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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의사가 건넨 말

by 오분레터

우리는 다시 다섯 번째 병원을 찾았다.

부산까지 왕복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시간과 비용, 어린 아들을 데리고 먼 길을 오가는 것까지 모든 게 버거웠다. 결국 우리는 부산 병원 통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한 달쯤 지났을 때, 아내의 상태는 다시 나빠지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있고, 식사도 거의 하지 않았다. 체중은 또다시 빠지기 시작했다. 아이를 돌보는 일은 여전히 나의 몫이었다. 하루에도 수없이 기저귀를 갈고 분유를 탔다. 매일 목욕을 시키고, 업고 안아서 재웠다. 체력적으로 힘들었지만, 그것보다 더 견디기 어려운 것은 아내가 점점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빠져드는 모습을 무력하게 지켜봐야 하는 것이었다.

나는 또다시 다른 병원을 찾아야 했다. 인터넷에서 검색하다 집에서 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작은 개인 정신건강의학과를 발견했다. 리뷰도 거의 없고, 건물도 낡아 보였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정말 작은 시골 병원이었다. 대기실에는 의자가 10개 정도밖에 없었고, 환자도 한두 명뿐이었다. 벽지는 오래되어 모서리가 들떠 있었고, 조명도 오래된 빛을 내뿜고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무언가가 있었다. 큰 병원의 차갑고 기계적인 분위기와는 분명히 달랐다. 어딘가 사람의 온기가 느껴지는 그런 곳이었다.

창가에는 작은 화분들이 놓여 있었다. 누군가 정성스럽게 가꾼 듯한 선인장과 다육이들이 햇빛을 받으며 자라고 있었다. 대기실 탁자 위에는 낡은 잡지가 아니라 따뜻한 보리차가 담긴 주전자와 종이컵이 놓여 있었다.

원장은 60대 정도 되어 보이는 할아버지 의사였다. 머리가 희끗희끗하고, 얼굴에는 깊은 주름이 있었지만, 눈빛은 온화했다.

"어서 오세요. 어디가 불편해서 오셨나요?"

진료실은 작고 시설도 낡았지만, 의사의 표정과 태도는 분명 따뜻했다. 아내는 그동안의 경험을 두서없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네 군데 병원을 전전한 것, 부산까지 갔다가 포기한 것, 그리고 지금 자살 충동까지 느끼고 있다는 것.

"그동안 정말 많이 힘드셨겠어요."

의사는 아내의 말을 끝까지 경청한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우울증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가 포기하지 않는 거예요. 약물 치료도 중요하지만, 가족의 지지와 환자 본인의 의지가 더 중요합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약물 외의 구체적인 치료법을 제시했다.

"규칙적인 운동을 하세요. 하루 30분씩만 걸어도 효과가 있어요. 그리고 햇빛을 많이 쬐세요. 일광욕이 우울증 치료에 도움이 됩니다."

의사는 메모지에 뭔가를 적으며 계속 말을 이어갔다.

"음식도 중요해요. 오메가3가 풍부한 생선을 자주 드시고, 비타민D도 챙겨 드세요. 그리고 무엇보다 충분히 주무셔야 해요."

나는 의사가 적어준 메모지를 받아 들었다. '하루 30분 산책', '생선 주 3회', '비타민D', '오전 햇빛 쬐기' 간단하지만 구체적인 실천 방법들이었다. 그날 아내는 새로운 처방을 받았다.

"이 약은 세로토닌과 노르에피네프린 모두에 작용해요. 이전에 드신 것들과는 다른 메커니즘이에요."

의사는 처방약을 건네며 말했다.

"다음 주에 또 오세요. 약의 효과를 보려면 최소 4주는 걸리지만, 그전에 부작용은 없는지, 컨디션은 어떤지 확인해봐야 하니까요."

일주일 후 다시 방문했을 때, 의사는 아내의 상태를 자세히 물어보았다. 수면은 어떤지, 식욕은 어떤지, 기분은 어떤지. 그리고 자살 충동은 여전히 느끼는지.

"아직 약 효과가 나타나기에는 이르지만, 자살 생각이 줄어든 것 같아서 다행이에요. 계속 지켜봐야겠어요."

다섯 번째 병원을 다니기 시작한 지 한 달쯤 지났을 때, 아내에게 작은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먼저 잠을 조금 더 잘 수 있게 되었다. 새벽 3시까지 뒤척이던 것이 1시경에는 잠들 수 있게 되었다. 깊은 잠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예전보다는 분명 나아진 것 같았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는 것을 덜 힘들어했다. 예전에는 11시, 12시까지 침대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던 아내가 9시경에는 일어날 수 있게 되었다.

어느 날은 아내가 아이를 데리고 집 앞 놀이터에 다녀온 적이 있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아이와 함께 밖에서 시간을 보낸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아이가 그네 타는 모습을 보니까 눈물이 나더라."

아내가 말했다.

"그동안 얼마나 외로웠을까 싶어서. 나 때문에 아이도 많이 힘들었을 거야."

나는 아내의 손을 잡았다. 말없이 꽉 잡아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전히 우울한 날들이 많았다. 좋아졌다가 다시 나빠지고, 희망을 가졌다가 다시 절망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여보, 어제는 괜찮았는데 오늘은 또 기분이 이상해. 내가 정말 나을 수 있을까?"

아내의 목소리는 불안으로 떨렸다. 순간 의사가 해준 말을 떠올렸다.

"우울증 회복은 직선이 아니에요. 지그재그로 올라가는 거예요. 나빠지는 날이 있어도 포기하지 마세요."

다음 진료 때, 의사는 나에게 가족의 역할에 대해 더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우울증 환자는 스스로를 탓하는 경우가 많아요. '내가 이상해서', '내가 나약해서' 이렇게 생각하죠. 가족들이 '의지가 약해서 그런 거다', '좀 더 노력해 봐' 이런 말을 하면 스스로 더 자책하게 됩니다."

의사는 잠시 멈췄다가 내 눈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대신 '많이 힘들구나', '천천히 나아가자', '네 옆에 있을게' 이런 말을 해주세요. 조급해하지 마시고 기다려주세요."

나는 그 말을 듣고 그동안 아내에게 했던 말들을 반성했다.

"왜 이렇게 계속 우울해해?", "예전처럼 활기찬 모습 좀 보여줘", "아이를 위해서라도 힘을 내야지"

이런 말들이 아내에게는 칼날이 되었을 것이다. 나는 격려한다고 했던 말들이 사실은 아내를 더 깊은 구렁텅이로 밀어 넣고 있었던 것이다.

그날 밤, 아이를 재우고 아내와 나란히 누웠다.

"미안해. 그동안 내가 이해하지 못하고 조급하게 굴었나 봐."

아내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당신도 힘들었을 텐데. 나 때문에..."

"아니야. 우리 둘 다 처음 겪는 일이잖아. 이제라도 알게 됐으니 다행이야."

나는 아내의 손을 잡았다.

"천천히 가자. 조급해하지 말고. 내가 옆에 있을게."

아내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하지만 그 눈물은 절망의 눈물이 아니었다. 어쩌면 안도의 눈물이었을지도 모른다. 창밖에는 짙은 어둠이 깔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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