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의 우정을 함께한.
그와 헤어지고 1년 하고도 4개월이 흘렀다. 함께한 세월에 비하면 너무나 적은 기간이었지만 나름의 애도 기간을 거치고 있었다. 헤어지자마자 남자를 박아주겠다던 주변 친구들의 성원에 나는 거절을 표했다.
- 남자는 남자로 잊는 거야 이뇬아
이렇게 있을 순 없다며, 친구들은 주변에 쌈박한 남자가 어디 없나 자신의 인스타 팔로잉 목록을 뒤졌다. 또 자신의 남자친구들을 소환해 주변에 도움을 청하는 든든한 내 친구들이었다.
- 어어 오빠 이진이 소개해줄 괜찮은 남자 없어?
모두가 이렇게나 발 벗고 나선 데에는 이유가 있어 보였다. 그렇게라도 안 하면 내가 끝끝내 미쳐버릴 거 같아 보였나 보다.
나는 중학교 3학년, 그는 18살이었다. 그때부터 우린 친해졌고 함께 어울렸다. 내가 고등학교 1학년이 되어 새 학기를 맞이하던 때에 그는 나에게 화이트 데이 때 사탕을 주며, 고백 비스무리한걸 하려고 했다. 그러나 난 당시 하얗고 키 큰 남자들을 좋아하였기에. 그다지 키가 크지 않고 음악학교를 다녀 빨간 머리로 염색을 한, 만나면 과묵하지만 카톡에서만 말 많은 오빠에게 흥미는 없었다. 당시 순수하고 눈치 없었던 낭랑 17세였던 나는 사방으로 방방 뛰어다녔고, 별생각 없이 그와 가까워졌다, 멀어졌다를 반복하였다.
나중에 말하기를 내가 그에게 어장을 쳐, 3번이나 차버린 여우 같은 기지배라고 말하였다.
뭐 어쩌면 이제 와서 든 생각은 그에게 잡힐 듯 잡히지 않은 사람이니, 더욱 갈망하는 마음이 커졌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당시에 사춘기. 내 내면의 소용돌이를 감내하기도 바쁜 문학소녀였다. 책을 읽으며 눈물을 흘리고, 음악을 들으며 사색에 빠지기 바빴고, 이러한 감정을 손 글로 남기거나, 절친한 친구인 그에게 활자로 전송하기 바빴다. 가까워졌다가 멀어졌다를 반복했던 사람이니 나에 대해 어쩌면 가장 잘 아는 친구였다.
당시에 내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높은 티존에, 가로로 탁 트여있는 날카롭지만 잘생긴 아몬드 눈을 가졌고, 키는 크지 않지만 작지 않은 허우대를 가진 감수성 깊은 음악 하는 남자. 어딜 가면 날카롭지만 잘생긴 유명인은 다 닮았다는 소리를 듣는. 카페나 술집, 음식점 심지어 혼자 떠난 유니버셜 스튜디오에서도 번호를 한두 번 따이는. 간단히 말하자면 잘생긴 놈이었기에 곳곳에서 인기가 있었다. 그 오빠를 좋아하는 여성들은 간간이 보였으며, 그의 말로는 대학교 신입생 때 이상하게 누나들과 동기들에게 연락이 그렇게 왔다고 했다. 아무튼 교회에선 날 짝사랑한다고 소문이 난 오빠였지만, 매년 여자친구가 생겼다가 사라지는 그런 오빠였다. 그러나 나는 사카구치 캔타로 같은 하얗고, 키 크고, 무엇보다 청순한 남자가 이상형이었기에 그를 원하는 여성들의 수요에 대해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어쩌면 이런 무관심이 그에게 좋은 자극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나는 성인이 되었고, 대학교 1학년 새 학기를 맞이하자마자 그와 사귀게 되었다. 다음 해 6월 우리의 지독했던 사랑은 끝이 났다. 또 2년이 흐르고, 우린 서로가 아니면 안 되겠다며 다시 만나 4년이 조금 넘는 시간을 함께했다. 정확히 언제 만났냐? 라 묻는다면 중학교 3년이라고 해야 할지, 20살이라고 해야 할지, 23살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무튼 확실한 건 우리의 10년이라는 우정은 끝내 끝이 났다.
날 정말 가슴 아프게 했던 사람, 그러나 나 또한 그에게 썅년이었음을 고백한다.
