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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으이구 Nov 23. 2024

내 혈육은 '억대 연봉 대기업 사원'이 된 일진짱.

사랑도 직업도 간지도. 모든 걸 다 잡은 그.

 3번의 공무원 시험을 낙방하고, 요즘 뭐 하고 지내냐는 지인들의 질문에 나는 솔직하게 말하였다.


- 결국 공무원 시험 떨어졌고, 취준 중이에요 (시발).


또 새롭게 관계를 시작하기 전, 나의 정체가 궁금해 질문을 해오는 남자들에게도. 솔직하게 말한다.


-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는데 잘 안 돼서, 취준하고 있어용.. 쉽지 않네용 (시발).


 소름 돋게도 그들의 첫 입에 나오는 일관된 말들이 있다. 잘 됐다고. 나를 위로를 하려는 건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잘됐다고 명쾌하게 말을 하는 그들. 공무원의 처우, 그렇게 시간을 쓰면서 되는 것이 과연 메리트가 있냐는 말.  그리고 연금은 그때 가서 얼마를 받을지 모르는 것이 아니냐고. 오히려 잘됐고, 괜찮다고. 말도 잘하고, 이미지가 좋은 이진씨는 어디든 금방 골라서 갈 것 같다는. 전혀 위로는 안되지만, 초면에 따듯한 말을 해주는 그들이다.     


 결혼을 염두에 두고 6년을 사귄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요즘 괜찮냐고, 잘 돼가는 남자는 있냐는 지인들의 질문에 나는 솔직하게 말한다.


- 일은 많았지만 별 소득은 없네. 이상한 날파리도 꼬여;;


 그 말을 들은 누군가는 날파리라도 꼬이는 게 어디냐며, 아직 죽지 않았다는 말을 하더이다. 여하튼 같은 교회를 다녔어서, 전 남자친구를 잘 아는 친구들도 사실 그보다 네가 아까웠다고, 헤어졌으니 말한다며 갑자기 솔직 고백을 해왔다. 너한테 잘해주는 게 보였지만 우리 모두 그의 성격을 잘 알지 않냐며 말이다. 그를 한번 본 우리 가족들도 그렇게 말했다. 애는 착해 보이는데 뭔가 모르게 자신감이 없어 보였고, 너를 책임질 깜냥은 없어 보였다고. 미안하지만 우울증을 앓고 있는 남자와 네가 결혼하는거 우리는 싫다고. 잘 끝냈다고.  또, 나의 절친한 친구들도 아픈 그와 평생을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쉬운 일 이 아닌 것 같다며, 지켜보는 우리도 너무나 슬펐지만 너를 보아선 잘 된 일인 것 같다고 했다.  

   

 내가 염원하던 일들 빠그라졌을 때, 모두가 차라리 잘 됐다며. 안된 게 더 좋았을 거라고 위로를 해준다. 과연 이 일들이 그대로 척척 아무 일이 없이 진행 됐다면 나는 불행했을까? 아니면 행복했을까. 열과 성을 다해 나는 나름 열심히 인생을 달려왔다. 4년제 대학을 졸업했고, 그곳에서 나름의 나쁘지 않은 성적을 거두었고 교수님들의 총애를 잠시 받으며, 잘하는 일을 찾은 것 같았다. 비스무리한 꿈을 이루기 위해 공무원 시험을 도전해봤고 실패했다. 잘하진 못했지만 나름의 공부를 통해, 문해력, 독해력, 고급 영어 단어들은 툭치면 나올 정도로 터득했다.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고조선, 위만조선, 삼국시대, 통일 신라, 조선, 조선중기, 조선 말기, 개항기, 현대사까지. 공무원 한국사 또한 키워드만 나오면 10초 만에 술술 번호를 골라버리는 정도의 실력을 컴컴한 독서실에서 눈물을 흘리며 만들어냈다.


 또 사랑도 미치게 했다. 열심히 사랑하고, 열심히 싸웠고. 방황하는 그를 붙잡아 주기도 했으며, 이리저리 히스테릭한 나를 그는 보듬어 주었다. 우리는 서로의 가족이 되었고, 그는 나의 아들, 나는 그의 딸, 그는 나의 오빠, 나는 그의 여동생, 그는 나의 남편, 나는 그의 아내가 되었다. 우리는 서로가 일용할 수 있는 따뜻한 집밥이었으며, 머리를 틀어 올리고, 빤쓰만 입고 까치집 머리를 한 채 먹어도 되는 그런 편안한 양식이었다.      


