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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by 커피마시는브라운 Jan 04. 2025


 해외 여행을 하면서 저가항공은 처음으로 이용해 보았다. 항공기 비용이 저렴하고 밤비행기를 타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때문에 선택한 티웨이였다. 새벽부터 일어나서 공항에 왔으니 아이들이 비행기를 타면 잠을 잘꺼라고 생각한 건 나의 착각이였다. 아이들은 이제 어린 아이가 아니였다. 아이들의 사전에 낮잠은 없었다. 티웨이는 기내에 티비가 없었다. 티비가 나오지 않으니 비행시간를 타자마자 아이들은 "심심해"를 외쳐댔다. 미리 비행기 안에서 볼만한 영상을 다운 받아왔어야 했는데 나의 잘못이였다. 4시간 40분의 비행 동안 우리는 할 일이 없었다. 이 지루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우리는 끝말잇기, 이야기 만들어내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이런 지루한 시간에 끝은 있었다. 우리 비행기는 약속된 시간에 세부공항에 도착했다. 연착되기로 유명한 티웨이였지만 이번에는 제 시간에 우리를 내려주었다. 


좌석도 좁고 앞에 티비도 없다좌석도 좁고 앞에 티비도 없다



 비행기를 벗어나는 순간 더위가 날 덥쳤다. 한국에서 출발할 때부터 입고 있던 기모로 된 바지와 티셔츠가 어색해졌다. 세부의 더운 날씨와 어울리지 않는 복장이였다. 우선 빨리 화장실을 찾아서 옷부터 갈아입어야 되었다. 아이들과 우리는 짐을 찾기 전 화장실로 향해서 여름 옷으로 갈아입었다. 시원한 옷으로 갈아입고 나니 좀 살 것 같았다. 그제야 나는 내가 필리핀에 왔음이 실감이 되었다. 우리는 짐을 찾아서 입국 심사대로 향했다. 심사원이 가족관계증명서를 달라고 해서 확인했다. 그가 ”아빠?“라고 한국말로 물어보았다. 난 순간 그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그러자 영어로 "Where is a dad?"라고 물어보았다. 난 "He is working in Korea."라고 대답했다. 그는 도장을 찍어주고 우리에게 가도 된다고 했다. 




 공항을 나서자 만남의 장소에는 많은 사람이 있었다. 다들 팻말을 들고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내가 그동안 찾아 보았던 어학원들 이름도 종종 눈에 띄었다. 나는 내가 예약한 어학원 팻말을 열심히 찾았다. 다행히 금방 발견할 수 있었다. 입국까지 정상적으로 잘하고 어학원 사람들을 잘 만나고 나니 온몸에 긴장이 풀렸다. 또 우리와 같은 어학원으로 가는 한국인 가족이 있어서 안심이 되었다. 

 그녀 가족과 우리는 어학원 직원의 안내를 받아 벤에 탑승했다.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필리핀 직원분과 운전기사분, 그녀의 가족, 우리는 어색함 속에서 차를 타고 15분 정도 갔다. 창밖으로 보이는 필리핀은 우리나라 60년대의 모습처럼 느껴졌다. 


세부 공항 앞 만남의 장소세부 공항 앞 만남의 장소



 직원은 우리가 머무를 호텔에 우리를 내려주고 체크인까지 기다리라고 했다. 체크인 시간까지는 1시간 남은 상황이였다. 호텔 로비에서 우리는 체크인 시간까지 기다리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 호텔 티비에서는 CNN이 방송되고 있었다. 제주항공 참사에 대한 소식이 나오고 있었다. 나는 그 뉴스를 보고 순간 할말을 잃었다. 과연 오늘 한국에서 벌어진 일인건지 믿어지지 않았다. 로비의 번잡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뉴스를 집중해서 보기 시작했다. 눈에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뉴스 속 현장은 참담한 그 자체였다. 꼬리 일부를 제외하고는 비행기의 형태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대체 이런 사고가 왜 일어난 것인가. 생각이 꼬리를 물기 시작했다. 어학연수에 대한 기대는 사라지고 슬픔이 나를 순식간에 덥쳤다. 이런 사고는 우리 모두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였다. 바로 오늘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였다. 소중한 가족과 예고없이 이별하는 기분을 내가 감히 이해할 수 있을까... 이렇게 갑작스러운 이별은 우리를 더 슬프게 만든다. 내가 그들에게 어떤 위로나 애도를 전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위로와 애도의 마음이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닿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리핀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들에 대해 애도하는 마음을 갖는 것 밖에는 없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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