먼저 헤어짐을 고한 건 그였다. 공무원 시험을 2번을 준비하면서 우린 점점 데이트다운 데이트를 하지 못했고, 그가 새로 시작한 인디 밴드의 홍대 클럽 공연들을 나는 한 번도 보러 가지 못했다. 독서실에서 유튜브로 그의 공연 영상을 보았고, 공무원 영어 단어를 외우면서 그의 연주를 들었다. 그의 연주에 삑사리가 나거나, 프론트맨의 목 상태가 좋지 않아 음 이탈이 난 것을 기억해 뒀다가 따라 하며 웃곤 했다. 그의 새로운 시작을 진심으로 기뻐했고, 이러다가 점점 잘돼서 라디오 스타에 나가면 어떡하냐는 설레발을 치기도 했다. 더 유명해지면 인스타에 있는 내 사진들을 다 내려도 괜찮다고 깔깔 웃기도 했다. 처음으로 팬들에게 사진도 찍어주고, 편지도 받아봤다며 즐거워하는 그를 보니 행복했다. 꿈을 향해 치열하게 살아가는, 나에게는 없는 순수한 그의 열정이 너무나 멋있었고 대견했다. 그렇게 우리는 같이 성장해서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새로운 밴드와 학교에 들어가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며 심각하게 불안해했다. 이 밴들 이끌 만큼, 이 학교에 들어올 만큼의 실력이 아닌 것 같다고, 다들 자신의 실력을 알고 떠날 거 같아 무섭다며 매일 밤 우는 소리를 했다. 그럴 때마다 별거 아니라고 생각의 전환을 하라는 말을 하며 그를 다독여주었고, 폭 안아주었다. 모두의 이목을 받으며 연주를 할 때 손에 땀이 잔뜩 나고, 가슴이 꽉 막혀 조인다는 말을 했다. 함께 나란히 걸을 때면 그는 자신보다 20cm나 아래에 있는 내 팔뚝에 매미처럼 달라붙어 자신을 지켜달라며 세상은 너무 차갑고, 무섭다고 혀 짧은 소리를 하였다.
-난 평생 이렇게 살래. 이진이 품에서. 그니까 이진이가 나 지켜줘야 해.
당연하지. 난 그를 먹여 살릴 생각이었다. 날 이렇게나 원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인생은 나쁘지 않으니. 많은 돈은 모르겠고. 나라도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는 것이 우선이었으며, 그와 함께할 미래를 책임지려는 마음으로 공무원이라는 직업군을 택했는지도 모르겠다. 또, 자신의 알몸을 그대로 보여주던 그가 대단했다. 특히나 나를 사랑하는 마음을 다 찢어 열어서 나에게 보여주었고, 널 이만큼이나 사랑하고 원하니 내 옆에 있어 주라는 식이었다. 당연하지. 우린 얼굴마저 똑 닮은, 누가 봐도 잘 어울리고 조화로운 예쁜 컵 세트 같았다. 모두가 우리 커플을 부러워하고 응원했다. 드디어 돌고 돌아 만났으니 결혼하겠네 하고 말이다.
그러한 표현과 다짐들이 무색하게. 우리가 헤어질 무렵의 여름이 왔다. 그는 날 만나지 못해 괴롭다고 매일 밤마다 울었다. 우리의 첫 번째 이별 후 2달밖에 만나지 않았던 얼굴도 기억 안 나는 전 남친을 자꾸 소환하며 내 속을 들들 볶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언제 철들래 하면서 소리쳤고, 공부만 하기도 힘들어 죽겠는데 너까지 왜 그러나며 나도 함께 울었다. 우린 함께 알 수 없는 절망으로, 구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렇다. 그는 그 무렵 병원에서 극심한 공황장애와 우울증을 앓고 있으니 약물치료를 받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는 공연과 합주가 끝날 때면 뒤풀이를 가는 것이 일상이었고, 거하게 술을 마셔 나에게 전화를 할 때면 이렇게 말했다.
-이진아 너처럼 멋있는 여자는 이 자리에 없다. 아무리 주변을 둘러봐도.. 이진이처럼 똑 부러지는 여자는 없어. 너처럼 예쁘고, 귀엽고, 완전 내 스타일인 여자는 없어. 그러니까. 그러니까.. 시험 붙어도 나버리면 안 돼..
