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AI시대에도 한국에서 점(占)의 영향력은 더욱 커지는 모양새다. 신점, 타로, 사주 등 다양한 점술집이 전국에 약 1만5853개에 달하고, 해마다 그 수는 늘어나고 있다.
특히 요즘은 신내림을 받은 MZ세대 무당이 <나는 솔로> 같은 예능 프로그램에도 등장하며, 과거 무속인에 대한 거부감을 완화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점(占)이 강한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현대 대한민국 사회에서 점집이 늘어나는 가장 큰 이유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침체, 불안정한 일자리, 치열한 경쟁, 급변하는 국제 정세 등으로 인해 사람들은 자신의 미래에 대해 더욱 불안해하고 있다. 이러한 불안 속에서 점은 ‘확신’을 주는 역할을 한다.
어떤 선택이 더 나은지, 내가 가고 있는 길이 맞는지,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사람들은 누군가의 조언을 필요로 한다. 이러한 배경에서 자신의 운명을 ‘읽어주는’ 듯한 점술의 형태는 기존의 상담과는 차별화된 위안을 제공한다.
점집에서 들은 말이 일종의 '마음의 지지대'가 되어, 선택을 내리는 데 있어 힘을 실어주기도 한다.
점의 인기는 또한 기성 종교의 영향력이 약해지는 것과도 관련이 있다. 전통적으로 종교는 인간에게 삶의 방향성과 윤리적 기준을 제시하며, 힘든 시기에 위안을 주는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종교의 교세가 약화되면서, 사람들은 보다 직접적인 위로와 조언을 제공하는 무속이나 점술을 찾게 되었다.
기성 종교가 집단적 신앙과 공동체 중심의 신앙을 강조한다면, 점은 철저하게 개인 맞춤형으로 작동한다. 개인의 구체적인 고민을 중심으로 1:1 상담 방식으로 풀어간다.
점술이 제공하는 맞춤형 위안은 ‘나에게만 집중된’ 조언을 원하는 현대인들에게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점은 미신이 아니라, 심리적 안정과 위안을 제공하는 일종의 상담으로 자리 잡고 있는 듯하다. 현대의 점술가들은 단지 미래 예측이 아니라, 심리 상담가에 가까운 역할을 한다. 점집에서 오가는 대화 속에는 인간관계의 고민, 직장 문제, 사랑과 결혼에 대한 갈등 등이 담겨 있다.
무속인이든 타로 리더든, 그들은 듣고 공감해주며, 사람들의 고민에 대해 ‘길’을 제시한다. 이는 기존의 심리 상담과도 유사한 기능을 한다.
차이점이라면, 심리 상담은 과거의 경험과 내면을 탐색하는 반면, 점술은 ‘운명’이라는 요소를 활용해 보다 직관적인 해결책을 제시한다는 점이다.
점술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존재한다.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미신으로 여겨지기도 하고, 맹목적으로 의존하면 판단력을 흐리게 한다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 점은 한국 사회에서 오랜 기간 '문화'로 자리 잡아왔다. 조선시대에도 왕실에서 사주와 천문을 활용해 중요한 결정을 내렸고, 민간에서는 길흉을 점치는 것이 일상이었다.
오늘날에도 점은 미래 예측이라기 보다, 현대인의 불안과 고민을 해소하는 또 다른 방식으로 작용하고 있다. AI시대에도 점집이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늘어나고 있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점은 과거부터 이어져 온 문화적 전통이자, 현대인들의 심리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새로운 형태의 상담이기도 하다. 과연 미래에는 점이 어떤 방식으로 변화할지, 그리고 우리가 점을 바라보는 시선은 또 어떻게 달라질지 사뭇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