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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들 장가갈 수 있을까요?

등 긁어주며 함께 늙어가는 게 부부인데..

by 허용수

오늘도 어둠 속에서 문득 잠을 깨고 보니 새벽 두시 반.

아직 한밤중이다.

아내는 옆에 없다.

또 한발 늦었다.

아내는 거실 소파에서 잔다.

분명 안방 침대에서 같이 잠자리에 들었는데..

우리 부부의 침대는 시중에 판매하는 '킹사이즈'보다 훨씬 큰 '초울트라슈퍼킹사이즈'다.

아담한 우리 부부가 가로든 세로든 어떻게 자도 상관없을 크기다.

프레임은 주문 제작서 까치발을 해야 침대에 오를 수 있다.

요즘 같은 겨울철엔 보일러와 온수매트로 따뜻하게 방안 온도를 맞추고 공기청정기와 가습기를 틀어 최적의 수면 환경을 조성한다.

이불은 특급호텔에 있는 하얀 시트의 가벼운 오리털 이불이다.

이러한 쾌적한 조건에서 침대 곁에 있는 각자의 독서등을 켜고 우아하게 책을 읽다가 함께 잠이 드는 것이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깨지 않고 아침까지 달게 자 본 적이 없다.

아내도 잠 좀 푹 자봤으면 원이 없겠단다.

나이가 드니 이러한 사소한 바람조차 쉽지 않다.

나는 일단 더우면 못 잔다.

선선해야 잘 수 있다.

이불은 덮지 못하고 발로 감아야 한다.

온수매트는 반반씩 온도 설정을 달리하거나 아예 반을 끄고 잔다.

저놈의 공기청정기는 내가 숨만 쉬어도 지랄이다.

밤새 요란하게 웅웅거리는 게 지가 죽든 내가 죽든 결딴을 내야 할 판이다.


반면 아내는 추우면 못 잔다.

두꺼운 이불을 목까지 완전히 덮어야 잘 수 있다.

아내는 갱년기 증상으로 불면에 시달린다.

수면유도제를 복용하지만 서로의 수면 패턴이 달라 내가 이불을 칭칭 감고 그 넓은 침대를 종횡무진 누비며 코너로 몰아가니까 한밤중에 깨서는 쉽게 다시 잠을 청하지 못한다.

아내는 나의 잠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거실로 나가 소파에 눕는다.

TV를 무음으로 켜놓고 동물의 세계가 나오는 다큐멘터리 채널을 보며 잠을 청한다.

특히 바닷속 해양생물들을 보면 스르르 잠이 잘 온단다.

그래서인지 아내는 동물에 대한 상식이 상당하다.


나도 밤중에 깨면 거실로 나간다.

그러다 보니 부부간에 소파 쟁탈전이 벌어진다.

소파에는 이불과 1인용 전기매트가 늘 깔려있다.

하지만 아내는 매일 밤 내가 등을 긁어줘야만 잠이 든다.

그래서 비록 옛날 양반처럼 안방과 사랑방 나누듯 서로 다른 곳에서 자더라도 반드시 안방에서 같이 잠자리에 들어 재워줘야 한다.

이렇게 서로 등 긁어주며 함께 늙어가는 것이 부부인 거다.

특히 나이 든 남자에겐 아내가 마누라요, 친구요, 어머니요, 온 우주다.




큰딸은 시집갔고 연예인 지망생인 작은딸은 결혼을 안 하겠다지만 멋진 남자친구가 있다.

문제는 막내인 아들이다.

밤중에 잠을 설쳐 거실 소파에서 자노라면 가끔씩 아들이 화장실에 살그머니 들어가서 손빨래를 열심히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지금 20대 중반이니 한창때 나이 아니가.

3년만 지나면 내가 결혼했던 나이가 된다.

하지만 아들은 자폐성 발달장애인이.

아내에게 아들 결혼문제를 조심스레 꺼내 본 적이 있다.

아내는 단연코 결혼은 안 된다고 한다.

아들도 절대자인 엄마가 그렇게 인식시키니 당연히 그렇게 알고 기대도 안 하고 있다.

아내는 내가 밖에서 일한다고 자기가 아들 때문에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모를거라 한다.

장애인 아이 키우기가 비장애인 부모에게도 이렇게 힘이 드는데 장애인 부모가 장애인 아이라도 낳게 되면 어떻게 감당하겠 한다.


지체장애인은 정신은 멀쩡하니까 비장애인과 결혼하는 경우가 간혹 있다.

그리고 휠체어를 탄 사람과 시각 장애인이 서로의 눈이 되고 발이 되어 살아가듯 지체장애인들끼리의 결혼도 가능하다.

하지만 정신발달장애인이 어떻게 비장애인과 결혼을 할 수 있을 거며 발달장애인끼리 결혼을 해서 이 험한 세상에 어떻게 애 키우며 살아가겠나.

그러면서 당신은 발달장애인 며느리 볼 자신 있냐고 되묻는다.


아들은 남사친이든 여사친이든 행복학교에 같이 다니던 친구들 하고만 만나는 것 같다.

그들끼리는 서로 대화도 통하고 잘 어울린다.

하지만 비장애인과는 어울리는 건 못 봤다.

얼마 전 아들이 여사친과 통화하는 걸 엿들은 적이 있다.

행복학교 여자 후배가 만나자고 전화가 온 모양이다.

그런데 만날 약속장소를 정하는데 무려 한 시간 동안이나 통화를 하고 있다.

여자애는 자기가 만나자고 해 놓고는 거기는 너무 멀다, 저기는 커피값이 비싸다, 또 여기는 어째서 안된다 등등 했던 말을 또 하고 또 하는데 듣는 내가 열불이 터진다.

남에게 모진 말을 하지 못하는 아들이 강단을 내지 못하고 엉뚱한 소리를 계속 들어주면서 쩔쩔매고 있는 것이었다.

그걸 보니 이기적이지만 장애인 며느리 볼 자신이 없다.

외국에서 착한 여자를 데려와 결혼을 하고 아이 없이 부모 그늘아래 가까이서 살게 하면 어떨까 생각도 해봤는데 어림없는 일이란다.


지금은 부모가 있고 특히 제 엄마가 전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 든든한 울타리가 되지만 언젠가 부모가 떠나고 아들이 지금의 우리 나이가 되어 혼자 남으면 어떻게 될까.

아프고 외로울 때 서로 말동무도 하고 등 긁어 줄 인생의 동반자가 없을 아들의 노후가 걱정이 된다.

장애인 부모의 가장 큰 바람이 자식보다 단 하루만 더 사는 거라고 하지 않나.

발달장애인의 결혼문제는 과연 답이 없는 걸까.

장애인 복지관의 복지사 선생님들도 조심스럽게 결혼은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그 여자애의 엄마도 절대 결혼은 안 된다고 한다.

혹시 딸이 임신이라도 하게 될까 봐 철저히 단속을 한단다.

유일하게 우리 아들과는 만남을 허락하지만 귀가 시간을 엄수하는 등 항상 신경을 쓴다고 한다.

오늘도 한밤중에 화장실에서 빨래하는 아들을 보니 온 가슴이 다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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