- 넌 정말 완벽한 내 이상형이야.. 생긴 거, 목소리, 말투.. 전부 다. 물론 성격은 고약하지만. 근데 그것마저 내스타일이다?
- 나 어떡해? 이진이가 너무 좋아. 넌 참 좋겠다. 내가 너 존온나게 사랑하잖아.
- 나 이진이가 너무 보고 싶어서 괴로워.. 너무 힘들어 네가 좋아서. 그러니까 나 떠나지 마. 이진이가 날 떠난다면 죽어버릴지도 몰라.
맨 정신이든 술정신이든 날 꽈악 안으며, 마라탕을 와구와구 먹는 나를 빤히 바라보며, 해주던 이 말들이 그때든 지금이든 눈물짓게 한다. 단 한순간도 당연하게 생각한 적은 없다. 그러한 사랑과 표현을 상대의 손에 쥐어주기까지 얼마나 큰 용기와 마음이 필요한지 나는 안다. 살면서 용기가 없었기에 그 누구에게도 그러한 마음을 줘 본 적이 없었다. 그 사람에게도 그런 마음을 먼저 주진 못했다. 앞으로도 못하지 않을까 싶다.
집 앞에서 데이트를 하는 우리를 발견했다며, 나의 혈육은 부엌에서 마시던 물 잔을 내려놓고 말을 걸어왔다.
- 야 아까 롯백에서 도훈이랑 너 봄. 햄버거 먹더라? 도훈이는 한입 먹고, 너보고, 한입 먹고, 너보고 웃고 그러던데. 니는 코 박고 밥만 먹더라. 웃겨가지고. 나도 세영이한테 그렇겐 안 하는데. 암튼 잘 만나라. 도훈이 잘생겼드라.
왜 아는 척 안 하고 난리. 봤으면 계산이나 하고 가지 참내
물론 그가 완벽한 천사표 남자친구는 아니었다. 다툼이 있을 때 나에게 소리치기도 했고, 그렇게 공부해서 되겠냐고 지금 그럴 때냐고 나에게 호통을 치기도 했다. 꿈이 너무 없어 보인다며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그렇게 못되게 세상을 보지 말라고. 자존심을 툭툭 치는 말들도 했다.
- 그거 알아? 너 진짜 진짜 못됐어. 넌 니가 잘난 줄 알지? 니말은 맞고 내 말은 다 틀리잖아. 니 눈에 난 병신이잖아 그치? 시발 나만 개 병신이잖아..
- 찌르면 피 한 방울 안 나올 거 같은 씨이발 그 거지 같은 성격. 안 고치면 널 좋아해 줄 사람은 없어. 다 널 떠날 거야.. 시발..
개새끼.
혼자 취한 그와 싸우다가 언성이 높아졌고, 나는 집에 가겠다며 패딩을 들쳐 입었다. ‘그래 어서 나가’라며 내 어깨를 부드득 잡으면서 문 쪽으로 날 밀쳐냈다. 그의 집을 뛰쳐나가는 나를 향해, 내가 벗어둔 분홍색 땡땡이 수면 잠옷과 칫솔과 생리대, 내 흔적들을 다 문 밖으로 집어던졌다. 영하의 날씨의 겨울, 자정을 향해 가던 시간. 시발 모르겠고 무턱대고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이 시간에 집에 들어가면 엄마 아빠가 놀랄 텐데 어쩌지 하는 마음으로 택시 어플을 뒤적거렸고. 그는 패딩도 걸치지 않고 맨발에 슬리퍼와 반팔 잠옷 차림으로 날 찾으러 버스정류장으로 왔다. 내 손을 잡더니 가자.라는 말만을 했다. 나도 말 없이 그의 손을 잡았고, 우리는 다시 그의 집으로 향했다.
그 뒤로 술은 입에도 대지 않겠다며, 다시는 널 함부로 대하는 일은 없다며 나에게 지키지 못할 약속을 했다. 그러나 나 몰래 알딸딸하게 취해놓고, 술은 안 마셨다며 나에게 다 티 나는 거짓말을 했지만 크게 싸우기 싫어서 넘어가 주는 날도 많이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크리스마스이브 날이 되었고, 맥주 한 캔은 괜찮지 않냐며 엉덩이를 씰쭉쌜쭉하며 맥주 코너 앞에서 애교를 부렸다.
