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청의 시대

시끄러운 세상. 잃어버린 소리

by 허용수

또 어느 집이 이사를 오려나 보다.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내부 보호커버가 설치되어 있고 인테리어 안내문이 부착되어 있다.

우리 라인은 대형 평형이라 전세보다는 매매가 많다.

그래서 인테리어를 하면 간단히 도배만 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다 뜯어고치는 개조공사를 하기 일쑤다.

십여 년 전 우리가 이사를 올 당시는 전 주인이 엄청 부자였던지 최고급 재료로 럭셔리하게 집을 꾸며 놓아서 따로 인테리어를 할 필요가 없었다.

기존의 마루를 다 뜯어내 천연대리석으로 거실 바닥을 깔았고 벽체는 비싼 산호석으로 마감을 해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해 놓았다.

서재 방만 확장했고 거실과 안방 베란다는 그대로 둔 점도 마음에 들었다.

떼어내기 귀찮았던지 거실 중앙에 달려있는 화려한 샹들리에랑 대형 평면 TV, 시스템 에어컨까지 그대로 두고 갔으므로 그야말로 몸만 들어와 살면 되었다.

하지만 부잣집 물건은 부자에게나 어울리는 건지 우리에겐 불편한 점도 많았다.

수백 개의 유리구슬로 된 샹들리에의 먼지를 닦아내려다가 성격 버릴 뻔했다.

결국 심플하고 환한 LED등으로 교체해 버렸다.

천연대리석은 물기를 방치하면 그대로 스며들어 영구적인 얼룩을 남기는 등 관리하기가 까다로웠다.

찬 바닥 때문에 겨울에는 실내화를 신어야 했고 여름엔 돌이 데워져서 찜질방에 와 있는 느낌이었다.




왜 다들 멀쩡한 집을 그대로 두질 못하는지 모르겠다.

획일적인 아파트 구조에 자기만의 개성을 주고픈 마음은 알겠지만 대형 평형인데도 굳이 확장공사를 해서 빨래 널 베란다도 없 사는 건 이해가 안 된다.

이러한 공사는 수 억대의 공사비와 한 달 이상의 긴 공사기간이 든다.

그러니 본격적인 이사철인 봄부터 시작해서 겨울 한 철을 제외하곤 거의 연중 내내 어디선가 계속 뚝딱거리는 공사 소음이 그칠 날이 없다.

층간 소음으로 이웃 간에 칼부림도 하는 세상이 아닌가.

각종 도시의 소음 속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에게 가장 아늑해야 할 보금자리에서 마저 공사소음에 시달려야 하는 것이다.





수많은 소음 공해 속에 묻혀 살다 보니 익숙해져서 못 느끼고 있을 뿐 우리가 사는 세상은 너무나 시끄럽다.

아침의 맑은 공기에 몸과 마음을 정화하고자 오르는 등산로에서조차 뽕짝 음악을 흘리며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시원한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강변길에서도 카오디오 방불케 하는 요란한 음악소리 자전거에 움찔하게 된다.

그저 이어폰 쓰기가 귀찮아서 남을 배려하지 않는 이기적인 마음이 내는 소리다.

개조한 차량의 머플러에서 나오는 굉음과 한밤중 도심을 질주하는 오토바이 폭주족 소리,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사이렌 소리, 선거철마다 들리는 유세차량의 확성기 소리, 악다구니를 쓰는 도심의 집회 소리가 우리를 짜증 나게 한다.


도심을 떠난 캠핑장에서도 소음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촘촘히 붙어있는 캠핑사이트에서는 두런두런 옆 텐트의 말소리도 들리는데 왁자한 술판을 벌여 웃고 떠드는가 하면 캠핑장에까지 와서 언성을 높이며 집안싸움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동용 TV와 빔프로젝터까지 들고 와서 영화를 보고 큰 소리로 음악을 틀기에 조용히 쉬러 온 캠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그래서 요즘은 철저히 매너타임을 준수하게 하고, 진정한 캠퍼들은 차라리 눈 오는 겨울철에 캠핑을 할지언정 캠핑을 빙자한 행락객들이 몰리는 여름철 캠핑은 피한다.


