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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섭이와의 이별

by lee nam Jan 31. 2025

      나이가 들수록 이별이 잦아진다. 사람과의 이별도 있지만, 마음속 감정과도 작별해야 할 순간이 온다. 그중에서도 가장 집요하게 따라다니는 녀석이 하나 있다. 바로 ‘섭섭이’다. 섭섭이는 늘 내 곁을 맴돌며 별일도 아닌데 괜스레 서운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누군가 연락이 뜸하면 “이젠 날 잊었구나” 하고 한숨짓게 만들고, 모임에서 내 이야기가 뒷전이 되면 “이제 나는 관심 밖이구나” 하고 기분이 상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제는 이 섭섭이와 이별할 때가 되었다.


       며칠 전, 바쁜 일상에 치인 아들이 “엄마, 요즘 정신이 없어서 전화도 못 드렸어요.”라고 했다. 그 순간 섭섭이가 내 귓가에 속삭였다. “부모에게 전화 한 통 못 할 만큼 바빠? 너도 부모 되면 이 기분 알 거야.” 순간 울컥했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 역시 젊었을 때는 바쁘다는 이유로 부모님께 소홀했던 적이 많았다. 되돌아보니 그때 부모님도 나처럼 서운했을까 싶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섭섭이는 슬그머니 물러서는 듯했다.


      얼마 전에는 친구들과 만나기로 한 날이었다. 나는 약속 장소에 먼저 도착해 있었지만, 친구들은 하나둘 늦기 시작했다. 10분, 20분이 지나자 섭섭이가 또 기웃거리며 말했다. “너를 우습게 보니까 늦는 거야. 젊었을 때 같았으면 안 그랬겠지?” 순간 서운한 기분이 들었지만, 이내 숨을 헐떡이며 도착한 친구들의 얼굴을 보니 피식 웃음이 났다. 다들 길을 헤매느라 늦은 것이었다. 역시나 섭섭이가 나를 공연히 부추긴 것이었다.


     이제는 알겠다. 섭섭이는 내가 만든 감정의 그림자일 뿐이라는 것을. 상대방의 작은 행동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혼자 서운해하는 일이 얼마나 부질없는지 깨닫게 되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삶을 살아가고 있고, 내가 기대하는 방식대로 반응하지 않는다고 해서 관계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내가 먼저 다가가고, 기다려 주고, 너그럽게 이해하는 것이 더 행복한 길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오늘, 섭섭이와의 이별을 선언한다. 대신 따뜻한 마음, 너그러운 미소, 그리고 유쾌한 농담으로 내 일상을 채울 것이다. 나이 들수록 섭섭함에 얽매이기보다, 가볍고 유쾌하게 살아가는 것이 더 멋진 일 아닐까? 이제부터 내 곁에는 섭섭이가 아니라, 웃음을 주는 유머 친구를 두기로 했다. 섭섭이야, 이제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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