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성이네. “
“혹시 임신 테스트가 너무 일렀거나 부정확했을 수도 있어! 인터넷에서 찾아보니까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검사하는 게 제일 정확하대.”
서둘러 말하는 B의 목소리에서 아쉬움과 당황스러움이 묻어 나왔다.
“그래? B는 지금 어디 몸 안 좋은 곳이나 힘든 건 없어?”
“음… 조금 아랫배가 당기고 컨디션이 안 좋은 것 정도… 찾아보니까 임신초기증상에 이런 것도 있긴 하던데… 나도 잘 모르겠어 헷갈려. 평소처럼 생리가 올 것 같은 느낌은 아닌데.. “
“그래? 원래 평소에는 생리통도 엄청 심하잖아. 그런 느낌은 아닌가 보네?”
“응 아직 배가 아프려고 하지는 않은 것 같아. 내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한번 더 검사해 봐야지, 뭐. “
“그래 혹시 모르니까 오늘은 밥 먹고 무리하지 말고 푹 쉬어. 오늘 집안일은 내가 할게. “
“응… 그럼 먼저 씻을게. “
나는 B가 씻는 동안 오늘치 빨래를 해두고 옷들을 정리했다. B의 강력한 주장으로 우리는 매일매일 빨래를 했다. 그리고 아침에 서두르다가 어질러진 화장대를 정리하고 떨어진 머리카락을 치우고 있으니 B가 화장실에서 목욕을 마치고 나왔다.
“음.. 아무래도 아직 생리 올 것 같은 느낌은 아닌데 이상하다. 난 사실 임신한 줄 알았거든... “
“그래? 그런데…. B는 임신했을까 걱정 안 돼? 지금 하는 일도 그만해야 할지도 모르고 입덧 심해지면 밥도 잘 못 먹고 체형도 무너질 수 있잖아. 그런 거 걱정 많이 될 것 같은데… 몸도 많이 상할 수고 있고...”
“물론 걱정이 아예 안 되는 건 아닌데 오빠랑 같이면 괜찮을 것 같아. 오빠는 책임감도 있고 친절하니까 둘이 같이라면 어떻게든 잘 해내가고 좋은 가정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아. 그리고 나 아직 젊으니까 괜찮아! 출산해도 금방 건강 회복할 수 있어! 그리고 사실 내 친한 고등학교 친구들 중에서도 올해 출산한 친구들이 벌써 둘이나 있거든. 사실 그 친구들 아이 사진 보면서 나만 조금 뒤처지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하기도 했어. 근데 이번에 평소보다 생리도 늦어지고 평소랑 컨디션도 다르니까 혹시나 했지.. 나는 사실 걱정되는 것보단 너무 기대돼. 오빠는 어때? 솔직하게 말해줘요.”
“나는….”
B의 솔직한 생각은 처음 들었다. 그리고 내가 걱정하고 있는 것이 바보같이 느껴졌다.
B가 얼마만큼 나를 신뢰하고 있는지, 그리고 나와의 미래를 꿈꾸며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가 전해져 왔다.
“나는 솔직히 너무 걱정 돼. B가 임신하게 되면 일본에서 같이 살기 힘들 수도 있어. 도움받기 위해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지도 몰라. “
“응 그건 괜찮아. 오빠랑 평소에 일본어로만 대화하긴 하는데, 사실 나도 언제든 한국에 갈 수 있게, 한국에서 일할 수 있게 열심히 한국어 공부하고 있거든. 난 오빠랑 같이 있을 수 있으면 한국이든 일본이든 상관없어.”
“그리고 나 모아둔 돈도 많이 없어. 이제 겨우 조금씩 돈이 모여가고 있는데, 아이가 생기면 더 넓은 집으로 이사도 가야 하고 이것저것 비용도 많이 들겠지? B와 내 수입만으로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
“응, 우리 둘 다 성실히 일하고 있고 직업도 있잖아. 그리고 정부 지원금이나 보조금도 있더라구. 안 그래도 오늘 아침 내가 알아봤거든. 우리 사는 곳도 지원금이 꽤 잘 갖추어져 있는 동네더라구. 한국으로 가더라도 출산지원금 같은 거 잘 갖추어져있지 않아? 거기에 아직 우리 시간도 많잖아? 조금씩 절약하고 저축해 나가면 분명 괜찮을 거야. “
“난 내 앞가림도 잘 못하는데.. 내가 좋은 아빠, 좋은 남편이 될 수 있을까? “
“응 그건 걱정 마. 나는 내가 보는 눈은 있다고 믿어. 오빠는 분명 아주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어. 우리 같이 함께면 지금은 조금 힘들지라도 아주 행복한 가정을 만들 수 있을 거야. 나는 믿어.”
“…. 그리고 우리 아직 결혼도 안 했는데….”
“나는 오빠랑 결혼하고 싶어! 나랑 결혼해 줘! 진심이에요. 정말로 좋아해요. 앞으로도 쭉 같이 있고 싶어. 그리고 요즘 시대에 결혼식 안 올리고 같이 살다가 여유가 있을 때 식 올리는 부부도 정말 많고, 아이가 먼저 생기고 결혼하는 사람도 정말 많아. 전혀 이상한 거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나는.”
갑작스러운 B의 프러포즈에 나는 그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음성이 나온 테스트기를 보여주며 풀이 죽어있던 B의 눈이 지금은 반짝거리고 있었다.
여름의 덥고 습한 날씨가 사그라들 기세도 보이지 않는 날 오사카의 좁은 방. 장마는 겨우 끝을 고했지만 집 밖을 나가면 땀이 비 오는 것처럼 쏟아졌다.
방으로 돌아오자마자 땀을 씻어내지 않으면 찝찝함을 떨쳐내기 쉽지 않은 날이다.
밤이 깊어가며 조용해진 거리, 방안에는 조용하게 에어컨 돌아가는 소리만 들려왔다.
작은 1인용 침대에 서로 마주 보고 있는 남녀.
서로 국적도 다르고 살아온 환경, 언어도 다르지만 지금 바라보고 있는 것은 똑같았다.
함께하고 있는 미래.
초라하지만 솔직하면서 담백한 그녀의 프러포즈에 나는 웃으며 대답해 버렸다.
응 나도 잘 부탁해.
다음 날 아침
B를 꼭 껴안고 잠들었던 나는 그녀가 침대에 없다는 걸 깨닫고 천천히 침대에서 일어났다.
일어나서 주위를 둘러보니 화장실에 불이 켜져 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화장실 문은 조금 열려있는 상태였고 안에 B가 있었다.
“무슨 일이야? 괜찮아?”
화장실에 있던 B는 아무 말이 없었다. 화장실 안에서 그녀의 흐느끼고 있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걱정에 다시 한번 되물었다.
“괜찮아? 나 들어가도 봐도 돼? 무슨 일 있어?”
그때 B의 눈물로 뒤덮인 목소리가 천천히 들려왔다.
“오빠, 나 생리시작했어…..”
A군과 B양이 이혼하기까지 앞으로, 2년 6개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