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중순 치고는 유난히 따뜻한 날씨였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따듯한 봄을 기다리며 밝고 활기차 보였다. 오직 아내만이 긴 어둠 속에 있다는 걸 더욱 선명하게 깨닫게 되는 그런 날들이 계속되었다.
아내의 우울증은 겨울을 닮아 있었다. 차가운 바람이 불면 아내의 마음도 얼어붙었고, 잠시 햇볕이 내리쬐면 순간적으로 녹아내렸다. 삼한사온처럼, 아내는 조금 나아지는가 싶다가도 다시 깊은 골짜기로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아내의 마음속 겨울은 좀처럼 끝나지 않았다.
사람들은 쉽게 말했다. "날씨가 좀 풀리면 기분도 좋아질 거야"라고. 하지만 우울증을 앓는 사람에게 햇볕은 때로 더 잔인하다. 세상이 밝을수록 자신만이 어둠 속에 갇혀 있다는 사실이 더욱 선명해지기 때문이다. 그 따뜻한 2월 아침, 나는 아내의 침대 옆에 조용히 앉아 등을 토닥였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손바닥으로 전해지는 아내의 체온을 느끼며 함께 있었다.
답답한 마음에 어느 날 아내에게 불쑥 말했다.
"우리 동남아로 몇 달 떠나볼까?"
따뜻한 햇살 아래 지내다 보면 조금이라도 숨을 돌릴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아내는 대답하지 않았다. 떠날 힘조차 없는 상태였다. 모든 삶의 의욕이 사라진, 가장 절망적인 의식의 끝에 있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우울증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말이 얼마나 공허한지 아내를 보며 알게 되었다. 아내에게는 마음먹을 마음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아내를 아무리 사랑해도, 아내의 마음속 겨울을 녹일 수 없다는 현실 앞에서 나는 또 한 번 무력감을 느꼈다.
아내의 상태가 심각해지자, 주변 사람들은 조언을 건네기 시작했다. 친구들과 친척들, 심지어 길에서 우연히 만난 지인들까지. 그들은 모두 선한 의도로 말했지만, 그 말들은 가시처럼 따끔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너무 나약해. 우리 때는 힘들어도 이를 악물고 살았는데 말이야."
"활동을 안 해서 그래. 운동 좀 하고 밖에 나가서 햇빛 쬐면 나아질 거야."
"그냥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돼. 마음먹기에 달렸다니까."
심지어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남편이 더 잘해주면 되는 거 아닌가? 아내가 우울한 건 뭔가 채워지지 않아서 그런 거잖아."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는 입술을 깨물어야 했다. 아내는 의지가 나약한 걸까? 내가 아내에게 부족한 남편이라서 아내가 우울한 걸까? 나의 사랑이 모자라서 아내가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걸까? 이성적으로는 아니라는 걸 알았지만, 그 말들은 내 마음 깊은 곳에 가시처럼 박혔다.
아내는 그런 말들을 들을 때마다 더욱 움츠러들었다. 자신이 나약한 사람이라는 생각, 노력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자책감, 주변 사람들에게 짐이 된다는 죄책감. 이 모든 감정들이 아내를 더 깊은 수렁으로 밀어 넣었다.
지금껏 상담을 받았던 의사들 또한 비슷한 말을 했다. 기분을 바꾸려면 몸을 움직이고, 햇볕을 쬐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일상 속 변화'가 필요하다고. 하지만 아내는 침대에서 일어날 힘조차 없었다.
우울증은 뇌의 신경전달물질 불균형에서 오는 질병이다. 당뇨병 환자에게 "의지로 인슐린을 만들어내라"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심장병 환자에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심장이 좋아진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없다. 그런데 왜 우울증 환자에게는 "마음먹기에 달렸다"라고 말하는 걸까?
답답한 나는 우울증 관련 정보들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무엇이든 해보고 싶었다. 인지행동치료, 명상, 요가, 아로마테라피. 효과가 있다는 것은 무엇이든 시도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내는 여전히 침대에 누워 있었고, 나의 노력은 공허하게 느껴졌다. 내가 아무리 공부하고 노력해도, 아내의 고통을 대신할 수는 없었다
그런 날들이 계속되면서 나 또한 하루하루 지쳐갔다. 아내를 돌보는 것은 결승점 없는 마라톤과 같았다. 단거리 달리기라면 얼마든지 전력질주할 수 있겠지만,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긴 레이스는 나의 체력과 정신력을 조금씩 갉아먹었다.
육아휴직 기간 동안 나의 하루는 아내를 깨우는 일부터 시작되었다. 우울증 약을 챙겨주고, 아침을 준비하고, 씻도록 독려했다. 하지만 아내는 대부분 아무것도 해내지 못했다. 그저 눈을 뜬 채로 천장을 바라볼 뿐이었다.
아내의 그런 모습에 때로는 화가 났고, 때로는 절망했다. 그런 나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아내를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아내의 아픔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내 모습이 이해되지 않는 순간들도 많았다.
밤마다 나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내가 과연 제대로 하고 있는 건가? 내 사랑이 충분한 건가? 아니면 정말 남들 말처럼 내가 뭔가 잘못하고 있는 걸까? 이런 질문들이 끝없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어느 날 밤, 나는 문득 깨달았다. 그동안 나는 아내를 '고쳐야 할 대상'으로 보고 있었다. 매일 아내를 일으켜 세우려 애쓰고, 무언가를 시키려 하고, 변화를 강요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내에게 필요한 건 치료자가 아니라 동행자였다. 아픔을 함께 견뎌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 사람이 바로 나여야만 했다.
병원 대기실에서 우연히 본 포스터에 이런 문구가 있었다. "우울증은 혼자 견디는 게 아닙니다. 함께 견디는 것입니다." 그 짧은 문장이 내 가슴에 박혔다.
그 후로 나는 조금씩 변하기 위해 노력했다. 아내를 깨우려 애쓰는 대신, 아내가 일어날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밥을 먹이려 애쓰는 대신, 아내가 먹고 싶어 할 때까지 곁에 있어주었다. 말을 시키려 애쓰는 대신, 침묵 속에서도 함께 있어주었다. 무언가를 '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저 '함께 있어주는 것'.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아내에게 변화는 천천히 찾아왔다. 극적인 순간은 없었다. 어느 날 갑자기 아내가 벌떡 일어나 "나 다 나았어!"라고 외치지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아주 작은 변화들이 조금씩 쌓여갔다. 어느 날 아내는 커튼을 조금 열었다. 그 순간 햇빛이 방 안으로 스며들었다. 그게 전부였지만, 나에게는 기적처럼 느껴졌다.
며칠 후 아내는 침대에서 일어나 거실로 나왔다. 소파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았다.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우울증은 절대 마법처럼 한 순간에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시간과 인내와 사랑이 있다면, 조금씩 나아질 수 있다. 어둠 속에서도 함께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면, 절망 속에서도 작은 희망의 빛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