 나름 열심히는 살아왔는데 모든 게 다 어중간하고, 내가 원하는 지점까지 도달할 수 없는 나의 이 실황이 견딜 수는 있지만 많이 버거운 것이 사실이다. 모두가 다 이렇게 원하는 것들을 놓치고 살아가나 싶지만 그렇지 않아 보인다.


 당장 같은 모체를 나누고 나온 나의 3살 많은 남자 혈육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7년 사귄 여차친구와 올해 크리스마스이브에 혼인신청을 할 것이라며 프러포즈를 준비하고 있으며, 그리 길지 않은 취준생활을 지나 대기업에 합격했다.     

 

 그는 재수 끝에 경기권에 있는 공대를 들어갔다. 졸업과 동시에 대기업 입사 지원서를 넣었지만 그는 광탈을 하고, 차 안에서 펑펑 울며 엄마와 싸움을 하던 때가 기억에 남는다. 요즘이 가장 힘들다고,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며 못생기게 펑펑 울더이다. 당시 나와 관련 없는 일이겠거니 하고, 그가 청승맞게 우는 몰골을 쳐다보면 그가 민망해할 것을 알기에. 난 말없이 휴대폰만 바라보았다. 사실 그의 눈물이 웃겼으며, 나중에 놀려주겠다는 생각으로 고개를 떨구었다.


- 참 유난이다. 왜 또 심사가 뒤틀려 저 지랄을 떨까


하는 생각이 강력했지만 입을 합 다물었다.  

   

 그렇게 그는 3개월도 되지 않는 취준의 시간을 거쳐 당당히 대기업에 합격했다. 코로나 시국에 박 터지는 경쟁률을 뚫고 그는 자동차 회사에 붙어 버렸다는 것이다. 면허는 있지만 자동차도 못 몰고, 무슨 차가 어디 회사 차인지도 잘 모르던 그가 자동차 회사의 일원이 되었다는 것. 평범하리 평범한 우리 집엔 그의 업적이 큰 경사였다. 이놈 야무진건 알았어도 이렇게나 해내는 놈인지 모두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박근혜가 박정희 딸인지도 몰라 우리 식구를 기함하게 만들던 그였는데. 어디 가서 뉴스를 보거나, 시사 얘기가 나온다면 너는 입을 굳게 다물라는 나의 훈수를 그는 매우 달게 받았다.      


 사실 그는 학창 시절 이름을 좀 날리던 일진이었다. 사실 학구열이 치열하고, 유복한 동네에서 자랐기에 일진이라고 해서 다른 지역처럼 조폭과 범죄 조직에 연루되어있지는 않았다. 사실 우리 집은 사업이 망해서 전혀 유복과 여유에는 거리가 멀었다. 우리 엄마, 아빠는 이 상황을 도무지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 절망감에 사로잡혀 매일을 열심히 일 했다고 했다. 그럼 에도 살기 어렵지만, 버겁지만. 천당 밑에 분당이라는 이곳에서.  여유롭게 자란 심성 고운 친구들과 잘 자랐으면 좋겠다는 아빠와 엄마의 강한 교육관이 있었다. 그렇게 그곳에서 꾸역꾸역 우리를 키워냈다.


 거의 독기로 맹모 삼천지교 빙의.     



 여하튼 오빠는 지역구에서 유명한 '상 양아지 오빠'의 베스티였으며, 상 양아치 오빠와 함께 오토바이를 타고 등교하다가 걸려 학교에서 엄마에게 전화를 하기도 했다. 중학교 땐 담배를 피우다 걸려 엄마가 학교에 여러 번 불려 갔으며, 패싸움을 하다가 걸려 경찰서에 잡혀갔다. 당시 엄마는 이곳저곳에 죄송하다며 머리를 조아려 사과를 하러다니기 바빴고, 오빠는 그때 최선의 불효를 열심히 다했다. 그가 중학교 2학년일 때 담임 선생님은 일진으로 유명한 이 녀석의 기강을 잡겠다고 이유 없이 뺘마리를 때렸으며, 그는 일진의 숙명이니 받아들이는 순종적인 면모를 보였다. 이 사실을 그는 나이 30이 다 돼서 가족들에게 고백했고 우리 엄마는 당시에 바로 말하지 그랬냐며 길길이 날 뛰다가도, 그때의 너는 사실 맞을만했다며 다시 이성을 되찾았다. 또 고등학교에 입학을 하자마자 담배를 태우다 걸려 새 학기부터 피부병 걸린 말티즈 마냥 머리가 박박 밀리기도 했다. 안 그래도 납작한 대가리가 더 납작하고 커 보이는 몰골을 하고도 속없이 즐거운 학교생활을 하던 그였다.  