- 그래 박근혜도 이번에 크리스마스 특별 사면됐는데 네가 술을 못 마실게 뭐 있냐. 마시거라.
사실상 의미는 없었던 금주령을 풀어주었고, 우리는 편의점에서 먹어보고 싶었던 과자와 내가 좋아하는 홈런볼과 찰떡 아이스 그리고 그가 좋아하는 누가바를 사 들고 그 집으로 쫄래쫄래 들어갔다. 난 제로 사이다, 그는 맥주 2캔을 마시며 배달음식을 시켰고, 꽃보다 남자를 몰아보면서 크리스마스를 보냈다.
그와 헤어지고 1년 하고도 4개월이 흘렀다. 공부를 마무리하느라 남자 사귈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당장 남자를 꽂아주겠다던 친구들을 뒤로하였고, 공부에 전념했다. 시험이 끝나고는 살도 빼고, 못 읽었던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재봉틀도 배우고, 수영도 하고, 러닝도 했다. 그렇게 나만의 애도 기간을 가졌다. 공무원 시험을 포기하고 연애를 시작하기로 마음을 먹었고 썸, 소개팅, 번따 등등 남자들과의 에피소드가 적지 않게 축적되었다. 그들과 잘 되려다가 마음이 사그라드는 일들이 연속으로 발생하니, 서로를 뜨겁게 사랑해 주던 나의 청춘의 때가 그리워졌다.
새벽에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헤어지고 처음으로 카톡 프사며, 그의 인스타, 하다못해 댓글까지 박박 긁어서 염탐을 했다. 그는 인스타에서 나를 만날 때처럼 여자친구 사진으로 도배를 해놓진 않았지만, 지속적으로 그의 게시물에 댓글을 다는 여자 계정이 보였다. 그에게 여자친구가 생긴 것 같았다. 그 여자의 인스타를 들어가 봤고, 세세히 그와의 사진, 데이트, 추억을 기록해 둔 것을 발견했다. 말 그대로 찌질하게 염탐했다. 알 수 없는 감정이었다.
그의 여자는 밝고, 착하고, 섬세하고, 멋지고, 귀여웠다. 다행이었다. 얼굴나 스타일은 내가 더 나아서 다행이었다는 말은 아니다. (씨앙 이렇게라도 말하게 해주세요.) 그녀는 그와 어떻게 알게 됐는지 내가 익히 알고 있던 사람이었다. 결국, 그 여자와 사귀는구나. 한편으로는 마음이 아렸다. 이제 진짜 끝이라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했다. 나는 이별 후 새로운 사람과 연애 감정을 나눌 때마다 왜인지 모르는 죄책감이 생겼었다. 지금 이 사람과 사귄다면 다시는 그와 만날 수는 없겠구나 하고 말이다. 어쩌면 결혼을 할 나이인데, 나는 내 소중했던 안식처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겠구나 하고.
낯선 남자들이 자기들 멋대로 나와의 미래를 그릴 때, 난 그날 밤 울었다. 다시 너에게 돌아갈 수 없겠구나 하고, 그때의 우리와 더 영영 멀어지는 기분이었다. 다시 우리는 몸을 겹쳐 누워 꽃보다 남자를 보며 깔깔거릴 수 없구나. 코인 노래방에 가서 김장훈과 아유미 성대모사를 접신한 아기동자마냥 해낼 수 없구나. 말하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똑같은 신발과 옷을 입고 나와 데이트를 할 수 없겠구나. 다시는 외국인이 드글거리는 명동 한복판 호떡 트럭 앞에서 눈을 흘기며 싸울 수 없겠구나. 연세 옥수수빵을 먹으면서 맛있다며 방바닥에 앉아 엉덩이를 흔들 수 없겠구나. 손을 맞잡고 실없는 장난에 웃으며 어두운 홍대 뒷 골목을 걸을 수 없겠구나. 사람 많은 현대 백화점 정문 앞에 서서 말 싸움을 하다가 그냥 자기가 다 미안하다며, 나를 덥석 안아버리는 너와 다시는 만날 수 없겠구나. 무거운 너의 악기를 나눠 들어줄 수 없겠구나. 다시는, 다시는 보고 싶었다며 강남역 한복판에서 폴짝 달려 나에게 안겨 기대는 널 받칠 수 없겠구나. 하고 말이다.
