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움과 경이로운 체험이 글쓰기에 도움을 줍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매일의 일상이 틀에 박힌 단조로운 생활이 되어간다.
새로운 도전을 한다거나 계획이 확실치 않은 일에 무모하게 달려드는 일은 꺼리게 된다.
그러다 보니 크게 기복 없는 안정된 삶을 누리지만 신선한 충격과 놀라운 경이를 경험할 일이 점차 사라지는 것 같다.
무미건조한 삶에 시간도 더 빨리 흐른다.
그런데 철저한 사전 계획대로 움직이는 것은 요즘 젊은 사람들이 더 한 것 같다.
여행을 가더라도 인터넷으로 사전 검색을 하고 식당과 숙소 예약도 필수다.
사전 검색을 하면 실수할 일은 드물지만 이미 한번 걸러진 제한된 정보이고 그나마도 대개는 광고성 알고리즘이 많이 노출되어 신뢰성이 떨어진다.
유튜브에서 소개된 맛집은 이미 유명해져 버려 오픈런을 해야 하고 바가지와 불친절에 실망하는 경우가 많다.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큰 것이다.
반대로 기대치 않았는데 우연한 발견이 주는 기쁨이 있다.
20여 년 전 치과 인테리어 보수공사 때문에 보름간 치과를 휴진하게 된 적이 있었다.
모처럼의 기회라 주말이 아닌 한적한 평일에 가족여행을 갈 수 있었다.
아무런 계획도 예약도 없이 발길 닿는대로 유람하듯 떠난 여행이었다.
전남 보성 일대와 해남 땅끝마을을 들렸는데 해남에선 사전 예약을 안 했더니 들리는 여관마다 방이 없어 일대를 헤매느라 고생을 했다.
애들도 아직 어린데 가족 전체가 당장 묶을 숙소를 찾는 일이 큰일이었다.
마침 한 여관에서 우리의 딱한 사정을 보고 주인이 지내는 살림방을 내주었다.
전라도의 푸근한 인심을 경험했다.
다음 날 해남시내 평범한 식당에 들러 백반정식을 시켰는데 젓갈 종류만 열 가지가 넘고 각종 반찬이 상을 꽉 채운 한정식이 나온다.
역시 음식은 전라도라며 감탄이 절로 나왔다.
전남 보성에서는 우연히 길가의 이정표를 보고 들린 '대한다원'의 매력에 빠졌다.
그때만 해도 '대한다원'이 지금처럼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때였다.
주차장에서부터 울창한 삼나무 숲길이 우릴 맞아주었다.
평일이라 그런지 그 호젓한 길을 잎새사이로 비치는 싱그런 햇살을 우리 가족끼리만 독차지하며 걸을 수 있었다.
생전 처음 보는 광활한 녹차밭의 풍경에 감탄했고 다원에서는 주인장이 녹차를 우려내는 시범을 보이며 자세한 설명과 함께 차를 대접받았다.
우연이 주는 신선한 기쁨이었다.
그때의 좋았던 기억이 강렬해 최근에 그곳을 다시 찾았더니 이젠 유명 관광지가 되어버려 주차장엔 관광버스에서 사람들을 쏟아냈고 호젓했던 삼나무길은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다원도 예전의 소박했던 모습을 잃고 상품 홍보로 상업화되어있었다.
해남의 푸짐한 백반도 잊지 못해 다시 찾았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이젠 남도의 그런 푸짐한 식당은 어디에도 찾을 수가 없었다.
작년 여름휴가 때는 사전 계획도 예약도 없이 무작정 여행을 떠났다.
고생도 했지만 의외로 재미있고 자유를 만끽한 추억으로 남았다.
10년 전 프랑스를 여행했을 때는 패키지여행이 아니라 자유여행을 했었다.
비행 편과 숙소를 스스로 예약을 했고 일정도 직접 짰다.
관광은 당일 현지가이드를 이용했고 차를 렌트해서 직접 운전을 하고 다녔다.