   

 유명한 오빠를 둔덕에 나는 학교 생활이 매우 편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땐 나는 귀여운 그의 동생으로 고학년 언니들의 관심과 예쁨을 독차지했다. 하굣길에 같이 손을 잡고 등하교를 하라던 엄마, 아빠의 명령을 잘 지키는 그였고, 나는 교실 수업이 마치면 그의 반으로 올라갔다. 사실 혈육의 하교를 하염없이 기다리며, 언니들의 귀여움을 받는 것이 나의 주된 관심사였으며, 하교의 목적이었다. 오빠의 수업이 마치면, 우리 남매는 학교 앞에 있는 하나로마트로 향했고 나는 더위사냥, 오빠는 조스바를 하나씩 사서 물었다. 달콤하고,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먹으며 오빠의 길 다란 검지 손가락을 꼬옥 잡고 하교를 하는 것이 우리의 루틴이었다.  

    

 3살 터울이 났던 우리 남매. 나는 오빠가 졸업한 동일한 중학교에 입학하였고,  또다시 그의 동생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내가 입학함과 동시에 졸업을 한 그가 어떤 학교생활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기반을 잘 닦아둔 덕에 내가 그의 동생이라는 소문이 소위 ‘잘 나가는’ 선배들에게 퍼졌다. 그들은 나를 구경하겠다고 돌아가며 우리 반을 찾아왔고, 같은 반 급우들을 겁먹게 했다.     


 1학년이었던 우리 반의 옆반에는 2학년 학급이 있었고, 그곳에는 잘 나가고 잘생기기로 유명한 오빠가 나를 찾으러 쉬는 시간에 왔다. ‘네가 성훈이 형 동생이야?’ 그렇다는 나의 대답에 '그래?'라는 싱거운 말만을 하고 돌아갔다. 그 뒤로 나는 복도에서 그 오빠를 마주칠 때마다 인사를 꾸벅했고, 나에게 '어 그래' 하면서 웃으며 받아주는 선후배 사이가 되었다.     


 1주일에 한번씩 체육 시간이 겹쳐 같은 체육관을 쓸 때가 있었다. 나에게 공을 던져 시비를 걸었고, 겁 없는 나는 그 오빠에게 강스파이크를 날렸다. 쉬는 시간마다 복도에서 마주칠 때면 나에게 못생겼다고 장난을 쳐왔고, 나는 오빠가 더 못생겼다며 웃었다. 음수대 앞에서 또 나에게 물을 찰찰 뿌리는 그 오빠. 나는 손에 오목하게 물을 가득 담아 그의 뒷목에 부었다. 안 그래도 크고 잘생긴 눈을 가진 그는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벙쪄 쳐다보았다. 수업 종이 쳐 나는 반으로 달아났고. 그렇게 나의 중학교 1학년 1학기가 끝을 향해 가고 있었으며, 여름방학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렇다 나는 그 오빠를 짝사랑하고 있었다. 하얗고, 키 크고, 속쌍꺼풀이 있는. 웃을 때 입이 크게 찢어지는, 약간의 핑크빛 홍조가 있는 오빠였다. 매 쉬는 시간마다 그 오빠가 나타나기를 기다렸고, 목도 마르지 않은데 물을 마시러 음수대 앞을 지나갔다. 괜히 창문을 바라보면서 복도를 서성거렸다. 쉬는 시간이 되면, 체육시간이 되면 나타나는 그 오빠가 너무 반가웠고, 나에게 말을 걸어주길 기다렸다. 쉬는 시간마다 음수대에서 물을 뿌리며 장난을 치던 그 순간이 나에게 가장 큰 설렘이었으며, 수업시간 내내 젖어있는 나의 하복을 바라보면 웃음이 괜히 나기도 했다. 어느 날 그 오빠가 생일을 축하한다며 보내왔던 문자, 뜬금 없이 남기고간 일촌평은 나의 가슴을 미치게 뛰게 만들었다. 하교하는 길에 나를 불러 세워 어디 가냐고 물어보는 그 오빠의 질문이 그날 밤 나를 잠 못 이루게 했다. 어서 내일이 와서 또 복도에서 장난을 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진심으로 설렜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나의 평생의 이상형이 그 오빠와 비슷한 모습으로 굳어졌던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애석하게도 그 오빠는 같은 반에 가장 예쁜 언니와 사귀고 있었고. 그 언니는 정말로, 정말로 예뻤다. 자연 갈색의 긴 머리에 치마가 긴. 양아치였던 그 오빠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더 잘 어울리는. 너무나도  청순하고 참한 모범생이었다. 모두의 첫사랑이었을 것 같은 그런 언니였다. 그 언니의 속도 모르고 나와 그 오빠는 매 쉬는 시간마다 복도에서 우당탕탕 놀았고, 난 그 언니 친구들의 적이 되어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의 어깨를 빠앙 하고 치고 가는 언니들이 생기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은 나를 불러내어 큰 해코지를 할 순 없었다. 소심하게 나를 째려보고 가는 것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왜냐? 나에겐 성훈이가 있으니.     


