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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로 서다.

by 커피마시는브라운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했다. 다행히도 유산의 기억은 깊은 가슴 속에 묻어졌고 아픔은 서서히 무뎌져 갔다. 몸도 마음도 점점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젠 요가를 하면서도 아이 생각은 점점 덜 하게 되었고 지인 가족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다니기도 하고 가끔씩은 영화를 보기도 했다.




같은 원장님과 2년 가까운 시간 운동을 함께 하다보니 이젠 운동이 재미가 없어졌다. 나는 주로 아이들이 학교에 간 오전 시간 동안 운동을 했는데 한 원장님이 모든 오전 수업을 다 하셨다. 원장님은 요가보다는 필라테스와 플라잉 요가로 시간표의 대부분을 채우셨다. 또한 요가 수업은 비트요가(음악에 맞춰 동작을 이어가는 요가)와 데이요가를 운영하셨는데 나는 비트요가를 2년이 넘게 들어서 동작들을 모두 다 알고 있었다. 데이요가도 난이도가 높지 않았다. 주로 초급자를 위한 요가 동작들 위주로 수업을 하셨다. 새로운 사람들이 계속해서 들어오는 요가원의 특성상 초급자를 위한 요가 수업을 하는 선생님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되었다. 하지만 요가를 배운지 2년이 넘어가는 나는 요가를 더 깊게 배우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원장님과는 2년이라는 시간동안 함께 운동하면서 나름 친분이 깊었다. 코로나 초기에 요가원이 2달 가까이 문을 닫는 동안 함께 운동을 할 수 있었던 평범했던 날들을 그리워하는 연락을 주고 받기도 했고 플라잉 요가를 하다 떨어졌을때는 선생님께서 진심으로 걱정을 해주시기도 했다. 또 임신과 유산의 과정을 지켜봐주시고 안타까움을 함께 나눠주신 것에 대한 감사함도 컸다. 하지만 이제는 내 개인적인 발전을 위해서 새로운 곳으로 떠날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장님께는 준비하는 공부가 있어서 잠시 쉬겠다고 정중하게 말씀드렸다.




나는 당분간 집에서 혼자 요가를 해보기로 했다.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요가를 하면서 안 되던 자세가 있는데 바로 시르사아사자(물구나무서기)였다. 물구나무서기 동작이 어려운 동작인거는 사실이지만 요가를 시작한지 6개월 정도만에 성공하시는 분들도 가끔 있었다. 물구나무 서기에는 코어힘과 균형이 모두 필요한데 나는 겁이 많아서인지 내 몸을 믿고 다리가 올라가지 않았었다.


물구나무 서기를 너무 하고 싶었던 나는 '나는 23년 물구나무서기에 성공했다.'라는 문구를 노트에 적기 시작했다. 그 전에는 요가원에서 1주일에 1번 할까말까 했던 물구나무 서기 자세였지만 노트에 매일 쓰기 시작하자 매일 물구나무 서기 연습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매일 적고 매일 연습을 하자 2년 동안 안되던 물구나무 서기를 2달이 안 되서 할 수 있게 되었다.


물구나무서기.jpg




매일매일 자기 자신에게 맞는 아사나들을 하다 보면 처음에는 꿈도 못 꾸던 아사나들이 자신도 모르게 어느 날부터 자연스럽게 가능해진다. 내가 비록 머리 서기를 하는데 일 년이나 걸렸지만 어쨌든 어느 날 서게 되었듯이.

신경숙 <요가 다녀왔습니다>




물구나무서기까지 성공하고 나자 목표를 잃은 나는 집에서 요가를 꾸준히 하지 않게 되었다. 요가매트를 펼쳐놓고 나면 왜 이렇게 해야할 집안일이 많이 보이는 건지...아무리 시선을 안 두려고 해도 자꾸만 눈에 밟혔다. 그래서 유튜브에서 요가 관련된 영상을 찾아서 보고 따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혼자 하다보니 조금만 힘든 동작이 나오면 요가를 멈추게 되었다. 나는 다시 나에게 맞는 요가수업을 찾아서 헬스장 GX프로그램, 주민센터 등을 방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요가 수업들은 내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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