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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낀 고속도로

by 오분레터

그 시절, 주말이면 어김없이 안개 낀 고속도로를 달렸다. 거제에서 진주까지, 늘 처갓집으로 가는 길은 유난히 멀게만 느껴졌다. 달리는 차 안에서 아내의 숨소리가 조용히 들려왔다. 아내의 마음속에도 걷히지 않는 안개가 끼어있을 터였다.

아이는 아는지 모르는지 움직이는 차 안의 소음과 덜컹거리는 진동을 자장가 삼아 곧 잠이 들곤 했다. 처갓집으로 향하는 주말 여정은 우리의 변함없는 의식과도 같았다. 우울증이 찾아오기 전이나 후나, 주말이면 우리는 이 길을 항상 달렸다.

고속도로를 달릴 때마다 나는 생각했다. 저 많은 차들 속에서 우리와 같은 마음으로 달리는 사람들이 또 얼마나 될까. 각자의 짐을 지고 어딘가로 향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저마다의 겨울이 있을 것이었다.

아내의 고향은 경상남도 진주다. 그곳에는 아내의 추억이 깃든 골목길과, 어린 시절의 행복한 기억들이 살아 숨 쉰다. 어쩌면 이 친숙한 풍경들이 아내의 잃어버린 미소를 되찾아줄지도 모른다는 작은 희망을 안고 꾸준히 우리는 진주로 향했다. 하지만 매번 별다른 변화 없이 돌아오는 길 위에서 그 희망은 조금씩 빛이 바래갔다. 어느 날, 차 안에서 아내가 불현듯 말을 꺼냈다.

"여보, 나... 죽고 싶어."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말이었다. 핸들을 잡은 내 손이 덜덜 떨려왔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평소라면 한 시간 반이면 충분할 거리가 그날따라 백 년은 걸리는 것만 같았다. 그 순간 나는 차를 갓길에 세우고 싶었다. 아내를 꼭 안고 "그런 말 하지 마"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아내의 고통을 더 키울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대신 나는 라디오 볼륨을 조금 높였다. 오히려 큰 소리로 아내를 다그치기도 했다. 차 안의 무거운 침묵을 조금이라도 덜어내고 싶었다. 애써 아무렇지 않은 듯, 나오는 눈물을 훔치지 않으려 억지로 눈물을 참았다. 세상에 대한 원망이 하나도 없었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왜 우리에게만 이런 시련이 찾아오는지, 원망스러운 마음이 치밀어 올랐다. 순간 달리는 차를 그대로 어딘가로 돌진하고 싶다는 무서운 충동이 일었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내는 다시 깊은 침묵 속으로 빠져들었다.

장모님이 돌아가시고, 아들과 딸을 모두 출가시킨 장인어른은 홀로 지내고 계신다. 딸의 창백해진 얼굴을 보실 때마다 안타까움에 많은 이야기를 쏟아내셨다. 어린 시절 아내가 얼마나 밝고 활발했는지, 학교에서 상을 받아올 때마다 얼마나 자랑스러웠는지, 그런 이야기들을 반복해서 들려주셨다. 하지만 아내는 그저 멍하니 먼 곳만을 응시했다. 듣고 있었지만 들리지 않았다. 마치 깊은 우물 속에 잠겨있는 것처럼, 세상의 모든 소리가 아내에게는 아득하게 들리는 듯했다.

겨울에 찾아간 처갓집은 언제나 추웠다. 겨울임에도 습한 냄새가 집안 가득 퍼져 있었고, 빛이 들지 않는 거실과 방은 늘 어두컴컴했다. 아버님은 외손자를 보시며 그나마 밝은 표정을 지으셨지만, 딸을 바라보실 때의 그 안타까운 눈빛을 나는 잊을 수 없다.

저녁 식사 자리, 장인어른은 "딸..." 말씀하시다 목이 메어 더는 말을 잇지 못하셨다. 그 순간 아버님의 눈가에 살짝 맺힌 눈물을 나는 보았다. 나는 가슴 한편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느꼈다. 늘 꼿꼿하시던 아버님의 어깨가 처음으로 작아 보였다. 그날 밤, 아버님은 나를 조용히 부르셨다. 마당 한편에서 담배를 피우시며 말씀하셨다.

"최 서방, 자네가 많이 힘든 거 아네. 그래도 어쩌겠나..."

아버님의 목소리에는 무력감이 묻어 있었다. 나는 그저 "아버님, 시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과연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있을까. 나 또한 조금씩 지쳐가고 있었다.

처남네도 아들 둘과 함께 부산 명지에서 자주 올라왔다. 처가 식구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우리 가족에게 도움이 되고자 노력했다. 좋다는 병원 소개에, 각종 민간요법까지. 누군가는 운동을 권했고, 누군가는 여행을 제안했다. 하지만 수많은 병원을 전전하며 우리의 희망은 이미 바닥을 향해 가고 있었다.

그렇게 한겨울이 지나가던 어느 날, 장인어른께서 조심스레 한 병원을 추천해 주셨다. 진주 구시가지에 있는 오래된 병원이었다. 그곳에는 나이 지긋한 의사 선생님이 계셨다. 말투는 조용했고, 눈빛은 부드러웠다. 그분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아내의 굳게 닫혔던 마음이 조금은 살짝 열리는 걸 느꼈다.

"우울증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병입니다. 부끄러워할 필요도, 자책할 필요도 없어요."

선생님의 그 말에, 아내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작은 움직임이 나에게는 기적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아내가 진정으로 듣고 싶어 했던 말인지도 몰랐다. 그 순간 거의 잊고 지냈던 '희망'이라는 단어가 다시 떠올랐다.

새로운 처방약을 들고 병원 문을 나설 때, 우리는 조용히 그리고 작게 희망의 씨앗 하나를 심었다. 3월이었다. 봄바람이 불고 있었고, 병원 앞 가로수에는 새순이 막 돋아나고 있었다.

아내는 그 새순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바람에 흔들리는 작은 잎사귀를 조용히 응시하던 그 눈빛이, 어쩐지 낯설지 않았다. 나는 문득 생각했다. '아내의 마음속에도, 저렇게 작고 여린 새순 하나쯤은 돋아나고 있는 게 아닐까.'

물론 갈 길은 아직 멀었다. 밤하늘의 별처럼 까마득하고, 지금은 닿을 수 없을 것만 같은 거리였다. '더 이상 뭘 어떻게 해야 하지…' 그 물음 앞에 설 때마다 나는 그저,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더 따뜻하기를 바랐다.

마치 겨울 끝자락에서 봄을 기다리는 매화나무처럼. 온기를 기다리고, 햇살을 기다리며 그저 묵묵히, 다정히 아내 곁에 머물렀다. 그리고 나는 매일 밤, 아내의 마음속에도 봄이 찾아오기를 두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으고, 조용히 속삭였다.

"부디, 따듯한 봄이 와주세요. 이제 아내의 마음에도, 따뜻한 햇살이 비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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