 또 한 학년 선배 중 모두가 무서워하는, 보스몹 1 짱 오빠도 나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일진 선배 무리들은 하굣길에 친구들과 하교하는 나를 불러 붙잡았고. 또, 또 네가 성훈이 형 동생이냐며 물었다. 나는 맞다는 말을 했고. 별말 없이 나를 돌려보냈다. 그렇게 또 아는 선배들이 생겼으니 그들에게 꾸벅 인사를 했고, 나에게 실없는 장난을 걸어왔다. 어느 날  긴 머리가 지겨웠던 나는 단발로 팍 잘라버렸고, 학교에 처음 등교한 날이었다. 1 짱오빠는 머리를 자른 나를 보고 '아 왜 잘랐어'라고 탄식을 했고, 나는 어이가 없었다. 몬상관. 그러나 그 뒤에 '귀엽다, 잘 어울린다'는 혼잣말을 했다. 웃기네. 옆 반 오빠처럼 설렘도 감동도, 그 어느것도 느끼지 못한 채로 동태눈깔을하고 고개를 꾸벅 숙이고 지나쳤다. 그 오빠를 묘사하자면 중학생 때의 강호동과 습사 했다. 장사체질. 덩치도, 얼굴도 몸집도 두툼한.


 그날 나는 복도에서 쫄래쫄래 친구들과 수다를 떨었고, 다시 1 짱 오빠를 마주쳤다. 그 오빠는 뜬금없이 내 배꼽옆에 살을 붙잡았으며 '이거 뭐냐?'라는 말을 했다.


시발. 안 그래도 내 평생의 콤플렉스였던 뱃살.


 별로 친하지도 않은 낯선 남자가 붙잡으니 나는 당황했다. 눈물이 펑하고 튀어나왔고. 그대로 화장실로 직행. 내 친구들은 우르르 나를  쫓아왔고, 그 오빤 수업 종이 칠 때까지 여자 화장실 앞을 서성거렸다고 했다. 분노에 휩싸인 나는 집으로 곧 장가 나의 혈육 성훈이가 하교를 하길 오매불망 기다렸다. 드디어 성훈이는 집에 왔고 오늘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그대로 일러바쳤다. 나는 완전한 모멸감을 느꼈으며, 이건 성추행이다. 어떻게 오빠도, 아빠도 안 잡아 본 나의 뱃살을 잡을 수가 있냐며 15살의 나는, 다시 눈물을 참지 못하고 말을 토해냈다.     


 눈물 콧물을 빼놓는 나를 보고 뺙이 제대로 친 나의 혈육은 당장 1 짱 오빠에게 전화를 걸었으며, 동대문 엽기떡볶이 앞에 있는 공원 벤치로 지금 당장 튀어나오라고 했다. 그는 핫핑크색, '아줌마'라고 적혀있는, 반티로 추정되는 티셔츠와 쓰레빠를 신고 헉헉 거리며 나타났고, 당시 고등학생이지만 흡연자였던 성훈은 담배를 피우며 그를 잘 타일렀다고 했다. 고작 뱃살을 잡은 일 때문에 16살의 아이를 팰 순 없었다며.


- 이진이가 오늘 많이 놀랐다. 이제 아는 척도 하지 말고, 장난도 치지 말고, 건드리지도마


그렇게 타이름으로 위장한 겁을 주어 그 아이를 집으로 잘 보냈다고 했다. 그 뒤로 거짓말처럼 그 오빠는 나에게 말도 걸지 않았고, 네가 성훈이 형 동생이냐며 장난을 걸어오는 선배들은 삭 사라졌다.    




