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집안일로부터 해방된 이곳에서 나는 여유있는 생활을 보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전보다 생각도 많아지고 나에 대해서도 많이 돌아보게 된다. 이 곳에 오고나서 내가 당연하게 누리던 것들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그것들이 모두 감사한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1. 깨끗한 물
우리는 살아가면서 물의 소중함을 자주 잊어버린다. 우리 몸의 약 60%를 차지하는 물의 존재를 자꾸 잊어버린다. 이 곳에 오고나서 한국의 깨끗한 물이 너무 그리웠다. 이곳의 수돗물에는 석회질이 많이 섞여 있어서 수돗물을 먹으면 안 되었다. 심지어 양치도 생수를 구입해서 하는게 좋다고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한국에서 샤워필터기를 구입해 와서 호텔 샤워기에 설치했는데 3-4일 지나면 필터가 누렇게 변하는게 느껴졌다. 그리고 필터에 모래가 끼었다. 물 속에 모래가 있는 것이였다. 호텔도 상황이 이런데 일반 가정은 어떨지 상상이 안 갔다.
2. 깨끗한 화장실
필리핀은 대부분 물 공급이 원활하지 못하다. 그래서 화장실의 물이 제대로 내려가지 않는 경우가 많다. 20여년 전만해도 일부 한국의 관광지들, 고속도로 휴게소 역시 화장실이 더럽고 시설이 깨끗하지 못했다. 하지만 요즘은 거의 대부분의 장소들이 깨끗한 화장실을 가지고 있다. 이 곳에 와서 호텔과 어학원, 쇼핑몰 외에 화장실을 갈 경우 단단히 각오를 하고 가야했다. 오슬롭 비치에서 간 화장실은 최악이였다. 변기 뚜껑은 없고 모든 칸에 물이 내려가지 않아서 옆에 큰 통에서 바가지로 물을 떠서 변기물을 내려야 했다. 아이들은 기마자세로 화장실을 볼 수밖에 없었다.
3. 세탁기
이 곳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조금 충격을 받았다. 이 곳 대부분의 가정은 세탁기가 없다. 세탁기가 없으니 건조기는 당연히 없다. 이 곳에서 세탁기는 너무 비싼 물건이였다. 또한 전기 공급이 원활하지 않은 대부분의 가정에서 사용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선생님 말씀에 따르면 호텔이나 일부 아파트의 경우만 세탁기가 있다고 한다. 필리핀의 경우 각 가정 당 아이들이 많다. 아이들이 3명일 경우 빨래의 양이 어마하게 많을 것이다. 필리핀 엄마들의 가장 큰 일은 아이들의 옷을 빨래하는 일이라고 한다. 나는 살면서 세탁기가 없는 삶을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지금 당장 건조기만 없어도 해야 할 집안 일이 더 많아진다고 생각했는데 세탁기가 없다니. 그 많은 빨래를 직접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순간 머리가 어질했다.
4. 빠른 인터넷 환경
인터넷 접속이 조금만 느려도 우리는 잘 견디질 못한다. 빠른 인터넷 환경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곳의 인터넷 환경은 좋지 않다. 건물 내부로 조금만 들어가도 인터넷을 사용할 수 없는 곳들이 많다. 큰 거리는 대부분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지만 속도는 한국과 비교하면 너무 느리다. 갑자기 비가 많이 내리면 인터넷을 잠깐 동안 사용할 수 없다. 성격 급한 한국사람들은 이 곳의 인터넷 환경에 자주 화를 내곤 한다.
내가 이곳에서 감사한 것들은 대부분 한국에서라면 너무 당연해서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였다. 우리는 가끔 우리에게 소중한 것들의 존재를 잊어버리고 산다. 공기처럼 너무나 당연해서 소중함을 자꾸만 잊어버린다. 그것이 없어져야만 그것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이 곳에 와서 나는 한국에서의 평범한 나날들이 소중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