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불쏘시개

조용한 정치를 원합니다.

by 허용수

코로나로 답답하던 즈음부터 나는 주말이면 아내와 함께 종종 캠핑을 떠난다.

가을인가 싶다가도 기습적으로 한파가 덮치는 종잡을 수없는 계절이지만 자연 속에서 물소리 바람소리 들으며 불멍을 하다 보면 계절의 변화를 느끼며 행복의 절정에 있음을 만끽할 수 있다.

지금은 캠핑 고수는 아니라도 적어도 중수는 되겠기에 훨씬 여유롭게 캠핑을 즐기지만 초보 때는 화롯대에 장작불 피우기도 쉽지 않았다.

가스 토치로 아무리 장작에 불을 갖다 대 봐야 소리와 불꽃만 요란할 뿐 장작에 불이 옮겨 붙질 않는다.

처음에는 굵은 것보다 얇게 쪼개진 것이 불이 잘 붙고 바람이 통할 수 있게 장작 쌓기도 노하우가 있다.

강한 토치보다는 고체연료나 착화제 같은 작지만 은근하게 불꽃이 지속되는 불쏘시개가 있어야 한다.




내가 울산광역시 치과의사회의 회장을 역임했던 3년의 기간은 코로나의 시기와 정확히 일치한다.

회장이 되면 오랜 임원 경험으로 쌓은 노하우를 모두 쏟아부어 다양하고 유익한 사업들을 시행하려는 의욕으로 충만했었다.

하지만 임기를 시작하자마자 코로나 특별비상체제로 출발해야만 했다.

취임식도 전체 대의원들이 모이는 영광스러운 자리에서 못하고 그저 치과의사회 사무실에서 약식으로 초라하게 치러야 했다.

임원들과의 회의조차 한 곳에 모일 수가 없어 화상회의를 해야만 했다.

온 세상이 다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경험하던 시절이라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었고 어떠한 계획도 세울 수 없는 상황이었다.

새롭고 참신한 사업과 행사를 추진하기는커녕 기존에 해 오던 관행적인 사업마저 모두 축소하거나 취소해야만 했다.

하지만 야심차게 출범한 신임 집행부가 마냥 손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아무리 상황이 어렵다고 해도 해야 할 일을 반드시 해야 했다.

사업이 축소된 만큼 한시적으로 회비 인하를 단행하고 각종 방역 물품 지원 등 화려하지는 않아도 반드시 필요하고 긴급한 사업들을 조용하지만 신속히 시행하였다.

코로나가 진정되면서 우리의 임기도 끝이 났지만 코로나 집행부라는 오명보다는 코로나를 슬기롭게 잘 이겨낸 집행부로 기억되고 싶었다.

비록 자랑스럽게 드러낼 업적은 없어도 회원들을 향한 마음의 불씨를 항상 간직하며 불꽃처럼 화려하게 부활할 치과의사회에 은근하지만 결코 꺼지지 않는 불쏘시개가 되고자 하였다.




작년 12.3 계엄 사태 이후로 지금까지 우리나라 정치판은 숨 가쁜 행보를 이어왔다.

전직 대통령이 탄핵되어 구속되고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되었으나 현재도 재판은 진행 중이고 상황이 완전히 정리되지는 않았다.

이런 진행 과정 동안 우리 국민들은 거의 매일 종일토록 보수와 진보진영 간 정치 공방을 실시간으로 지켜보아야만 했다.

뿐만 아니라 양 진영을 대변하는 편향적인 정치 유튜브 방송들과 중심을 잃은 언론들이 생산하는 진짜 뉴스와 가짜 뉴스의 혼란 속에 갇혀버리고 말았다.

정치인들의 후안무치한 모습뿐만 아니라 그들과 연관된 별의별 무속인들과 청탁으로 얼룩진 종교계 인사들의 면모까지 지켜봐야 했고, 사법부의 정의마저 도마 위에 오르는 지경에 이르렀다.

급기야 국민들의 시위행렬도 보수와 진보로 나뉘었고, 삼삼오오로 모이는 자리마다 정치 얘기로 핏대를 올리며 피곤한 나날에 지쳐만 간다.


우리 동네 인근 치과원장들의 점심식사조에서도 한 명이 이탈하고야 말았다.

식사 후 대화 중 정치적 견해를 달리 한 논쟁 끝에 기어이 십 년 밥 친구가 나가버린 것이다.

뭐 대단한 정치적 신념이나 자기만의 논조가 있는 것도 아닌데 그저 유튜브를 맹신해 남의 말과 의견으로 논쟁하면서 토론했다고 착각한다.

그러다 논점을 벗어난 감정싸움으로 번지게 되고 상처받은 자존심을 만회하고자 분풀이성 토론으로 이어진다.

국민들이 너무 정치에 무관심해서도 문제지만, 우리 국민들처럼 너무 정치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일희일비하는 것도 문제인 것 같다.

인기 아이돌 그룹끼리 팬덤을 형성하여 경쟁 그룹을 상호 비방하는 과열된 팬 문화를 보는 것 같다.

계엄과 같은 중대 사안에 대해서는 국민들의 엄중한 심판이 있어야 하지만 정치인들끼리의 싸움에 우리는 좀 초탈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일반 대중들이 너무 정치인들의 발언이나 행동 하나하나마다 예민하게 반응을 하게 되면 그럴수록 그들은 더욱더 극단적인 언행으로 주의를 끌고 지지층을 이용려 한다.

속 시끄러운 정치공방은 정치인들끼리 지지고 볶든 그냥 내버려 두자.

정치가 우리의 직업도 아닌데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피력하거나 주변에 강요하지 말자.

부모 형제간에도 정치 얘기는 금물이다.

조용히 자신만이 스스로 판단하고 기다렸다가 선거 때 투표로써 보여주자.


정치인들도 제발 앞으로는 조용히 정치를 해주었으면 좋겠다.

고대 중국의 요순시대에는 나랏님이 누군지 몰라도 백성들이 태평성대를 누렸다고 하지 않나.

더 이상 TV에서 정치인들이 다투는 모습을 보지 않았으면 한다.

저들의 수준을 요란하게 드러내고 있는 자극적이고 유치한 현수막도 더 이상 보기 싫다.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 같은 신나는 소식들, 우리네 이웃들의 훈훈하고 정겨운 소식들로 넘쳤으면 좋겠다.

요란하게 군림하지 않고 희망의 불꽃을 지필 불쏘시개 같은 정치인들이 나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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