 '성훈이 형'이 아니었다면 받지 않았을 관심. 생기지 않았을 에피소드지만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기기만 하면 뛰쳐나가는 혈육이 있어서 든든했다. 10여 년이 흘렀지만 1 짱 오빠가 내 배를 꼬집었던 감촉은 아직도 기억에 남으며, 그때의 당혹스러움은 웃긴 해프닝이 됐다. 같은 반 남자애랑 싸움이 났고, 그 애가 엉엉 울면서 나의 정강이를 마구 발로 찼던 사건도 있었다.


-  더 때려봐! 울면서 여자 때리는 네가 지금 지고 있는 거야!


 조폭마누라였던 나는 엉엉 울고 있는 남자애와 바락바락 싸웠고, 나는 지구력을 다해 가만히 서서 맞기만 했다. 남자애를 팰 순 없으니까. 정강이에 남은 내 멍을 발견한 혈육은 또다시 눈깔이 돌았고, 당장 불러내서 내가 얘기를 좀 해야겠다며, 그 아이의 반과 이름을 말하라 했다. 근데 그렇게 둔다면, 나랑 싸우면서도 쳐 울던 새끼가 우리 오빠를 보고 오줌을 쌀 거 같아서 됐다고 했다.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기기만 하면 ‘내가 얘기 좀 해줘??’라고 쌍심지를 켰던 그. 어른이 된 이제는 내가 조금이라도 날티 나는 남자들과 엮이려고만 하면 득달같이 그 작은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든다. 내가 막 22살이 되었을 무렵, 두 끼 떡볶이에서 알바를 하다가 매니저와 눈이 맞아 사귀었을 때도 그랬다.      


- 이 미친년아 너 어디야, 집에 당장 안기어 들어오면 오늘 너는 뒤지는 거다 미친년아. 지금 바로 아빠 깨운다. 너 걔네 집에 있는거 다 알아. 당장. 1시 안에 집에 쳐 와라. 나 안 잔다.

   


남자한테 까이고 들어온 날도,    

 

- 시발 나 그 새끼 마음에 안 들었어. 그렇게 금사빠인 새끼가 어딨냐. 진짜 좋은 애들은 안 그래. 아오 사진부터 시발. 됐다. 관상도 별로였어. 남자는 남자를 알아. 관상 개 별로였어. 걘 우리 가족과 맞지 않을 애였어. 잘됐다.  

   


 또 남자랑 빠그라지고 이젠 나에게 문제가 있는 거 아니냐며, 남자 입장에선 어때?라고 물으며 울상을 짓는 날에도,

     

- 이 시이발 내가 그러니까 만나지 말라했지. 너 자존감 높다며. 네 잘 못 없어. 왜 네가 지금 이런 생각을 해야 해? 걔가 이상한 거야. 왜 네가 지금 자신감이 하락하냐고. 너는 너야. 그 누구를 만나도 그냥 너답게 굴어. 너 급에 맞는 남자를 만나. 너 그 정도 아니야. 너의 모든 게 그 정도로 낮지 않다고. 니는 진짜 내가 눈물 콧물 다 쏟게 정신개조를 해주고 싶어. 근데 니 쳐울까 봐 난 가만히 둔다. 아무튼 지랄하지 말고 발 닦고 잠이나 자.  



어우 시끄러



또, 6년의 사랑을 마치고 터덜 터덜 집에 돌아온 나를 부엌 의자에 앉아 하염없이 기다렸던 그였다. 어떻게 됐냐고, 결국 헤어지기로 했냐며 물어오는 그의 질문에 나는 울면서 그날의 대화를 말했다. 말을 이어가다가 꺼이꺼이 울던 나를 보고 눈물이 고여있는, 나와 닮은 그의 눈을 봤다.


     

 그 일진 짱은 결국 대기업에 입사하여 어느덧 역대 연봉을 받는 잘 나가는 회사원이 되었다. 어린 시절 엄마는 오빠의 사주를 보러 갔고, 점 집에서는 오대양 육대주를 누릴 좋은 사주팔자라고 했다. 그 사주팔자에 알맞게 그는 인도, 미국, 유럽 등으로 장기 출장을 떠났고, 자신의 돈으로 해외여행을 마구마구 다니며 세상을 보는 견문을 넓히고 있다. 나보다 여권도 늦게 만들었던 나의 혈육이 이제는 해외 출장과 해외여행을 지겹도록 떠나는 팔자 핀 인생을 살고 있다.     


