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여름휴가기
우리 집은 산중턱에 있는 고층아파트라 여름엔 비교적 시원한 편이다.
최근 몇 년 간은 피서를 가본 기억이 없다.
도서관이나 집에서 뒹굴다 저녁엔 외식하고 영화나 보는 게으른 휴가를 보내왔다.
후배 원장님들은 서울로 호캉스니 일본 북해도 여행이니 하며 숙소와 항공편을 미리 예약해 두었단다.
나도 소싯적엔 부지런히 그랬지만 나이가 드니 검색하고 예약하기가 마냥 귀찮다.
그런데 올 여름 휴가는 어쩌다 보니 놀토와 주말을 포함해 길게 잡혔다.
그 엄청난 여유를 마냥 흘려보낼 권태가 감당이 안 되지만 준비한 게 아무 것도 없다.
마님은 일단 무작정 떠나보잔다.
지난달 신형 싼타페를 뽑아서 기동력은 문제없고 아무려면 설마 머리 눕힐 데 없을까.
국도변에는 사랑이 넘치는 러브호텔이란 게 있고 이도저도 안 되면 주차장에서 차박을 하면 되지.
이런 무모한 피서 계획을 세워놓고 출발에 앞서 다시 한번 서로 자문해 보았다.
"궁궐 같은 집을 두고 이 땡볕에 무작정 고난의 행군을 나서는 이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낭만을 위하여!"
"오케이. 렛츠 고!"
그리하여 우리는 황금빛 태양 아래 도시의 소음과 빌딩 숲을 벗어나 푸른 바다를 향해 조용필의 노래처럼 여행을 떠났다.
목적지도 없이 7번 국도를 따라 동해안으로 무작정 달렸다.
어디든 갈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자유, 아무것도 안 할 자유가 있었다.
영덕 부근 장사해변을 지나니 6.25 전쟁 당시 낙동강 전선의 적 후방을 교란시킨 장사해안상륙작전의 추모비와 전쟁 유적지가 나타난다.
국군과 유엔군의 대규모 병력으로 맥아더 장군같은 전쟁 전문가가 지휘한 인천 작전에 비해 적을 교란시킬 목적으로 무모하게 투입된 학도병들의 꽃다운 희생에 깊은 묵념을 드렸다.
가다가 물회도 먹고 울진 성류굴의 시원한 냉기도 즐겼다.
호기심에 들른 과학체험관은 젊은 부모와 어린 자녀들을 위한 곳이지 우리 같은 중년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그냥 시원한 실내에서 쉬듯이 둘러보다 4D영화를 관람했다.
입체 안경을 쓰고 흔들리는 좌석이 잠수정이 되어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열대어들과 푸른 산호초의 평화로운 풍경이 눈앞에 잡힐 듯 펼쳐지고 바다거북이의 앳띤 나레이션이 아득히 들리는데...
"아! 잤다. "
마님의 소리에 놀라 눈을 떠보니 어느새 엔딩크레딧이 올라가고 있다.
아이들을 고려해 좌석의 움직임이 크지 않아 요람을 흔들 듯 극장이 우리를 재운 것이다.
다이나믹씨어터에서 어떻게 잘 수가 있냐는 주위의 시선이 느껴진다.
충분한 휴식을 취한 우리는 물 좋기로 유명한 불영계곡에서 캠핑장을 만났다.
의외로 남는 사이트가 있다길래 여기서 차박을 하기로 했다.
모든 차창을 열어 차량용 모기장을 설치하고 좌석을 평탄화한 뒤 자충 매트를 깔면 멋진 스위트룸이 완성된다.
나무 데크엔 그늘막을 치고 캠핑의자만 내놓으면 그만이다.
더운 물 나오는 샤워장에 화장실, 개수대까지 시설은 깨끗했지만 설거지가 필요가 없다.
저녁은 그저 컵라면과 맥주캔 꾸러미로 충분했으니까.
계곡도 캠핑장 전용이라 여유있게 몸을 담글 수 있다.
샤워할 때 했던 빨래는 타프줄에 걸어뒀더니 밤새 다 말라버려 일부러 많은 옷을 가져 올 필요가 없었다.
화려한 호텔 라운지 바는 아니지만 밤하늘의 별빛을 벗 삼아 아내랑 도란도란 맥주캔을 기울이는 행복 속에 휴가의 첫밤을 보냈다.
