 단어를 검색했다. 하지만 그 단어를 읽는 순간조차 믿을 수 없었다.
설마, 우리 아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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