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이토록 길었던가. 그해 겨울은 내 생의 가장 혹독한 계절이었다. 매서운 추위는 단순히 차가운 공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마음 깊숙한 곳,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곳까지 파고들어 무언가를 천천히 얼려갔다. 창밖을 보면 회색빛 하늘이 끝없이 이어졌고, 세상은 온통 차가운 색으로만 채워진 것 같았다.
아이는 더 이상 엄마의 모유를 먹을 수 없었다. 대신 분유가 아이의 작은 배를 채웠다. 처음 젖병을 물렸을 때, 아이가 거부하면 어쩌나 걱정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아이는 별 투정 없이 적응해 주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젖병을 잡으려 애쓰는 모습만으로도 나는 감사했다. 하지만 아내는 그런 아이를 바라보며 아무런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아내의 얼굴에는 늘 아무 표정이 없었다. 눈빛도, 손길도, 목소리도 마치 투명한 유리벽 너머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처럼, 아내는 모든 것과 단절되어 있었다. 아이를 향한 손길조차 주저하는 아내를 보며, 우울이라는 어둠이 얼마나 깊고 무서운 병인지 깨달았다. 그것은 사람의 본능마저 잠재울 수 있는 괴물이었다. 엄마라는 이름 앞에서도, 갓 태어난 생명 앞에서도 무심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어둠이었다. 나 또한 그 어둠 앞에서 무력해졌다.
육아휴직의 하루는 단조로웠다. 새벽 한가운데 아이의 울음에 눈을 뜨고 잠이 덜 깬 손으로 부엌으로 향했다. 캄캄한 거실을 지나며 발끝으로 조심스럽게 걸었다. 힘겹게 잠이 든 아내를 깨우고 싶지 않았다. 물을 끓이고, 분유를 타고, 젖병을 흔들며 온도를 확인했다. 물이 식지 않도록, 너무 뜨겁지 않도록 손목 안쪽에 한 방울 떨어뜨려 온도를 재는 것도 익숙한 일이 되었다.
때가 되면 기저귀를 갈고, 때가 되면 아이를 재우고, 때가 되면 작은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아 목욕을 시켰다. 물에 닿은 아이의 피부는 서서히 붉은빛으로 물들었고, 아이는 그 따스함에 기분 좋은 듯 웃었다. 작은 발로 물장구를 치고, 두 팔을 휘저으며 즐거워하는 아이를 보면, 나도 덩달아 웃음이 났다. 그 순간만큼은 모든 게 평화로워 보였다.
규칙적인 일상 속에서 나는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아이는 내 품에서 익숙함을 찾았다. 내 손가락을 잡으려 애쓰고, 내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내 냄새를 기억하고, 내 심장 소리에 안정을 찾았다. 그럴수록 아내와의 거리는 조금씩 멀어져 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여전히 엄마를 찾았다.
본능일까, 아니면 자연의 섭리일까. 아이의 눈은 언제나 아내를 향했다. 거실 소파에 앉아 있는 아내를 향해, 아이는 두 팔을 뻗었다. 안아달라고, 엄마라고, 말없이 손짓했다. 하지만 아내는 끝내 아이를 안아주지 못했다. 그저 멍하니 아이를 바라볼 뿐이었다. 우리 부부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 속에는 깊은 지침과 슬픔, 그리고 말로 할 수 없는 미안함이 고여 있었다. 나는 아내의 손을 잡았다. 그 손은 여전히 차가웠다.
아내는 바깥세상을 지나치게 두려워했다. 현관문 앞에 서면 숨이 가빠졌다. 손이 떨렸고, 식은땀이 났다. 나가는 것조차 힘겨워했고,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을 이상하게 볼까 봐 망설였다. 훗날 아내가 직접 들려준 이야기였다. "그때는 모든 게 무서웠어. 내가 나인지도 모르겠고, 왜 이러는지도 모르겠고… 세상이 너무 크고, 나는 너무 작아진 것 같았어."
우울증이라는 것이 아이러니하게도 몸을 움직이는 것이 치료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하지만 아내는 점점 더 움츠러들었다. 집 밖의 모든 일은 자연스럽게 내 몫이 되었다. 아이가 아프면 병원에 데려갔다. 고열에 시달리는 아이를 안고 응급실로 뛰어간 날도 있었다. 장을 보러 갈 때도 아이를 유모차에 태워 마트로 향했다. 사람들은 그런 나를 볼 때면 이렇게 말했다.
"아이고, 아빠가 아이를 참 잘 돌보시네요."
