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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헬로 세부 03화

해피뉴이어

by 커피마시는브라운

제주 항공 참사에 대한 뉴스를 찾아보면 한동안 슬퍼서 감정 조절이 잘 안되었다. 나는 핸드폰에 우연히 알고리즘으로 뜨는 소식들을 보고서도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그래서 관련 소식들을 일부러 찾아서 보지는 않기로 했다. 마음이 아파서 일상 생활이 어려웠기 때문이였다.




단조로운 이곳 생활은 곧 적응이 되었다. 우리는 평일 8시간의 수업 일정으로 막탄 뉴타운 거리를 벗어날 일이 없었다. 호텔과 학원을 오고가는 단조로운 일상에 나와 아이들 모두 이틀만에 적응을 할 수 있었다.




우리가 필리핀에 오고 나서 얼마 안 있어서 12월 31일이 다가왔다. 24년 12월의 마지막 날이였다. 평소 한국에서라면 31일 저녁에 가족들이 모여서 가족 회의 시간을 가졌을 것이다. 우리 가족 회의는 작년 31일에 세웠던 올 한해의 계획을 얼마나 지켰는지 발표하고 다가오는 25년 새해에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 각자 발표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그리고 밤 12시 제야의 종을 함께 보고 새해 인사를 나누고 잠을 자는 식으로 이루어진다. 올해 만약 한국에 있었다면 애도의 마음 속에서 무거운 새해를 맞이했을 것이다.




필리핀은 12월 31일에서 1월 1일로 넘어가는 새해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고 밤 12시가 넘어갈 때 여기저기에서 축제가 벌어진다. 우리가 머물고 있는 호텔도 역시 12월 31일 오전부터 분주했다. 직원들은 카운트다운을 알리는 큰 티비를 설치해놓았고 로비의 절반을 테이블로 채워놓았다. 천장에는 커다란 비닐 속에 빨갛고 하얀 풍선을 가득 채워놓았다. 풍선들은 언제든 아래로 떨어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신나는 음악이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마치 우리나라 크리스마스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며칠 동안 우울했던 기분이 축제같은 분위기 속에서 잠시 사라졌다. 가는 곳마다 만나는 사람들은 "Happy new year"인사를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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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로비.jpg



어학원에서는 '필리핀은 New Year에 맞추어 저녁에 폭죽놀이를 매우 많이 하는 관계로 다소 시끄러울 수 있으니 소음에 양해 부탁드립니다.'라는 안내를 보내오셨다. 이 안내를 보고 함께 수업을 하는 원어민 선생님께 여쭤보니 필리핀에서는 New Year에 맞추어서 12시 카운트다운을 하고 큰 소리를 낸다고 하셨다. 크게 목소리를 내거나 벽을 두드리거나 장난감 호른을 분다고 하셨다. 특히 곳곳에서 불꽃놀이를 한다고 했다. 필리핀의 이러한 전통은 한 해의 마지막날 안 좋은 기운을 커다란 소리와 함께 모두 날려보내고 새해에는 좋은 일만 다가오길 바라는 의미라고 하셨다. 필리핀 선생님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우리나라의 제야의 종소리 행사가 생각이 났다. 제야의 종소리 행사 역시 12월 31일에서 1월 1일로 넘어가는 밤 12시에 33번의 종을 타종한다. 이것은 절에서 아침 저녁으로 종을 108번 울리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33번의 종을 울리는 이유는 제석천(불교의 수호신)이 이끄는 하늘 세상인 도리천(33천)에 닿으려는 꿈을 담고 있으며, 나라의 태평과 국민의 편안함을 기원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우리 나라도 종을 치면서 안 좋은 기운을 날려보내고 새해에는 좋은 일들이 가득하길 바라는 의미를 담고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12월 31일 저녁 7시가 넘어가면서부터 동네는 축제 분위기였다. 길가에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들은 큰 소리로 호른을 불기도 했고 길가의 작은 공원에서 폭죽을 터뜨리는 경우도 있었다. 한국에서라면 우리 역시 가족회의를 하고 밤 12시를 기다렸다가 우리 가족끼리 새해 인사를 하고 잠이 들었을텐데 여기에서는 그럴 수가 없었다. 31일도 오후 8시까지 정상적으로 수업이 진행되었고 1월 1일 역시 오전 8시부터 수업이 진행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다음 날 수업을 위해서 밤 10시 30분쯤 잠이 들었다. 나는 자다가 갑자기 아주 큰 소리에 잠이 깨고 말았다. 호텔 창 밖을 바라보니 불꽃놀이를 하고 있었다. 잠이 깨긴 했지만 덕분에 나도 불꽃놀이를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끊임없이 터지는 불꽃놀이를 바라보면서 24년의 나쁜 기운을 보내고 25년의 새로운 기운을 받을 수 있었다. 한 밤 중임에도 불구하고 여기저기에서 사람들이 호른을 부는 소리가 들렸고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24년의 안 좋았던 일들은 모두 가고 25년에는 우리 모두에게 좋은 일이 가득하길 바래보았다.


"Happy New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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