 대게 그럴 것이, 억대 연봉을 벌거나, 능력 좋은 남자, 벨류가 높은 기업에 일원인 남자들은 과시를 하거나 콧대가 높은 사람들이 다수였다. 내가 본 남자들은 대부분이 그랬다. (성급한 일반화인 거 압니다. 시적 허용으로 봐주었으면 합니다. 흑흑) 첫 만남부터 자신이 다니는 회사를 자랑하고 싶어 안달 난 그, 월 천만 원은 넘게 번다며 당당하게 수입을 밝히는 그, 대기업에 입사하고 여자의 얼굴, 연봉, 성격을 올림픽 피겨스케이트 심사위원처럼 요목조목 조합하여 따진다는 오빠의 친구들.


 그러나 그는 대학생 때부터 7년 사귄 여자친구와 평생을 약속했다. 입사와 동시에 너도 다른 애들이랑 똑같이 오래된 여자친구를 차고, 직장이 더 좋은 여자를 만나는 그 루트를 걸을 것이라는 선배들의 조언이 너무 짜친다며 열변을 토하던 그였다. 힘들 때, 아무것도 없을 때 자신의 곁을 우직하게 지켜준 그녀와 산다면 자신은 너무나 행복할 것이라며 상견례 자리에서 말하더이다.


 1+1 행사를 하는 탑텐에서 옷을 구매하는 것을 즐기고, 베트남에서 사 온 소름 돋게 잘 만든 짝퉁 구찌 카드지갑 들고 다닌다. 자라가 세일을 한다며 득달 같이 달려가 한 여름에 겨울 코트를 사고, 자신의 아웃핏이 어떠냐며 종종걸음으로 신발장 앞에 거울에 서서 나의 심사를 기다린다. 내가 인터넷 쇼핑몰 타임 세일 때 2만 원에 산 엄청 큰 패딩을 5만원에 공갈을 쳐서 그에게 팔았고, 싸게 잘샀다며 마르고 닳도록 입던 그이다.


 뺘마리를 한 찰 올리고 싶은 거들먹 거림은 그에게 찾아볼 수 없으며, 겸손에 겸손을 지닌 수줍은 인간다. 그래 솔직히 말하면 엄마가 뱃속에서 잘 빚어준 덕에 호감형의 얼굴과 183의 키를 가졌다. 대가리가 너무 커서 엄마가 그놈을 낳다가 죽을 뻔했지만 뼈대가 굵어 어깨도 넓다. 무쌍이지만 작지 않은 눈구녕을 가지고 있어서, 목 위에 달려있는 그 면상은 혈육인 내가 봐도 나쁘지 않다. 말싸움을 하다가 내가 이성을 잃어버리면 정신을 반짝 차리고 싸움의 멈춤을 청하는 지혜로운 가족 구성원이다. 왜 이러냐고, 갑자기 화가 많이 난 이유가 무엇이냐며 나를 앉히고 차분한 대화를 청하는 그런 오빠이다.    

  

 나는 내가 그렸던 나름의 인생을 잘 살지 못하는 것 같지만, 그는 자신이 그려둔 나름의 인생을 잘 살아오는 것 같다. 같은 배에 태어났어도, 그는 인생의 최고점을 달리고 있으며, 어쩌면 더 승승장구하는 능력 좋은 자동차 회사 직원으로 토끼 같은 아내와 자식을 두고 살 것이다. 그에 반면 나는 정해진 것이 그 어떤 것 하나 없으며, 정해지려던 것들도 빠그라진 인생이다. 그럼에도 그의 잘 나가는 팔자가 부럽기도 하면서 안심이다.


 어린 시절 가세가 기울고 엄마 아빠가 일하러 나가, 아무도 우리 남매 곁에 없을 때 세상으로부터 싸납게 나를 지키던 그였다. 너라도 우리 집의 자랑이 되어줘서 고맙다고. 너라도 엄마아빠에게 턱턱 용돈을 주고, 나에게도 힘내라며 턱턱 돈을 보내는 너의 마음이 너무나 귀하다. 나에게는 너무나 버겁고, 어려운 일들을. 너는 멋지게 척척 해냈으니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주길 바란다.


너는 나의 기둥이니까.

너는 나의 소중한 분신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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