요즘처럼 모바일 검색이 쉬울 때도 아니고 AI번역기도 없을 때라 겁도 났고 고생도 많이 했다.
하지만 코끼리 절벽으로 유명한 북부의 아름다운 노르망디 해안에서 남부의 프로방스 지역과 니스해변까지 프랑스 전역을 일주했다.
고속열차 떼제베도 탔고 파리에선 시내버스와 유람선도 탔다.
짧은 영어로 물어물어 가다 길을 잃기도 하고 집시들에게 소매치기를 당하기도 했다.
파리 시내는 길 찾는다고 얼마나 뺑뺑돌았는지 가이드를 할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렇게 고생했던 기억이 소중한 추억으로 고스란히 남아있다.
이처럼 계획된 여행보다 고생스럽지만 무모한 자유여행이 더 기억에 남는다.
의외성의 추억이고 고생조차 즐거운 경험인 거다.
인류의 위대한 발견도 다 그런 거다.
플레밍이 푸른곰팡이에서 항생제를 발견한 것도, 뉴튼이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것도 우연성 덕분이다.
나는 지겨운 공부도 예습이 복습보다는 나았다.
예습은 몰랐던 것, 처음 대하는 걸 학습하니 신기하기도 하고 흥미로울 수도 있지만, 복습은 이미 아는 걸 굳이 또 하려니 신선감도 없고 지루해서 고역이었다.
하지만 성적이 좋은 학생들은 복습에 더 비중을 둔다.
대개의 학생들은 한번 듣고 이해만 하면 안다고 착각을 한다.
하지만 이해한 내용을 복습이라는 재미없고 짜증 나는 반복적인 과정을 통해 암기를 해야만 시험을 잘 칠 수 있다.
그러니 암기하지 않고 적당히 2%부족하게 공부한 학생들은 시험만 보면 아는 걸 틀렸다며 안타까워 한다.
결국 인내력과 지구력이 성적을 좌우하는 열쇠이다.
복습은 시험 성적을 올리는데 좋은 방법이지만, 우연히 마주치는 신선한 경이감은 글쓰기 같은 창의적인 일에 번쩍이는 아이디어를 떠 올리게 하는데 도움이 된다.
그러므로 일상의 변화를 주기 위해 주말이면 여행이나 캠핑을 떠나기도 하고 평일에는 아침 등산이나 산책하는 코스를 자주 바꾸어보기도 한다.
늘상 다니는 길이지만 한 번도 같은 풍경은 없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 하늘의 구름과 나뭇잎의 색깔, 그리고 피는 꽃들도 시시각각 다르다.
특히나 요즘 같은 겨울철엔 태화강변엔 장관이 연출된다.
사진 예술가들이 망원렌즈를 끼고 촬영할 법한 예술사진이 그냥 눈앞에 펼쳐져 있다.
겨울 아침 강변은 물안개가 신비롭게 드리운 철새들의 천국이다.
백로나 왜가리 같은 황새들은 물론이고 청둥오리를 비롯한 각종 물새들이 떼를 지어 무리를 이룬다.
오리란 놈은 겨울의 그 찬 강물에서도 오리털 파카를 껴입어서인지 춥지도 않은가 보다.
오리 떼가 무리 지어 하늘로 비상하는 광경은 압도적인 명장면이다.
힘찬 날개짓과 부지런한 발놀림으로 수면을 힘차게 달리다가 마치 비행기가 활주로에서 이륙하듯 낮은 각도로 완만히 비상한다.
하늘에서 물 위로 내려앉을 때도 비행기가 착륙하듯 낮은 각도로 속도감 있게 내려앉는 장면이 가히 예술이다.
이제 한 달 후면 강변길은 화려한 벚꽃터널을 이룰 것이고 갈색으로 변한 관목들은 싱그런 녹음으로 변할 것이다.
오늘도 새로운 발견에 놀라는 기쁜 경험을 하기 위해 열심히 강변을 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