다음 날 배롱나무 꽃들이 흐드러진 불영사에서 부처님께 합장을 드리고, 동굴의 시원함을 알았기에 삼척에 있는 환선굴을 향했다.
굴 입구까지 걸어서 30분 거리를 모노레일을 타면 5분이면 도달할 수 있다는데 대기줄이 두 시간이란다.
까짓 30분 가볍게 걷자 했는데 평지가 아닌 엄청난 경사의 산길과 끝 모를 계단 지옥이다.
머리 위를 지나는 모노레일을 보니 더 덥다.
오르고 오르다 마침내 계단 끝 모퉁이를 도는 순간 거짓말 같은 일이 일어났다.
순식간에 계절이 확 달라진 거다.
거대한 환선굴 입구엔 냉장고문을 열고 섰는 듯 시원한 냉기가 느껴진다.
힘들게 걸어 올라온 사람만이 만끽할 수 있는 황홀감이다.
동굴 내부는 그야말로 별천지다.
크고 넓은 내부는 폭포도 있고 계곡물도 흐르는 천혜의 낙원이다.
여름에 대한민국에서 가장 시원한 곳이 아닐까 싶다.
내려와서는 막국수와 감자전을 먹고 내친김에 강릉까지 올라갔다.
큰 도시라 숙박하는덴 아무 문제가 없어 모텔 같은 호텔에 짐을 풀었다.
에어컨도 있고 침대도 있었지만 마님은 잠자리가 불편하다고 불만이다.
역시 모텔은 남녀가 잠시 쉬어가는 곳이지 자는 곳은 아닌가 보다.
빨래도 밤새 마르지 않아서 다음날 이동할 때 보닛 등 차 안 곳곳에 널어두었는데 문을 열면 팬티가 대롱거리는 것이 이것도 재미라고 서로 마주 보며 낄낄거렸다.
"이제 어디 갈까?"
"백제 무열왕릉을 보고 싶네."
"무령왕릉이겠지."
도산서원은 안창호가, 소수서원은 황희가 세웠다고 답하는 2프로 부족한 허당미를 지녔지만 평소 역사와 왕릉 답사에 관심이 많은 마님다운 결정이다.
그 길로 우리는 대관령을 넘었다.
동쪽 끝에서 서쪽 내륙으로 내달아야 하지만, 뭐 어때? 바쁠 일 있나?
대관령은 서늘한 안갯속에 기온은 22도. 일본 북해도 보다 더 시원할 것 같았다.
휴게소에서 아이스크림을 먹다가 감기들 것 같아 긴팔옷을 껴입어야 했다.
공주까지의 길은 멀어도 교대로 운전하면서 음악을 듣고 대화를 나누다 보니 지루한 줄 몰랐다.
고속도로 휴게소의 뻔한 음식들도 여행 중에는 뭐든 다 맛있다.
에어컨 빵빵한 박물관도 피서지로 손색이 없었다.
젊은 엄마가 유물 앞에서 아무 관심도 없는 어린 자녀에게 열심히 설명을 하는 모습을 보니 옛날 생각에 미소가 절로 난다.
그땐 우리도 그랬었는데..
고등학생 시절부터 미국에서 유학한 우리 딸들이 미국사만큼이나 한국사를 아는지 의문이다.
이제 장성해 곁을 떠났지만 우리는 젊은 날 아이들과 함께 왔던 장소들을 다시금 되짚으며 추억에 잠긴다.
세종시의 교과서박물관에서도 그랬다.
옛 교과서의 철수, 영희, 바둑이와 내 유년의 추억을 나누었다.
세종시에서는 진짜 호텔에서 편안히 자고 조식 뷔페를 먹었다.
세종시는 지방으로 수도 이전을 위해 조성한 도심 인프라가 잘 정비된 깔끔한 계획도시였다.
여러 부처의 건물들이 물결처럼 거대하게 하나로 연결된 정부청사 건물도 인상적이다.
수도권은 미어터지고 지방은 소멸된다는데 이렇게 잘 마련된 곳으로 왜 수도 이전을 안 하냐며 급기야 우리 부부는 국가의 균형 발전에까지 대화의 장을 넓혀간다.
전 국민의 휴가철이라 인파와 교통정체를 걱정했는데 다들 해외로 나갔는지 별로 불편하지 않았다.
계획도 예약도 없이 떠난 무모한 여행이지만 짜여진 틀에서 벗어나 자유와 해방감을 실컷 만끽한 진정한 휴가로 기억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