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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소멸 시대

나도 할배가 되고 싶어

by 허용수

현재 우리나라는 저출산 문제가 심각하다.

젊은 사람들이 결혼을 안 하려고 하고 결혼을 해도 아이를 낳지 않으려 한다.

이런 심각한 문제는 멀리 갈 것도 없이 당장 우리 집만 봐도 알 수 있다.

1남 2녀의 장성한 자녀를 셋이나 두었지만 결혼은 큰 딸만 했고 결혼 3년 차인데 개만 한 마리 키우고 아직 아이가 없다.

하긴 미국에 사는 우리 딸이 아이를 낳는다 해도 미국 애기가 될 거라 한국 인구 증가엔 도움이 안 될 상황이다.




TV에서는 '돌싱포맨', '나 혼자 산다', '미운 우리 새끼' 등 혼자서도 얼마든지 문제없이 잘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 주는 프로그램들이 넘친다.

오히려 혼자라서 더 재미있고 자유롭다고 자랑하듯 미디어에서 더 부추기는 듯하다.

젊은 사람들의 입장이 이해도 되고 사정도 딱해 보인다.

우리 세대는 어려서는 부모의 뜻에 따르고 나이 들어서는 자식들에게 대접 못 받는 세대라고들 한다.

부모의 인생을 갈아 넣어 될 놈 안될 놈 가리지 않고 자식들을 죄다 대학에 보내다 보니 몸 쓰는 험한 일은 안 하려는 고학력 실업자들만 양산하게 되었다.

그 결과 자식들이 과거처럼 부모의 노후 대책이 안 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걸 보고 자란 지금의 젊은이들은 아이를 낳지 않는 게 노후 대책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평생 벌어도 아파트 한 채 가지기도 어려운 이 헬조선에서 아이까지 낳아 교육시킬 자신이 없는 것이다.

여자는 확실하게 경제적 자립된 남자만 보려 하고 남자는 대도시 집값이 얼마인데 이걸 남자가 다 해오는 건 밑지는 장사라 생각을 한다.

사람보다 조건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시대 것이다.

모든 조건이 맞는 남녀가 만나야 하니 이제 왕자는 공주하고만 결혼을 해야하고 신데렐라는 환상을 접어야만 한다.


그래서 썸만 타고 연애에 빠지길 두려워하는 것 같다.

그런 탓인지 젊은이들의 핫플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서울까지는 모르겠고 부산 서면의 엔씨 백화점이 없어졌다.

남천동 메가마트엔 아파트가 들어선다고 한다.

영화관들은 거의 고사 직전이다.

만남에서부터 애틋한 마음을 키우며 대화와 교감을 통해 서서히 서로를 알아가는 아름다운 설레임의 과정이 생략된다.

어두운 영화관에서 은근슬쩍 가벼운 스킨십의 두근거림도 없이 낯선 첫 만남에서부터 바로 원나잇이다.

이성은 그저 성욕의 대상으로만 인식될 뿐이니 만남과 헤어짐이 쉽고 데이트 폭력이 난무한다.

요즘 젊은이들이 부르는 유행가에는 시적 은유도 낭만도 없이 그저 모든 게 직설화법이다.




나같은 꼰대의 입장에선 현실과 앞날에 희망이 없다는 젊은 세대들의 주장이 이해가 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다분히 이기적인 변명으로도 들린다.

젊은 세대들은 그들의 어려움을 기성세대들이 '~라떼는 말이야'라며 고통 그자체로 인정하려하지 않는다고 불평한다.

이는 젊은 세대가 시대 공동체의 보편적 가치와 기준에 동의하지도 희생하지도 않겠다는 뜻으로 자신들만의 어려움을 기성 세대의 잣대로 들이대지 말라는 이기적 발상 때문인듯 하다.

힘듦의 정도를 절대비교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꼰대들이 상대비교하려는 건 나이는 절대비교가 안 되기 때문이다.

백 번 양보한다 해도 기성세대에겐 없는 젊음이 있지 않은가.

젊은 세대들이 나이들어 꼰대가 되었을 때 그들의 젊은 후손들에게 똑같은 말을 할 것이다.

그러니 어느 세대든 자기가 닥친 시기가 가장 힘들다고 느끼기 마련이다.

여태껏 언제 한 번 경기가 좋았던 적이 있었나.

그럼에도 노력해서 지금의 경제 성장까지 이루어왔다.

지금 대한민국만큼 IT강국에 완벽한 치안과 첨단 도시 문화를 자랑하는 나라가 있을까.

이 어찌 아프리카의 내전국이나 현재 전쟁 중인 나라들에 비할 바인가.




30년 전 내가 새내기 치과의사가 되어 시골 공중보건의로 발령받았을 때였다.

당시 인근 도시의 중심가에 가장 잘 나가는 치과를 운영하고 있던 대학 선배님께 인사를 드리러 갔었다.

반기면서도 한편으론 딱하다는 듯 하신 말씀이 기억난다.

"허 선생, 내가 막차를 탄 것 같은데 나중에 개업할 자리나 있겠나. 뭐 먹고살래? 쯧쯧"

하지만 그 후 30여 년이 훨씬 지나도록 굶어 죽지 않고 여태껏 잘 살아왔다.

지금은 그때보다도 치과가 훨씬 많지만 지금 졸업하는 치과의사들에게 그런 사기 꺾는 얘기는 하고 싶지 않다.

다들 나보단 훨씬 돈도 많이 벌고 잘 살아갈 것이다.


영화나 소설에서는 조건이 맞지 않아도 사랑하는 것을 진정한 사랑이라며 동경하지만 실제에서는 조건부터 맞아야 사랑하는 것이 현실이다.

결혼이 한 몫 잡기 위해 수지타산 맞추는 장사여서 안 된다.

결혼은 완벽한 두 사람이 만나 더 나은 시너지를 얻기 위함이 아니라 부족한 사람들이 만나 벽한 사랑을 완성해가는 여정이다.

그러므로 자신을 위함이 아니라 타인을 위하는 마음으로 결혼을 해야 진정한 사랑을 할 수가 있다.

아이도 낳아 기르며 희생하는 부모가 되어봐야 책임감 있는 진정한 어른이 되는 것이다.


나도 요즘 나이가 들었는지 손주 사진을 프사에 올려놓고 자랑하는 동료 원장들이 부럽다.

결국 결론은 이거다.

나도 어서 할배가 되고 싶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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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