"요즘 아빠들은 정말 대단해요."
사정을 모르는 이들의 덕담이었다. 나는 애써 어색한 미소를 짓고, 고개를 끄덕이며 대화를 피했다. 계산을 서둘러 마치고 자리를 떠났다. 그 말들이 나에겐 가슴에 돌처럼 내려앉았다. 칭찬처럼 들리는 그 말들이, 때로는 아내에 대한 비난처럼 느껴졌다.
그렇게도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겨울이 끝나가고 있었다. 긴긴 하루들이 지나가고, 마침내 봄이 찾아왔다. 따스한 햇살이 거실 창을 넘어 방 안까지 스며들었고, 바람에는 겨우내 감춰져 있던 생명의 기운이 실려 왔다. 커튼을 걷으면 작은 먼지들이 햇빛 속에서 춤을 췄다. 오랜만에 보는 밝은 빛이었다. 집 뒤편 산자락에도, 길가의 작은 틈새에도, 나무 가지 끝에도, 푸른 싹들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내밀었다. 세상이 다시 색을 찾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무렵 아내도 서서히 눈을 떴다.
"여보, 오늘은 기분이 좀 괜찮은 것 같아."
아내가 그렇게 말할 때, 우리는 좋아진 이유를 알지 못했다. 모든 게 예전과 같았다. 약은 여전히 먹고 있었고, 병원도 계속 다녔다. 상담도 받고 있었다. 달라진 것은 단 하나, 겨울이 끝났다는 사실 뿐이었다. 창밖의 계절이 바뀐 것처럼, 아내의 얼굴에도 봄이 찾아오고 있었다. 표정에 생기가 돌았고, 목소리에 온기가 실렸다. 그 순간 우리는 조심스럽게 기대를 품었다.
우리는 산책을 함께하기 시작했다. 한참 만의 바깥바람이었다. 공기는 차갑지 않았다. 오히려 부드럽고 따스했다. 아내는 눈을 감고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꽃 냄새가 희미하게 풍겼고,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렸다. 아내의 발걸음은 여전히 어색하고 조심스러웠지만, 분명한 변화였다. 우리는 집 앞 공원을 천천히 걸었다. 벤치에 앉아 아무 말 없이 햇빛을 쬐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리고 조금씩 아내는 아이를 다시 품에 안기 시작했다. 작은 손을 어루만지고, 분유를 타고, 기저귀를 갈아주며, 마치 처음부터 그랬던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아이는 엄마의 품속에서 더없이 편안한 얼굴을 지었다. 엄마의 냄새를 기억하고 있었는지, 아이는 그 품에서 깊이 잠들었다. 작은 손으로 아내의 옷깃을 꼭 쥐고, 편안한 숨소리를 내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조용히 안도했다. 가슴 한쪽이 따뜻해졌다. 역시 엄마는 엄마였다.
그럼에도 우리는 병원 방문을 멈추지 않았다. 2주에 한 번, 한 시간 넘는 거리를 달려 정신의학과를 찾았다. 그렇게 약을 받아와야 마음이 놓였다. 의사 선생님은 말했다. "많이 좋아지셨네요. 하지만 최소 1년은 꾸준히 복용하셔야 합니다. 임의로 끊으면 재발할 수 있어요."
하지만 봄이 끝나갈 무렵, 아내는 어느 날 내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여보, 이제 약은 안 먹어도 될 것 같아. 나, 다 나은 것 같아."
"그래도 계속 먹는 게 좋지 않을까? 의사 선생님도 적어도 1년은 필요하다고 하셨잖아."
나는 조심스럽게 만류했지만, 아내는 고개를 저었다. 아내의 눈빛은 확신에 차 있었다. "괜찮아. 이제 정말 괜찮아." 그리고 어느 순간 아내는 정말로 괜찮아 보였다. 우울이라는 그림자는 사라지고, 아내의 눈빛도 한결 맑아졌다. 웃음소리도 돌아왔다. 아이를 안고 노래를 불러주는 모습과 함께 저녁을 준비하고 아이와 놀아주는 모습까지, 모든 것이 평범한 일상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나는 6개월간의 육아휴직을 끝내고 회사로 복직했다.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간 우리는 이제 다시 평온할 것이라 믿었다. 아내는 활기를 되찾았고, 아이는 건강하게 자랐다. 우리는 다시 웃을 수 있었다.
하지만 계절은 돌고 돌아, 다시 겨울이 온다는 것을 그때는 미처 깨닫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