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타이밍과 용기인거야
나는 치과대학 재학 시절 걸핏하면 수업을 빼먹는 존재감 없는 학생이었다.
오랜만에 학교엘 갔더니 별로 친하지도 않던 키 큰 친구가 나더러 부학생장 해볼 생각 없냐고 물었다.
시켜주면 하지 하며 건성으로 대답하고는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이 친구는 나를 바이스로 해서 정말로 학생장 선거에 단독 출마해 무투표 당선되어 버렸다.
그래서 모처럼 또 학교엘 갔더니 내가 부학생장이라는 거다.
어이없지만 그렇게 졸지에 부학생장이 된 나는 키 큰 학생장과 콤비처럼 붙어 다니며 공부보다 학생회 일을 참 열심히도 하였다.
당시는 전국의 대학생들이 독재 정권을 규탄하며 격렬히 학생운동을 하던 시절이라 본교와 떨어져 있던 대학병원 캠퍼스에서도 연일 시위를 이어 나갔다.
환자들이 있는 대학병원에까지 백골단이 최루탄을 쏘며 난입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지만 마침내 노태우의 6.29 선언을 이끌어내는 승리를 쟁취하였다.
이처럼 아웃사이더였던 내가 학생회 활동을 통해 진취적 리더가 되었다.
학생 간부에게는 장학금도 나오는 등 이득이 많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수확은 예쁜 여자친구를 만나게 된 것이다.
당시 전국의 학생 간부들은 민주화 운동의 공동전선을 위해 거점별로 모여 교류하는 기회가 많았다.
1학년 과대표 후배의 중재로 가톨릭학생연합회와도 교류하는 자리를 마련하게 되었는데 학생장의 급한 사정으로 내가 대신 나가게 되었다.
후배와 모임에 나가 그녀를 처음 본 순간, 아! 나는 동지가 아니라 사랑에 눈을 떠 버렸고 눈부시게 아름다운 그녀의 모습에 곧바로 눈이 멀고 말았다.
사물놀이 동아리 활동을 하며 집회 때면 머리에 띠를 두르고 북을 친다는 여전사의 이미지는 천사 같은 그녀와는 너무도 어울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에게 나는 존재감이 없었던지 처음 인사한 후론 줄곧 겉돌기만 하다가 다음 만남의 기약도 없이 헤어지고 말았다.
그날 이후 그녀 앓이가 시작되면서 나의 밤은 산산조각나고 말았다.
이리저리 뒤척여 돌아누워봐도 사방엔 온통 그녀의 모습만 가득했다.
커피로 인해 그리움으로 인해 마침내 잠을 포기하고 주체할 수 없는 마음을 담아 편지지에 쏟아붓기 시작했다.
애절한 심정과 주워들은 시 구절들을 버무려 유치 찬란하게 적은 글이 편지지 열댓 장을 훌쩍 넘기고 예쁜 아트지에 정성스레 옮겨 봉투에 담으니 편지가 아니라 두툼한 소포가 되었다.
거절 당해 입을 상처가 두려웠지만 어디서 용기가 났는지 그러한 장문의 편지를 그 후로도 기약도 없이 보내고 또 보냈다.
나의 정성이 닿았는지 마침내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녀의 어머니께서 우연히 나의 편지를 보셨고, 이런 신실한 사람이면 만나보라고 등 떠밀어 내보내 주신 거였다.
그렇게 나는 천사와 사귀게 되었다.
하지만 부산 울산으로 떨어져 있고 보수적 가정교육 탓인지 6개월이 지나도록 손 잡는 것 이상의 진도가 나가지 못했다.
요즘 젊은이들이 보기엔 참 답답하겠지만 그때 우리는 그만큼 순진하고 느린 아날로그 세대였다.
3학년 2학기부터는 의사처럼 가운을 입고 병원에서 환자를 상대하는 이른바 원내생이 되었다.
임상실습 점수는 레지던트 수련의 선생님들이 좌지우지하는데 그중 악명 높기로 유명한 선생님이 어느 날 나를 조용히 좀 보자고 하였다.
자신의 대학원 논문 실험을 위해서 다량의 프라그(잇똥)가 필요한데 아무리 봐도 내가 적임자라는 거다.
가글제를 한 병 주면서 열흘 간만 이를 닦지 않고 있으면 자기가 프라그를 채취하러 오겠단다.
가글제가 잇몸병이나 입 냄새가 나지 않도록 세균의 활동을 억제하니까 염려하지 말라면서.
다른 학생들은 기겁을 하고 내 뺏다지만 당시 나로서는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닌 듯싶었다.
며칠씩 집에 안 들어가고 학생회실에서 독립군 생활을 하던 터라 며칠 이 안 닦는 것쯤이야 예사로웠다.
게다가 점수까지 신경 써 주겠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과연 일주일쯤 되니까 그리 불편한 건 없는데 입에 뭔가 오물오물 씹히는 게 있고 입안이 텁텁하기는 했다.
그날은 그녀와 데이트가 있는 날이었다.
밥과 술이 들어가고 로맨틱한 분위기가 무르익자 웬일로 그날은 다가가는 나를 피하지 않고 지그시 눈만 감고 있는 거였다.
아! 우리는 드디어 길고도 짜릿한 입맞춤을 하였다.
열정적인 키스 후 황홀한 듯 반쯤 뜬 눈으로 그녀는 뭔가를 오물오물 씹고 있었다.
좀 많이 미안했다.
무덤까지 갖고 가려한 비밀이지만 그때 그 천사가 다른 여자가 아닌 지금의 내 아내이기에 떳떳이 밝힐 수 있다.
지금도 키 큰 학생장 녀석은 그날 모임에 자기가 나갔어야 했다고 너스레를 떤다.
'사랑은 타이밍과 용기인 거야. 짜샤.'
지금까지 나의 아름답고도 다소 더러운 사랑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