한편으론 탈 많고, 말 많던 그 아이가 안식처를 찾은 것 같아서 안심이었다. 뜨거워서 불편했고, 너무 사랑해서 괴로웠던 기억은 우리 둘에게만 있으니 이제는 편안하고, 행복하고, 안정적이고 무엇보다 외롭지 않은 연애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더 크게 들었다. 좋은 사람을 만난 것 같아서, 정말 다행이었다. 그는 나에게 집과 같았는데 나는 그에게 편안한 집은 아니었던 것 같다.
늘 나보다 2년 빨리 살아온 그의 소용돌이를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이렇게 유난스럽게 불안해하며, 나와 결혼을 하고 싶어 하며, 정착하고 싶어 할까. 그러나 우리는 정착하기는커녕 부모님께 손을 벌리며 살고 있는 20대 중반과 후반의 철부지들이었다. 정확히 2년이 흘러 그의 나이가 되니 나도 알았다. 원래 20대 후반이 되면 나 빼고 모두가 잘살고 있는 것 같아서 불안하구나. 너무너무 불안해서 가끔은 숨이 가빠오기도 하는구나. 하고 말이다. 그런 그를 볼 때마다 안심하라며, 불안해하지 말고 조급함을 내려놓으라며 가르치기도 했다. 나의 조언들은 그저 경험해보지 못했기에 함부로 할 수 있는 조언이었다. 세상 물정 모르는 어쩌면 더 무모하고 의미 없는 조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제 정착할 곳을 찾는다. 자기는 그 남자와 다르다며, 몸과 마음이 건강하다고 자신하는 남자와도 잘될 뻔했다. 나보다 더 온실 속 화초처럼 자라온 남자와도 마주 앉아 밥도 먹어봤다. 돈 잘 벌고, 자신감 넘치는 남자와 결혼과 미래에 대한 얘기도 해봤고, 내가 만만해 보이는지 겉모습에 추근덕 대는 놈들도 있었다. 집에 외간 남자들의 쓸데없는 명함이 생겨나는 요즘이다. 술 한 방울 안 마시던 내가 남자와 술도 마실 줄 알게 되었고. 공주처럼 가만히 내숭 떨다가 후회도 해본다. 남들에게는 쉽게 찾아오는 사랑들이 나에겐 왜 이리 버겁고 어려운지. 또 왜 이렇게 시작하기가 싫은지. 왜 이렇게 겁에 먹혀 주저하게 되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제 나는 돌아갈 집이 없다. 따뜻하던 우리 집은 철거되어 무너졌고, 보일러 하나 뗄 수 없게 되었다. 이렇게 그 폐허는 뒤로하고 나는 정착할 곳을 찾아 떠날 것이다.
눈을 뜨자마자 엄마에게 말했다.
- 엄마 도훈이 여친생겼더라? 꽤 된 거 같아 1년 된 거 같아. 나랑 헤어지고 3-4개월 만에 사귄 거 같아.
- 어머 정말? 그래서 너 새벽까지 안 잤구나? 아우 그런 짓을 왜 해. 이제 그만 보내줘.
- 아니. 그냥. 우리 너무 청춘이었잖아. 암튼 괘씸해. 나 그때가 제일 힘들었는데. 걔 못 잊어서. 나 진짜 제일 힘들 때였는데.. 엄마 기억나? 나 걔한테 다시 만나자고 연락했잖아. 딱 그쯤 사귄 거 같더라. 그리고 그 뒤에 엄마 암 걸리고. 나 진짜 인생이 너무 힘들 때였는데. 걘 연애를 시작했더라. 이건 좀 배신감이야.
- 아휴 지도 당시에 힘드니까 만났겠지. 기댈 데가 필요하지. 우울증 때문에 힘든데. 난 그때 너무 잘 헤어졌다고 생각해. 고마워 걔한테, 너 놔줘서. 이제 그만. 도훈이 얘기 그만해. 나 싫어.
- 근데 좋은 사람 만난 것 같더라. 다행이야. 나도 이제 좋은 사람 만날 수 있을 거 같아.
- 그래? 멋지네. 당연하지. 넌 무조건이야.
Who would paint the sky green for you
Who would wait out in the rain for you
Who would paint the sky green for you
Who would wait out in the rain for you
< 검정치마 & crowd lu - Dream like me >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