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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하는 대기실

by 오분레터

처음 정신건강의학과 문을 열었을 때, 마음은 동네 내과를 찾는 것만큼이나 가벼웠다. 아내가 밤새 뒤척이며 "죽고 싶다"라고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지만, 나는 여전히 이것이 일시적인 증상이라고 믿고 싶었다. 육아와 살림에 지쳐서 그런 것이라고, 조금만 쉬면 예전의 환한 미소를 되찾을 거라고 믿었다. 아니, 믿고 싶었다.

그렇게 첫 번째 병원을 찾았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병원은 회색빛 상가건물 1층에 자리하고 있었다. 'oo정신건강의학과'라는 간판이 다른 상점들 사이에서 있는 듯 없는 듯 매달려 있었다. 마치 자신의 존재를 감추려는 듯이.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정신과 진료에 대한 편견이 짙게 남아 있었다.

대기실에 발을 들이자마자 특유의 냄새가 코를 찔렀다. 소독약 냄새와 오래된 소파에서 나는 퀴퀴한 냄새, 그리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절망의 냄새. 벽에는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입니다'라는 포스터가 붙어 있었지만, 낡고 바랜 종이 위의 글씨들은 오히려 더 슬퍼 보였다.

대기실을 가득 메운 사람들의 표정은 다른 어떤 병원에서보다 더 어두웠다. 4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여성은 계속해서 손톱을 뜯고 있었다. 뜯고, 뜯고, 또 뜯고. 이미 손가락 끝이 빨갛게 상처가 났음에도 멈추지 않았다. 그 옆에 앉은 20대 남성은 스마트폰을 들고 있었지만 화면을 보는 것이 아니라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마치 다른 사람은 볼 수 없는 혼자만의 세계를 바라보고 있는 듯했다.

"내 모습도 저렇게 보여?"

아내가 내 귀에 속삭였다. 나는 고개를 저었지만, 솔직히 아내에게도 가끔은 그런 모습이 보였다. 며칠째 제대로 감지 못한 머리카락과 깊게 파인 다크서클, 어깨에 걸친 카디건은 한쪽으로 한참이나 기울어진 상태였다. 하지만 그 모든 것보다 가장 달라진 것은 아내의 눈빛이었다. 예전에는 별처럼 반짝이던 그 눈에서 이제는 빛을 찾을 수 없었다.

앞서 두 명의 환자가 진료를 마치고 나오고 나서야 아내 차례가 되었다. 나는 드라마에서 보았던 따뜻한 정신과 의사를 기대했다. 환자의 손을 잡고 "괜찮아요, 천천히 이야기해 보세요"라고 다정한 위로를 건네는 그런 의사 말이다. 하지만 현실 속 의사는 사뭇 달랐다. 그는 컴퓨터 화면만 응시하며 기계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언제부터 이런 증상이 있었나요? 수면은 어떤가요? 식욕은요? 자해나 자살 충동은 느껴본 적 있나요?"

마지막 질문에 아내는 주춤했다. 나는 아내가 "네"라고 대답할까 봐 가슴이 철렁했다. 다행히 아내는 "아니요"라고 답했지만, 그 짧은 망설임이 나에게는 천 마디 말보다 무겁게 다가왔다.

"우울증 증상이 보이시네요. 이 약 꾸준히 복용하시고 2주 후에 다시 오세요. 처음에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어요. 그때는 즉시 중단하시고 다시 내원하셔야 합니다."

진료시간은 고작 5분이었다. 아내가 그동안 품어왔던 깊은 절망과 고통이 단 5분 만에 '우울증'이라는 진단명 한 장으로 정리되었다. 처방약을 받아 들며 간호사의 설명을 주의 깊게 들었다.

"이 약은 4-6주 정도 꾸준히 드셔야 효과가 나타나요. 처음 2주 동안은 오히려 증상이 악화될 수 있으니 보호자분께서 잘 지켜보세요."

우리는 약봉지를 들고 병원을 나서며 어리둥절했다.

"이게 다야?"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아내가 말했다.

"여보, 나 정말 이상한 사람인 거 맞지? 의사 선생님 말씀도 잘 이해가 안 되고, 머리가 멍해."

