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탐구의 선례들과 그 한계점 / 의지, 감정 현상의 토대
그렇다면 지금까지는 감정 자체를 대상으로 한 이 같은 직접적 탐구 작업이 수행된 적이 없었던 것일까? 물론 그렇지 않다. 불교 철학의 한 갈래인 유식학에서는 오래전 이미 내면에 대한 심도 깊은 관찰을 통해 마음의 구성과 원리 등을 매우 포괄적이고 입체적으로 드러내놓았다. 비록 요즘 글들에 비해 묘사가 다소 거칠고 난해하긴 하지만, 인내심을 갖고 그 뜻을 더듬어 나가다 보면 거기에 묘사된 내용이 마음이란 것의 가장 근본적인 작용 원리임을 의심할 수 없게 될 것이다.
특히 이 사상의 대가들은 자기 자신을 탐구하는 방법과 검증 수단을 제시하면서 내적 성찰의 의미와 필요성을 끊임없이 강조해 주었는데, 아마도 이들의 이와 같은 도움이 없었다면 이 글은 결코 써낼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인물들은 감정의 진행 과정 자체에 대한 탐구를 특별히 중시하지는 않는다. 그들이 중요시하는 것은 개별적 정서들이 갈라져 나오는 뿌리 부분, 즉 자아를 통째로 다루면서 그 자아의 속성을 변화시키는 일종의 심리적 연금술 작업이다. 그들은 전반적으로 관심의 초점을 훨씬 더 높은 곳에 두고 있다. 따라서 적어도 남겨진 문헌을 참조하는 것만으로는 각각의 감정 과정과 관련된 만족스런 이해를 얻어낼 수 없었다.
한편, 이른바 정신분석이라 불리는 접근법에서도 내면의 문제, 특히 불안과 연관된 문제들을 상당히 깊이 있게 다룬다. 이 분야의 저자들은 불안을 에워싸고 있는 다양한 힘들을 식별해 낸 뒤 그 힘들이 서로 작용을 주고받는 모습을 생동감 있게 묘사해 내곤 하는데, 이 같은 묘사는 내면의 느낌에 대한 직접적 관찰이 없었다면 아마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사실 불안을 다루는 이 책의 한 장, 특히 그 중반부는 이들의 상세하고 풍부한 서술에 힘입은 바 크다. 아마도 관련된 저작들에 이미 익숙한 독자라면 그들의 관점이 이 글 속에 어떤 식으로 녹아들어 있는지 눈에 들어올 것이다.
그렇지만 이 분야의 저자들은 여전히 불안을 불안 자체로서 다루지 않는다. 비록 불안을 겪는 당사자의 내면을 심층적으로 탐색하고 해석함으로써 치유적 가치를 지닌 의미심장한 개인사 등을 드러내주긴 하지만, 정작 그 모든 경험들의 중심부에 놓인 느낌 자체의 본성에는 별다른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이들의 설명에 의지하는 것만으로는 불안 자체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었고, 불안을 원동력 삼아 일어나는 기묘한 현상들 간의 연관 관계를 밝혀낼 수도 없었다.
이런 이유로 인해 이 탐구 작업을 처음 시작할 때는 마치 완전히 낯선 영역으로 들어서는 듯한 기분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누구나 경험하는 바로 그 영역이긴 했지만 관객이 되어 바라보는 광경은 주연 배우일 때와는 사뭇 달랐고, 특히 동료 관객들의 의견을 경청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일단 의미가 이끄는 대로 따라갔다가 되돌아와서 확인하는 과정을 수차례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일부 독자에게는 이 글이 상당히 투박하게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외부 자연물들의 고도로 정밀한 작용 방식에 매혹된 사람이라면, 이 책을 보면서 너무 단순하고 구시대적이라며 못마땅해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영역이 어디이든 간에 초반부터 너무 엄격한 기준을 부과하려 들어서는 안 된다. 시작 단계에서는 도리어 모든 요구 조건을 벗어던지고 자유롭게 실험하면서 유희를 벌일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해 주어야 한다. 그처럼 안정되고 개방적인 환경 속에서만 기존의 경계 밖으로 시야를 넓히면서 다른 가능성들을 모색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검증된 수단을 동원해 의미를 엄밀히 정제하는 작업은 이런 과정을 거치며 내용을 충분히 풀어낸 이후에 해도 결코 늦지 않는다.
그러니 간혹 이 글이 다소 서툴고 거칠게 느껴지더라도 편견 없이 열린 마음으로 읽어주기 바란다. 말보다는 뜻에 집중하면서, 그리고 자신의 경험과 직접 비교해 가면서 천천히 읽어 나가다 보면, 여기 제시한 내용들이 결코 허황된 소리가 아님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각 장의 내용들은 서로를 뒷받침하면서 하나의 전체를 이루게 될 것이고, 그 전체는 일상에서의 경험과도 어긋남이 없을 것이다. 이 책은 결국 일상에서의 감정 경험을 되도록 있는 그대로 묘사하고자 시도한 결과일 뿐이기 때문이다.
