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수영을 다니면서 가장 힘든 점은 뭐였을까?
'새벽에 잠을 못자는 것? 피곤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나의 경우는 의외로 다른 곳에서 문제가 생겼다. 바로 주차장에서 차를 끌고 나가는 과정이 어려웠다. 처음에는 집에서 차로 10분, 걸어서 20분 거리에 있는 수영장을 차를 가지고 운전을 해서 다녔다. 하지만 이른 새벽 시간이다보니 가끔씩 주차장에서 차를 빼지 못해서 당황하는 날들이 늘어갔다. 내가 전에 살던 아파트는 20년 가까이 된 구축으로 지하주차장이 있었지만 주차공간이 협소했다. 그러다 보니 이중주차는 당연한 거였고 주차장 구석 곳곳에 차가 세워져있어서 차를 빼는게 어려웠다.
"신랑 자고 있는데 깨워서 미안. 나 차 빼는 것 좀 도와줘."
호기롭게 차는 뺐는데 코너 양쪽에 주차되어 있는 차들 틈 사이로 커브를 해서 내 차를 꺼낼 수가 없었다. 양 옆에 주차되어 있는 차를 긁을 것 같았다. 새벽부터 등에서 식은땀을 흘리며 낑낑대보다가 결국 자고 있는 신랑을 전화로 깨웠다. 잠에서 덜깬 얼굴을 하고 신랑은 운동복 차림으로 내려왔다. 날 보고 뭐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퉁명스러운 표정이 지금 상황이 불편하다는 사실을 말해주었다. 이런 일들이 여러 번 반복되었다. 나도 새벽 일찍 차를 빼기 편한 곳에 주차를 하려고 노력해보았지만 주차장 상황이 여의치 않을때가 많았다. 결국 나는 차를 집에 놓고 걸어서 수영장을 다니는 선택을 했다. 차를 빼느라 낑낑대지 않아도 되니 마음이 편해졌다. 오히려 걸어서 수영장을 가니 운동도 되고 가는 동안 잠도 깨서 수영장에 도착하면 정신도 맑아졌다.
얼마 안 되어서 겨울이 찾아왔다.
나는 추위를 많이 타는 사람이다. 더운 여름에도 꼭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한다. 몸에 닿는 찬물의 느낌이 싫기 때문이다. 그런 내가 수영을 좋아하게 되었으니 가끔 생각하면 신기하다. 겨울이 다가오면서 추워지는 날씨가 날 힘들게 하기 시작했다. 칡흙같이 어두운 새벽 집을 나서기 싫어지는 날들이 많아졌다. 추위는 날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새벽 수영이 끝나면 서둘러 집에 와서 아이들의 등교 준비를 도와야 했다. 그러다 보니 여유 있게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리고 집에 올 수가 없었다. 겨울이 되면 드라이기를 사용하려는 사람들도 많아져서 눈치 작전을 벌여야 했다. 운이 좋은 날은 드라이기를 사용하는 사람이 없어서 잠시라고 사용할 수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이 다 사용하고 있는 날은 젖은 머리로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젖은 머리가 얼어붙는 날도 있었다. 추위를 피하기 위해 나는 수건을 둘둘 말아서 머리를 감싸고 패딩에 붙어 있는 모자를 눌러쓰고 서둘러 집으로 왔다. 겨울철 감기는 달고 살게 되었다.
눈이 오는 날은 수영장을 가야할지 말아야 할지 더 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
'오늘 눈도 왔는데 가지말고 조금만 더 잘까?'
마음 속에서 두 마음이 다투었다. '오늘 하루만 조금 더 자자.' 내 마음 속 귀잖이가 말을 걸어왔다. '그래도 일어났으니 가는게 낫지 않겠어?' 내 마음 속 부지런이도 말을 걸어온다. 귀찮이의 말은 무시하라고. 기왕 일어났으니 수영을 가보는게 어떻겠냐고. 나는 부지런이의 손을 들어주었다. 주섬주섬 가방을 챙겨서 가족들이 모두 자고 있는 집을 나섰다. 아파트 현관을 나서자 제일 먼저 찬 공기가 나에게 인사했다. 밤 사이 내린 눈은 소복하게 쌓여있었고 어둠 속에서 빛나고 있었다. 아무도 밟지 않은 그 눈길을 한 걸음 한 걸음 걸으며 나는 어린 시절 눈을 좋아하던 어린 소녀로 잠시 돌아갔다. 눈길 위에 나의 발자국만이 선명하게 남는다. 오늘도 수영 나오길 잘했다. 오늘 나오지 않았으면 눈으로 뒤덮인 아름다운 새벽 풍경을 내가 언제 볼 수 있었을까? 차가운 바람으로 내 볼은 빨개지고 있었다. 볼과 함께 내 마음도 열정으로 빨개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