시끄러운 중국인들을 욕하지만 술만 들어가면 우리도 만만치 않다.

소리로써 술과 밥을 먹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식당과 술집에서 떠드는 소리에 대화가 묻히지 않으려면 더욱더 고함을 질러 대화를 해야만 한다.

일본 여행을 갔을 때 술집에서 옆자리의 젊은 일본 친구들도 시끄럽기는 마찬가지였다.


도시의 팽창으로 고속도로 인터체인지와 톨게이트 부근 도시 외곽까지 아파트 들어서다 보니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량 타이어의 노면 마찰음과 바람을 가르는 풍절음은 상상을 초월한다.


나랑 점심을 함께 먹는 후배 원장님은 최근 난청이 와서 병원 치료를 받고 있다.

항공기 엔진 소리 같은 치과 기계음의 거슬리는 소리를 평생 듣다 보면 난청이 올 만도 하다.

성당 음악밴드 활동시절 지하연습실에서 테너색소폰 소리에 직격을 맞은 싱어 자매님이 한쪽 청력을 상실해 버린 일도 있었다.

이처럼 우리의 귀는 혹사당하고 있고 그런 탓인지 남의 소리에 귀 기울일 줄 모르고 자기의 목청이 커지고 있음에 점차 둔감해지고 있다.

가정에서, 사회에서, 정치권에서, 세대 간에 남의 말은 들리지 않고 다들 자기 말만 하려고 한다.

집단 난청의 시대다.




반면 정겹고 그리운 소리는 점점 잃어가고 있다.

가을밤을 수놓는 풀벌레 소리, 나뭇잎을 스치는 솔바람 소리, 처마 끝의 낙숫물 소리.

이런 자연의 소리는 조용히 귀를 기울여야 들을 수 있다.

어릴 적 동네마다 정겹게 울리던 예배당의 종소리도 이젠 들리지 않는다.

시끄럽다고 민원을 넣어 사라졌다고 는데 교회나 성당의 책임이 크다.

언젠가부터 직접 종을 치지 않고 편리하다고 확성기로 종소리를 틀어서 그렇단다.

유럽의 성당에서는 지금도 직접 종을 친다고 한다.

고즈넉한 산사에서 울리는 스님의 독경소리는 마음을 차분하게 해주는 청아한 소리이건만, 녹음을 하여 요란하게 확성기에서 울리는 기계적인 염불소리는 공해에 불과하다.

어릴 적 해 질 녘 동구밖에서 들리던 백구가 짖는 정겨운 소리는 무심한 주인이 집을 비운 사이 외로운 반려견이 짖어대는 앙칼진 소리와는 정서가 다르다.

라디오에서는 '밤을 잊은 그대에게'가 흐르고 무수한 파지를 만들며 그녀를 향한 마음을 정성스레 편지지에 담던 야심한 밤.

저 멀리 골목길 어귀에서 들리던 소리,

"찹쌀 떠~억, 메밀 무~욱" 때 그 소리가 그립다.




인간이 내는 소음 공해의 폐해는 인간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수십 수백 킬로 떨어진 곳의 초음파를 감지할 정도로 청력이 민감한 고래에게는 대양을 가로지르는 대형선박의 프로펠러 소리나 해양시추선이 해저 지질을 뚫고 수중폭파하는 소음이 치명적이라고 한다.

고래는 단지 바다의 덩치 큰 동물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고래의 배설물 속에 있는 높은 철분 함량을 플랑크톤에 공급해 새로운 생명체가 번성할 수 있게 하고 지구 탄소 순환에도 상당한 역할을 하는 등 생태계의 중요한 지표가 되고 있다.


밤에도 불야성인 도시에서는 쏟아지는 밤하늘의 별들을 더 이상 볼 수 없듯이, 째깍째깍 벽시계의 초침 소리는 방안이 적막해야 들을 수 있다.

중학생 시절, 이웃의 예쁜 대학생 누나집에 과외를 받으러 다다.

은은하게 좋은 향기가 나던 누나의 예쁜 방에선 벽시계의 초침소리만이 크게 들렸고, 누나를 기다리는 동안 내 대는 소리가 더 크게 들리던 그때 그 시절이 그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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