아내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다.

"내가 왜 이렇게 된 걸까? 예전에는 이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걱정하지 마. 그냥 스트레스 때문이겠지. 며칠만 약 먹으면 금방 좋아질 거야."

첫 번째 병원에서 받은 처방약은 2주 동안 아무런 변화를 가져오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나빠졌다. 아내의 불면증은 더욱 심해졌고, 낮에도 계속 누워만 있는 날이 많았다. 입맛도 완전히 사라져서 하루 종일 물 한 컵으로 버티는 날이 많았다.

"약이 안 맞는 것 같아. 다른 곳 한번 가보자."

사실 약보다는 의사의 태도가 내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절망에서 우리를 구원해 줄, 다정한 말 한마디라도 아내에게 건네줄 그런 의사를 만나고 싶었다.


그렇게 우리는 두 번째 병원을 찾았다.

두 번째로 찾은 곳은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조금 더 큰 정신건강의학과였다. 꽤 큰 현대적인 건물에 첫 번째 병원과는 차원이 다른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여기서는 뭔가 달라질 거야'라는 기대감이 부풀어 올랐다.

하지만 문제는 환자의 수였다. 대기실에는 10명도 넘는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대기실의 풍경은 첫 번째 병원보다 더 암담했다. 양복을 말끔히 차려입은 중년 남성이 손을 부들부들 떨며 앉아 있었다. 그의 옆에는 10대로 보이는 여학생이 어머니와 함께 앉아 있었는데, 소매를 내려 팔을 가리고 다른 한 손으로 꼭 움켜쥐고 있었다. 나는 여학생의 팔에 무엇이 있는지 알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팠다.

한쪽 구석에는 70대 정도의 할머니가 혼자 앉아 계셨다. 할머니는 계속해서 가방을 뒤지며 뭔가를 찾고 계셨다. "어디 갔지? 어디 갔지?" 계속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치매 초기 증상으로 오신 것 같았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아기를 안고 온 젊은 엄마였다. 그녀는 혼자였다. 아내와 같은 산후우울증인 듯했다. 생후 3-4개월 정도 되어 보이는 아기는 계속 울고 있었는데, 엄마는 아기를 달래려 하지 않았다. 그냥 멍하니 앉아서 아기가 우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아내를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쓰렸다.

"지금 내 모습이 저 사람하고 같아 보일까?"

아내의 말에 나는 가슴이 먹먹해졌다.

1시간 이상을 기다린 끝에 드디어 진료실에 들어갔다. 의사는 30대 후반 정도의 젊은 여의사였다. 첫 번째 병원의 남자 의사보다는 더 다정하게 질문을 해주었다.

"이전에 복용하신 약이 효과가 없으셨다면 다른 계열의 약을 써보죠. 이 약은 부작용이 적어요. 다만 처음 2-3주는 효과가 미미할 수 있어요."

그리고 추가로 수면제도 처방해 주었다.

"밤에 잠을 제대로 못 주무시면 악순환이 반복돼요. 일단 잠을 잘 주무시는 게 중요해요."

진료비는 첫 번째 병원의 두 배였지만, 그래도 더 세심하게 진료해 준 것 같아서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한 달 후, 결과는 비슷했다. 아내는 밤에는 수면제 덕분에 잠을 잘 수 있었지만, 낮에는 더 무기력해졌다.

"여보, 나 점점 더 이상해지는 것 같아. 아침에 일어나면 머리가 너무 무거워. 그냥 계속 누워 있고 싶어."

아내는 또 다른 증상을 호소했다. 기억력이 나빠진 것이다. 어제 일도 잘 떠오르지 않고, 친구들 이름도 갑자기 생각나지 않는다고 했다. 혹시 다른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커졌다.

우리는 과연 올바른 길을 가고 있는 걸까? 너무나도 짧은 진료와 효과를 알 수 없는 처방전, 그리고 '기다려 보세요'라는 말만 반복되는 이 과정이 정말 아내를 치유할 수 있을까?

대기실에 앉아 있던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들도 모두 우리처럼 희망을 품고 이곳을 찾았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처럼 길을 잃은 채 헤매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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