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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이 아닌

by 오분레터

"우리… 성당이라도 가볼래?"

내 입에서 나온 말이 스스로도 낯설었다. 대학교 신입생 시절, 엄마가 세상을 떠났을 때 학교 뒤편 작은 교회에 매달렸던 시절이 떠올랐다. 하지만 졸업과 동시에 기독교와 멀어진지 이미 오래였다. 그런 이유로 아내에게 성당을 제안했다. 다시 신의 도움을 애원한다는 것이 우스웠지만 웃을 수만은 없었다. 약도, 상담도, 심지어 내 사랑조차 아내의 마음속 겨울을 녹일 수 없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나는 종교라는 마지막 카드를 꺼내들었다.

우리가 찾은 곳은 거제 옥포의 작은 성당이었다. 평일 오전이라 예배는 없었지만 몇몇 사람들이 성당 안에 모여 있었다. 문득 궁금했다. 저 사람들은 과연 어떤 마음으로 여기 오늘 걸까? 모두가 행복해서 감사의 기도를 드리러 온 것일까? 아니면 나처럼 절망적인 마음으로 마지막 희망을 찾아온 것일까?

작은 문을 밀고 들어서는 순간, 독특한 공기가 우리를 감쌌다. 백합향과 오래된 나무 냄새, 묵은 책의 향이 뒤섞인 그 분위기.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한 햇빛이 바닥에 색색의 유리 조각처럼 흩어져 있었다. 어둡지도 밝지도 않은, 그 중간쯤의 빛이 성당 내부를 감싸고 있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고요했고 평화로웠다. 그리고 따뜻했다. 무언가가 내 마음속 얼어붙은 부분을 조금씩 녹이는 것 같았다. 문득 옆에 선 아내를 바라보았다. 혹시 이 고요함이 아내에게도 닿았을까? 혹시 이 따뜻함이 아내의 마음도 조금은 녹였을까?

하지만 아내의 얼굴에는 여전히 아무 표정이 없었다. 마치 이 모든 것과 무관하다는 듯이 성당의 고요함도, 따뜻한 빛도, 백합향도 아내에게는 닿지 않는 것 같았다. 내 마음속 작은 기대가 스르르 무너져 내렸다.

"성당 처음 오셨어요?"

한 여성 신도가 조심스럽게 다가와 물었다. 오십 대쯤 되어 보이는, 온화한 인상의 여성이었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네. 처음이에요. 아내가… 요즘 좀 힘들어해서요."

그 말을 하는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마치 신에게 구걸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여성은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오히려 더 부드러운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여기 오시는 분들이 대부분 그래요. 힘들 때 오시게 되죠. 그래도 괜찮아요. 하느님은 언제나 기다려주시니까요."

그녀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아내는 그 눈빛조차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말없이 의자에 앉아 고개를 깊이 숙였다. 등이 굽어 보일 만큼 힘없는 모습이었다.

나는 아내 옆에 조용히 앉았다. 그리고 내내 그 옆모습을 지켜보았다. 작은 변화라도 포착하고 싶었다. 눈가에 눈물이 맺히는 건 아닌지, 입술이 미세하게 움직이는 건 아닌지, 어깨가 조금이라도 펴지는 건 아닌지. 아니, 사실 나는 기적을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내가 갑자기 고개를 들고, 환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괜찮아졌어"라고 말해주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내는 끝내 입을 열지 않았고, 표정도 변하지 않았다. 30분쯤 그렇게 앉아 있었을까. 아내가 갑자기 일어나 성당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황급히 뒤를 따랐다.

성당을 나서자 2월의 차가운 바람이 우리를 맞았다. 방금전의 따뜻함은 온데간데 없었다. 우리의 현실은 여전히 차갑고 냉정했다. 나는 작은 희망을 품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다음에 한 번 더 와볼까?"

아내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 별로 오고 싶지 않아. 사람들이 날 이상하게 볼 것만 같아."

그 말을 듣는 순간, 짧게나마 품었던 희망이 사라졌다. 아내의 목소리에는 피로와 체념이 묻어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우리는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우리의 힘없는 발걸음 소리만이 적막을 깨뜨렸다. 차가운 바람이 우리 사이를 스쳐 지나갔다.

그날 밤,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무엇이 아내를 다시 웃게 할 수 있을까. 아니, 웃음은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아내가 고통스러워하지 않기를, 매일 아침 눈을 뜨는 것조차 버거워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날 이후, 아내에게 다시는 종교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아내를 존중하고 싶었다. 아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강요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아무리 간절해도 아내가 받아들일 수 없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아내의 아픔은 아내의 것이고, 나는 그저 곁에 있을 뿐이었다.

대신 우리는 다른 방법을 찾았다. 그건 가벼운 산책이었다. 그저 집 앞 골목을 함께 걸었다. 아내는 처음에 그것조차 힘들어했다. "나가기 싫어"라는 말을 몇 번이나 들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매일 같은 시간에 아이를 유모차에 태워 우리는 함께 현관문을 나섰다.

첫 번째 산책은 5분도 채 되지 않았다. 매서운 겨울바람에 아내는 금세 돌아가자고 했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는 아내가 "저기 골목까지만 더 가자"고 말하기 시작했다. 우리의 산책은 그렇게 10분, 15분 점점 늘어갔다. 작은 변화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날 아내가 먼저 말했다.

"우리 산책 나갈까?"

그 짧은 한마디가 내게는 기적처럼 들렸다. 작은 변화였지만, 나에게는 큰 희망이었다. 아내가 스스로 무언가를 원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겨울 산책길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배웠다. 말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는 것, 그리고 천천히 가도 괜찮다는 것을 경험하기 시작했다. 추위 속에서도 피어 있는 동백꽃을 보며 아내는 처음으로 작은 미소를 지었다. 유난히 동백꽃이 아름다운 계절이었다.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내가 내 손을 잡았다. 차가운 손이었지만, 그 온기는 내 마음까지 따뜻하게 했다. 말없이 걷는 우리의 발걸음은 어느새 같은 리듬을 타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함께 겨울을 견뎌냈다. 아내의 마음속 겨울이 완전히 끝났다고 할 수는 없었다. 여전히 어두운 날들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지 못하는 날도 있었고, 아무것도 하기 싫다는 날도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이제는 봄을 기다릴 수 있는 힘이 생기기 시작했다.

우울증은 사랑으로 치료되는 병이 아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적어도 그 아픔을 혼자 견디지 않아도 된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나는 믿었다.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듯이, 아내의 마음에도 언젠가는 따뜻한 봄날이 올 것이라 믿었다. 그때까지 나는 아내의 곁에 있을 것이라 다짐했다. 말없이 손을 잡고 함께 걸어 가는 것,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성당에서 기적을 찾지는 못했지만, 우리는 일상에서 작은 기적을 발견했다. 함께 걷는 것과 손을 잡는 것, 그리고 작은 미소를 나누는 것까지. 그 모든 것이 기적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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