-
그렇다면 일상에서의 감정 경험은 무엇을 기반으로 삼을까? 다시 말해, 감정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감정의 몸체 또는 그 기본 원료는 대체 무엇일까? 그것은 일단 몸 자체는 아니다. 그 무언가가 움직임에 따라 몸에도 어떤 식으로든 변화가 일어나긴 하겠지만, 그 자체가 몸인 것은 분명 아니다. 하지만 그것을 정신이라고 해서도 안 된다. 정신은 그 배후에 드리워진 그 무엇이기 때문이다. 정신이 없다면 감정 경험이 불가능한 건 사실이지만 정신 앞에서 정신에게 자신을 제시해 보이는 그 무언가가 분명 있다. 그렇다면 그것은 대체 무엇일까?
그것은 어떤 힘의 느낌, 나름의 저항력과 방향성을 지닌 채 움직이는 힘의 느낌이다. 그것은 정신과 신체 사이에 걸쳐 있는 일종의 정신적 힘으로서, 일상생활에서는 보통 ‘의지’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따라서 이 글에서도 그것을 단순히 의지라고 부를 생각이다. 앞으로 전개될 모든 내용은 바로 이 의지라는 것의 질감과 촉감에 현실적 근거를 두고 있다. 거의 만져질 듯한 이 느낌, 또는 기분이 없었다면 감정의 성질과 원리 등을 드러내는 작업은 아예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 책이 주로 거칠고 역동적인 감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도 이런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 직접 관찰해 보면 알겠지만, 희망이나 기쁨과 같은 섬세한 감정에 사로잡혔을 때는 의지의 활동이 거의 정지되다시피 한다. 물론 완전히 멎는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어쨌든 이런 정서를 느낄 때는 의지의 흐름이 나타내 보이는 결의 느낌을 감지해 내기가 지극히 힘들다. 그 감정들은 거의 몸의 물성을 초월해 있는 것만 같다. 하지만 거친 감정들은 움직임이 격렬하고 요란하여 비교적 관찰하기가 쉽다. 이런 감정들은 의지의 윤곽을 비교적 뚜렷이 드러내주기 때문에 탐구의 대상으로 삼기에 더없이 적합하다. 문제가 되는 감정 상태일수록 그만큼 더 물질적인 성질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다.
그렇지만 섬세한 감정을 소홀히 다룬 것이 이 같은 관찰의 어려움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은 그럴 필요성을 못 느꼈기 때문이기도 하다. 적어도 내게는 이런 감정 상태들을 바라보며 이해하는 일이 단지 부차적인 것으로 밖에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거칠고 고통스런 감정에 대한 탐구 작업은 절실했고, 심지어는 실용적이기까지 했다. 그런 상태가 일어났을 때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것이 얼마나 위안이 되는지는 직접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이쯤에서 이런 물음을 던지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의지가 그토록 중요한 기반이라면 의지의 속성부터 먼저 밝히는 것이 순서 아니겠느냐고. 하지만 여기서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 모두가 이미 경험을 통해 의지의 성질을 모호하게나마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등장하게 될 감정에 대한 설명을 이해하는 데는 일단 그 정도의 인식만으로도 충분하다. 따라서 우리는 특별한 준비 작업 없이 바로 본론부터 시작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 의지의 속성이 끝까지 불분명한 채로 남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도 의지에 대한 모호한 경험적 인식을 바탕 삼아 감정 과정을 하나하나 해명해 나가다 보면, 의지란 것의 속성이 점점 뚜렷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다양한 형태로 발현된 의지, 즉 감정이야말로 의지의 속성 그 자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결국, 의지에 대한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감정 과정을 해명하고, 감정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여 다시 의지의 성질을 심화하는 순환적 형태를 취하게 될 것이다. 또한 앞서 말했다시피, 각 감정에 관한 설명은 서로를 지탱하면서 한데 뒤얽히게 될 것이다. 그러니 어느 한 부분만을 보고 성급하게 판단하지 않았으면 한다. 근거가 뒤에 제시되거나 아예 이 글 전체의 밑바탕에 깔려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단 책의 내용을 전체적으로 충분히 이해한 뒤에는, 그 내용이 정말로 그런지 자신의 경험을 관찰해 가면서 직접 확인하기 바란다. 결국 이 글을 통해 전하고 싶은 건 개인적인 견해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사실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비록 오랜 숙고 끝에 내린 결론들이긴 하지만 이 책에도 결함은 분명 존재할 것이다. 그러니 당신 스스로 확인해 가면서 옳다는 확신이 서는 내용만 받아들이기 바란다. 그릇되거나 치우친 부분은 바로잡고, 불완전한 부분은 심화하는 식으로 책의 내용을 소화해 낸다면, 여기 제시된 것보다 한층 더 심화된 의미에 가 닿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이 내적 탐구를 촉진하는 자극제이자 발판으로 활용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